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입맛의 전설 |
밥상머리에서 대를 이어가는 미각, 한민족 DNA 형성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
맛은 음식을 입에 넣어 식도로 넘기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각이다. 음식 자체에 맛의 원인물질들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맛이라 하면 그 음식의 특성을 규정하는 단어라기보다 인간의 감각과 관련된 용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시인의 꽃처럼, 음식또한 입에 들어가기 전까지 인간의 감각세계 안에서는 무의미한 단백질과 탄수화물, 식이섬유 덩어리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음식을 신체 유지와 건강을 위해서 먹는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맛 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소리일 수 있다. 우리의 감각을 무시하고 그 단백질과 탄수화물, 식이섬유 덩어리를 먹는다고 해서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시 안 읽는다고 덧셈까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감각이란 것이 참으로 요상해 일정한 경지의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감각에서 오는 희열이 대단하다. 인간이 느끼는 감각에는 미각, 즉 맛 외에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이 있다.
시각을 자극하는 사진, 미술, 영화 등과 청각을 자극하는 음악에서 일정 경지 이상의 감각을 깨치면 온 삶을 그에 바치는 일까지 생길 만큼 그 희열은 강렬하다(촉각은 어찌 보면 가장 동물적인 감각이라 일상에서는 이를 드러내놓고 즐기는 일이 없다. 섹스가 촉각의 절정이다. 후각은 이 기사의 말미에 잠시 언급할 것이다).
이 ‘일정 경지 이상의 감각’을 두고 “눈을 떴다” “귀가 트였다”고 표현하는데, 이 경지에 오르지 않고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예컨대 빛이 눈에 들지 않으면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을 구별할 수 없으며, 청음이 되지 않으면 연주자들의 변주에서 오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섹스도 마찬가지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맛도 다른 감각과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경지라는 것이 있다. 맛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맛을 안다는 경지에 대해 다소 오해가 있는데, 음식을 다룬 만화나 영화, 드라마에서 이런 경지를 극적으로 묘사해 생긴 오해 때문이다.
TV 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이가 여러 재료가 섞인 음식을 두고 “홍시 맛이 나니 홍시 맛이 난다고 하였습니다”라며 엉뚱하게 들어간 재료를 짚어내는데, 내 경험으론 이런 미각의 소유자는 세상에 없다. 이를 흔히 ‘절대미각’이라 하는데, 식도락 경험이 많으면 여러 번 맞힐 수는 있으나 장금이처럼 타고난 절대미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대체로 맛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경지는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에서는 어떤 맛이 난다고 누군가로부터 듣는 것이 가장 좋은 미각교육이다. 미식가는 대물림이 된다 하는데 바로 이 교육 덕분이다. 밥상머리 교육이다.
부모는 같이 밥을 먹으며 알게 모르게 자식들에게 맛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준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도 자식도 바빠 가정 내 미각교육이 사라졌다.
2010년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미각교육을 하는 것은 대기업의 식품 광고와 TV 음식 프로그램, 외식업체 전단지다. 이런 대중매체의 미각교육이란 대부분 상업적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작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자극적인 맛을 앞세워 그게 진정한 맛인 것처럼 호도해 우리를 그 맛에 중독시킨다. 화학조미료를 두고 ‘고향의 맛’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주입하는 실정이니!
맛을 안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우리는 매일 세 끼의 식사를 하고 그 사이사이 많은 음식을 먹는다. 음식을 먹을 때 입 안에 느껴지는 감각에 조금만 집중하면 그 맛의 바탕을 깨달을 수 있다. 그 깨달음의 힌트를 오미(五味)를 기준으로 정리해봤다.
짠맛 | 밋밋한 재료의 맛 돋워주는 역할
소금만이 짜다. 소금은 바다와 소금호수, 소금광산 등 자연에서 얻는 광물이다. 짠맛은 그 소금에 들어 있는 염화나트륨의 맛이다. 우리는 짠맛의 소금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그러니까 음식을 먹을 때 짠맛은 보조 역할을 하는 맛이라 할 수 있다. 짠맛은 음식 재료에 숨어 있는 각각의 맛을 돋운다.
이러한 짠맛의 역할을 잘 알 수 있는 것이 삶은 달걀, 삶은 감자다. 짠맛이 달걀 단백질의 은근한 구수함을, 감자 전분의 밋밋한 단맛을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
짠맛은 특히 밋밋한 단맛을 내는 전분질의 음식을 먹는 데 도움을 주는데, 밥 중심의 한국 음식이 대체로 짠 것도 이런 까닭이다.
