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스님 어록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

문성식 2022. 3. 31. 05:02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 우리들 삶에서 때로는 지녔던 것을 내던져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움켜쥐었던 것을 놓아 버리지 않고는 묵은 수렁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우리들이 어쩌다 건강을 잃고 앓게 되면 우리 삶에서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고 비본질적인 것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다.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무엇이 그저 그런 것인지 저절로 판단이 선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의 자취가 훤히 내다보인다. 값있는 삶이었는지 무가치한 삶이었는지 분명해진다. 언젠가 우리에게는 지녔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가 온다. 반드시 온다! 그때 가서 아까워 망설인다면 그는 잘못 살아온 것이다. 본래 내 것이 어디 있었던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니 시시로 큰마음 먹고 놓아 버리는 연습을 미리부터 익혀 두어야 한다. 그래야 자혜로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어도 퍼내어도 다 함이 없이 안에서 솟아난다. 그러나 가꾸지 않으면 솟지 않는다. 어떤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열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안으로 느낄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은 가꾸지 않으면 솟아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이웃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즉 이웃과 나누는 일을 통해서 나 자신을 시시로 가꾸어야 한다. 인정의 샘이 넘쳐야 나 자신의 삶이 그만큼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가리켜 시들지 않는 영원한 기쁨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 사물을 보는 눈도 때에 따라 바뀐다.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집착할 게 아무것도 없다. 삶은 유희와 같다.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놓아두고 가기! 때가 되면,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미리부터 이런 연습을 해 두면 떠나는 길이 훨씬 홀가분할 것이다. 어차피 인간사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홀로 남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홀로 왔듯이 언젠가는 혼자서 먼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엄연한 삶의 길이고 덧없는 인생사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보다 성숙해져야 한다 나이 들어서도 젊은 시절이나 다름없이 생활의 도구인 물건에 얽매이거나 욕심을 부린다면 그의 인생은 추하다. 어떤 물질이나 관계 속에서도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자신을 삶의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두면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도 크게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지혜와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한다.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었으니 그만 쉬라는 이웃의 권고를 듣고 디오게네스는 이와 같이 말한다. "내가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결승점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그만 멈추어야 하겠는가?" 밤이 이슥하도록 글을 읽다가 출출한 김에 차라도 한 잔 마실까 해서 우물로 물을 길으러 간다. 때마침 둥근달이 우물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바가지로 물과 함께 달을 길어 담는다. 하던 일을 마저 하다가 뒤늦게 생각이 나서 길어 온 샘물을 끓이려고 다로의 차관에 물병을 기울이니 함께 길어 온 달은 그새 어디로 새어나가고 없다. 진정한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 부라고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부는 욕구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차지하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우리는 가난해진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실제로 소유한 것이 적더라도 안으로 넉넉해질 수 있다. 우리가 적은 것을 바라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우리 인생이 비참해진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몫이 있다. 자신의 그릇만큼 채운다. 그리고 그 그릇에 차면 넘친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진정한 부자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에 읽히는 경우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뒤바뀌어 책을 읽는 의미가 전혀 없다. 이런 때는 선뜻 책장을 덮고 일어서야 한다. 밖에 나가 맑은 바람을 쏘이면서 피로해진 눈을 쉬게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기분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책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한 책이 나를 떠나야 한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비로소 책을 제대로 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 법정 스님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