그곳에서 그렇게 산다
말복에서 처서를 전후한 요즘,
자다가 비 지나가는 소리에 깨는 일이 잦다.
밤비 소리는 낮에 내리는 빗소리와는 또 다르다.
잠결에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린다.
빗줄기 하나하나가 무슨 사연을 지닌 채
소곤소곤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밤을 스치고 지나가는 저 빗소리로 인해
숲은 조금씩 여위어 가고,
하늘은 구름을 떨치고 하루하루 높아간다.
날이 맑게 개어야 창을 바를 텐데,
궂은 날씨로 자꾸만 뒤로 미룬다.
바람기 없는 날씨가 화창한 날 창을 바르고 있으면
산중의 하루가 그지없이 풋풋하다.
이 산중에 들어와 산 날을 꼽아보니 어느덧 열두 해째가 된다.
세월 참 빠르네.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두 해 째라니.
처음 이 오두막에 들어올 때는
무인지경에서 서너 철 살까 했는데
그렁저렁 지내가 보니 10년을 훌쩍 넘었다.
친지들은 무슨 재미로 사는지
또 어디서 사는지 궁금히 여기면서 ‘유도 심문’을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곳에서 그렇게 산다”고 잘라 말한다.
‘그곳에서 그렇게 산다.’는 말처럼 직설적인 표현은 없을 듯싶다.
나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그곳에서 그렇게 살지들 않는가.
내가 이 오두막에 들어와 살면서 겪은 일들을
이제와 낱낱이 되돌아보면,
그때그때 내 자신을 형성하는 데에
어떤 받침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진정한 수행이 무엇인지를 몸소 겪으면서
자신을 다스려온 것이다.
안으로 살피는 일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이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두막 살림살이의 밝은 면만을 알렸기 때문에
내 거처를 무릉도원으로 여기는 이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은 도시건 산중이건 어디나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그곳에서는
그런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몸담아 사는 이 세상이 천국이 아니라
참고 견디면서 살아야 하는 ‘사바세계’라는 사실을 안다면
어디서나 참고 견뎌야 할 일들이 있다.
내가 볼일로 가끔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어떤 ‘손’이 문 자물쇠 구멍에
쇠붙이를 박아 망가뜨려 놓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대여섯 번이나 되풀이되었다.
그때마다 줄 톱을 사다가
망가진 자물쇠를 잘라내고 새것으로 갈아야 했다.
이런 경우 한두 번은 화가 났지만
이 오두막에 남이 보아 탐날만한 물건이 있음을 알고
참고 견뎌야 했다.
그 ‘손’은 도둑이 아니라
심보가 뒤틀려 심술을 부리는 녀석이다.
한번은 취사용으로 미리 구해다 놓은 몇 통의 엘피지 가스를
잠금장치를 풀어 모조리 새나가게 했다.
길이 험한 곳이라
눈이 쌓이기 전에 가까스로 실어다 놓은 연료를
죄다 없애 버린 걸 보고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같은 인간끼리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싶었다.
또 한 번은 아랫마을 외딴집에 세워 둔
자동차의 양쪽 타이어 공기를 빼버려
오도 가도 못한 적이 있었다.
그전이 이 오두막에 살던 분에게서 들은 말인데,
개울에 놓인 다리 한쪽을 망가뜨려 놓은 것을
모르고 건너다가 넘어져 크게 다친 일도 있었다 한다.
또 한 해 겨울에서 이듬해 여름까지
맞은편 개울 건너에 움막을 지어
수 십 마리 도사견을 사육하여 개 짖는 소리로 나를 괴롭혔다.
이럴 때마다 싯다르타의 수행 시절
악마들의 방해를 생각하며 참고 참아야 했다.
이렇듯 심술을 부리는 녀석은 산 너머 사는 50대 건달인데
성장 과정부터 순탄치 않아 동네 사람들이 다 꺼린다.
말하자면 인간 말종인 녀석이다.
이런 부당한 일을 겪을 때마다
나는 내가 출가 수행자임을 거듭거듭 안으로 새긴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될 수 있는 한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좋은 일이건 궂은일이건
그것은 그날 내 삶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전생에 어떤 수행자에게 해코지를 했기 때문에
그 보상을 지금 치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흩어지려는 나를 바로 세웠다.
과거와 현재의 모든 수행자들이
하나같이 순탄한 환경이 아니라
역경 속에서 자신을 가꾸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다면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 어려운 일도 없이 그저 편하기만 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수행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어려움은 나를 좌절시키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일어서게 한다.
그리고 이 땅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그와 같은 ‘대접’을 해 주겠는가.
그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에 대한 그 녀석의 병적인 해코지가
어떤 유희처럼 여겨 질 때도 있다.
다행이 그는 내가 누구인지 내 실체를 모르고 있다.
낯선 곳에서 수행하라는 옛 스승들의 가르침,
그 뜻이 여기에 있다.
나에 대한 그 ‘대접’의 기간이 다 됐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병들었는지
지난 봄부터 그가 얼씬 거리지 않는다.
더러는 궁금할 때도 있다.
최근에 내 오두막에 식구가 하나 늘었다.
우리 봉순이에게 ‘보이 프랜드’가 생겼다.
오두막을 비우면 봉순이 혼자서 외로워할지 몰라
박 화백이 이번에는 브론즈로 조각을 만들어 보내왔다.
높이 50센티미터 좌상인데
여윈 몸에 가사를 걸치고 명상에 잠긴
아주 고즈넉한 수행자의 모습이다.
내 흩어지려는 자세가 이 좌상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고쳐 앉게 된다.
봉순이에게는 눈길을 주고받을 남자 친구이겠지만
내게는 함께 정진하는 말없는 도반이 될 것이다.
세 식구는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오순도순 그곳에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ㅡ법정 스님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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