밥만 좋으면 간장, 된장 하나만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다고 하는 말은 간장과 된장의 맛이 특별히 좋아서라기보다 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소금에는 짠맛 외에 쓴맛과 떫은맛이 있다. 소금에 함유된 미네랄의 맛이다. 미네랄 중에서도 염화마그네슘 맛이 가장 고약하다. 염화마그네슘만 입에 넣으면 구토를 일으킬 만큼 쓰다.
한국의 천일염에는 염화마그네슘이 많은데, 이를 두고 미네랄 함유가 많은 세계 최고의 소금이라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소금이 달다 하는 것은 당이 들어 그런 게 아니라, 소금을 먹으면서 괴는 입 안의 침이 달게 느껴지는 것이다.
단맛 | “아 맛있다”의 원초적 생존본능 자극
단맛은 모든 동물에게서 강렬히 나타나는 미각이다. 개미, 파리 같은 미물에서부터 고등동물이라는 인간까지 단맛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단 음식을 먹으면 이게 어떤 맛의 음식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뇌에서, 아니 거의 말초신경에서 ‘맛있다’ 하고 결정해버린다.
모든 동물에 나타나는 단맛에 대한 이런 즉각성은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돼 있다. 단맛을 내는 당이 동물의 몸에 들어가자마자 에너지로 변하기 때문에, 개체의 생존을 위해 단맛을 내는 것은 무조건 먹도록 유전자에 박힌 것이다.
식품회사나 식당은 단맛에 대한 이런 ‘무뇌아적 반응’에 맞춰 음식을 무조건 달게 낸다. 대박 음식점이라는 곳을 가보면 단맛의 정도가 심각하다.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고등어조림에도 강정을 만들 만큼 설탕을 푼다. 이런 음식점의 고객은 대부분 젊은이인데, 미성숙한 미각의 소유자일수록 이 단맛에 쉽게 자극받기 때문이다.
음식에서 단맛은 당의정의 코팅과 같다. 식재료의 온갖 맛을 단맛으로 감싸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단맛을 강하게 하면 좋은 식재료와,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기술이 필요 없다. 그래서 솜씨 있는 요리사인지는 그의 음식이 얼마나 단지만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 단맛이 지나친 음식에 대해 맛있다고 찬사를 보내는 미식가가 있다면 그도 가짜다.
단맛을 내는 식재료로는 사탕수수·사탕무에서 추출한 설탕, 벌이 모은 꿀, 곡물로 만든 조청 등이 있는데, 요즘은 아스파탐, 스테비오 같은 대체 감미료를 쓴다.
이 대체 감미료는 가격이 싸 온갖 가공식품에 들어간다. 소주, 막걸리에도 들어가 있다. 이 단맛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미식을 즐기기 어렵다.
신맛 | 풍부한 향 품어 긴 여운 남겨
오미 중 가장 오묘한 맛이다. 신맛에는 늘 향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그냥 신맛만 느끼려면 석유화합물인 빙초산이 으뜸일 것이다. 그러나 빙초산의 신맛에는 향이 없어 신맛 가운데 가장 저급하다.
식초는 과일, 곡물, 술 등의 재료를 초산발효해 얻는다. 따라서 식초는 신맛 안에 그 원 료의 향을 품고 있으며, 그 향은 원료였을 때보다 미약하나 때로는 그로 인해 더 감미로운 맛을 보탠다. 그러니까 식초만 맛봤을 때 식초에 스며 있는 향은 신맛 때문에 그다지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음식에 뿌려지고 섞이면 그 향은 식재료에 이리 치이고 저리 받히면서 온갖 맛을 증폭한다. 그래서 신맛에 집중하면 퍽 다양한 맛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달고 부드럽기로는 감식초가 으뜸이지만 특유의 향이 없는 게 흠이며, 톡 쏘는 맛에 단맛까지 더해진 것으로는 양파식초를 들 수 있고, 강렬한 신맛의 긴 여운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는 마늘식초가 낫다.
매실이나 유자로 담근 식초는 그 화사한 향으로 강한 향이 있는 식재료와 잘못 섞이면 오히려 어색할 수 있으며, 달콤하고 향기로운 복숭아식초는 음료로나 쓸까 싶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맛이 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신맛에 둔감하다. 아니, 싫어한다. 사과, 포도, 귤 등 과일이 자연 상태에서 지니는 신맛도 거부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과일을 재배할 때 신맛은 줄이고 당도만 최대한 끌어올린다. 신맛이 죽으니 향도 사라진다. 안타까운 일이다. 쓴맛 | 식욕 돋우고 중독 유발하는 맛
쓴맛은 역겨운 맛일 때도 있고 식욕을 돋우는 맛일 때도 있다. 대체로 쓴맛의 동식물은 자연 상태에서 독이 있는 게 많은데 이를 피하기 위해 역겹게 느껴지게 진화해온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쓴맛을 내는 것 중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맛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거의 중독 수준이 된다. 인간은 이 쓴맛을 적절히 제어하고 다른 맛과 혼합해 즐기는데, 커피와 초콜릿이 대표적이다.
쓴맛은 그 단독으로는 불쾌한 맛이지만 쓴맛의 커피와 초콜릿이 전 세계로 전파되면서 어느 민족에게든 거부된 적이 없다는 점으로 미뤄 인류는 마조히즘적 성향을 본능적으로 지닌 게 아닌가 싶다.
한민족에게는 커피나 초콜릿 이전부터 익숙한 쓴맛의 식물이 있다. 씀바귀, 호박잎, 민들레, 질경이, 엉겅퀴, 머위, 고사리 등이다. 이 쓴맛의 식물을 우리 민족이 유별나게 즐기게 된 것은 수천 년 초근목피로 버텨온 민족적 불행 덕분(?)일 것이다.
매운맛 | 엔도르핀을 분비시키는 생리적 마약
매운맛은 미각이라기보다 촉각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추를 손등에 비벼도 매운 성분 때문에 얼얼해지므로 일리가 있다. 이 매운 성분을 입으로 즐기는 일이 더 흔하니, 미각이기도 하고 촉각이기도 하다면 될 것이다.
매운맛은 통증을 준다. 인간은 몸이 아프다 느껴지면 이 고통을 이겨내려고 몸에서 엔도르핀이라는 ‘생리적 마약’이 분비된다. 따라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 기분을 유지하려고 매운 음식을 계속 입에 밀어넣는다.
그러니까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은 ‘생리적 마약중독자’라 할 수 있는 것이고, 한국인의 대부분은 이 매운맛에 중독돼 있다.
매운맛이 기분을 좋게 해준다면 그에 중독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음식을 보면 이 통증의 감각물을 남용하는 버릇이 있다. 한국 음식에서 매운 음식은 그 음식 전체가 매운 성분으로 이뤄진다는 특징이 있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음식에 풀어 덩이든 액체든 똑같은 강도의 통증이 느껴지게 조리한다.
고추장불고기, 고추장낙지볶음, 배추김치, 매운탕, 김치찌개, 떡볶이 등이 그렇다. 매운 통증을 강렬하게 즐기기엔 그만인 조리법이만 이 때문에 고기나 낙지, 배추, 생선, 떡 같은 주요 재료의 맛을 파악할 감각의 여유가 없어진다.
매운맛을 내는 것은 고추와 초피, 겨자, 고추냉이, 후추 등이다. 이들 재료는 그 매운맛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고추는 입 안의 점막으로 느껴지는 매운맛이라면 초피와 후추는 몸이 얼얼해지는 맛이며, 겨자와 고추냉이는 향으로 느껴지는 매운맛이다.
사천요리가 유명한 것은 이런 재료를 섞어 매운맛을 증폭하는 방법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의 매운맛도 고추 하나에만 묶여서는 발전이 없을 것이다.
감칠맛 | 섞어놓으면 균형을 잡아주는 마력
짠맛,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의 오미 외 감칠맛을 육미(六味)라고 해 맛의 세계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감칠맛은 정말 보조적인 맛이다. 그 단독으로 주장되는 감칠맛은 흐릿하고 밍밍하다.
감칠맛의 역할은 여러 맛 요소가 섞이지 못할 때, 하나는 죽이고 다른 하나는 살리면서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다.
‘패밀리가 떴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국을 끓이면서 여러 양념을 넣었는데도 맛이 안 난다고 투덜거리다가 라면 수프 한 방에 다들 맛있다고 하는 까닭도 수프에 담긴 감칠맛 덕분이다.
그게 인공 조성물이란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감칠맛을 구해 일정한 농도를 내려면 참 어렵고 돈이 많이 든다.
여기에 분류된 맛의 개념은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밝힌 생리화학적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일 뿐이다. 실제 맛은 후각으로 느끼는 것이 더 많다. 코를 막고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 맛이 어떤지 알 수 없다는 실험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미각을 이야기하면서 후각은 늘 뒤로 미룬다. 음식은 입으로 먹지 코로 먹는 것이 아니기에 후각이 무시되는 측면도 있지만, 후각이 담당하는 냄새의 세계는 아직 인간의 과학으로 분류·체계화하기에는 너무 광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입으로 느끼는 맛의 세계만도 인간이 다 깨닫기는 너무 복잡한 일이니, 후각의 세계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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