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야기

웰빙식품 '새싹채소'가 뜬다

문성식 2010. 11. 10. 19:10
유기농산물이라 해도 정말 무공해인지 솔직히 못 믿겠어요. 제 손으로 직접 키워야 믿을 수 있죠.” “우리가 직접 키운 새싹채소입니다. 씨앗과 물만 있으면 되죠. 농장은 우리집 베란다고요.”



지난 2월 16일 서울 대방역 근처의 한 호프 집에 모인 사람들은 대나무 채반(菜盤)을 하나씩 손에 들고 있었다. 채반 위에는 며칠 전 눈을 뜬 파릇파릇한 새싹이 숨쉬고 있다. 이성룡(33)씨가 가져온 채반은 멀리서 바라보니 벌레가 꼬물거리는 듯했다. “얘는 적(赤)양배추 싹입니다. 이틀 전에 눈을 떴어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조금 징그럽죠? 완전 무공해로 키웠어요.” 이씨가 새싹을 바라보는 눈길은 부모가 아기를 바라보는 눈길 못지 않았다. 직접 키운 무공해 채소만 먹는다는 도심 속의 농부, 그들은 인터넷 새싹채소 카페 ‘새싹채소 베란다농장’(cafe.daum.net/wellfood)과 ‘새싹채소 그린푸드’(cafe.daum.net/wellfood01)의 회원들이다.


▲ 이틀 전에 싹을 틔운 새싹채소의 모습
새싹채소는 싹이 튼 지 일주일 정도 지난 어린 채소를 말한다. 키는 5㎝ 이내, 잎은 3~5장 정도 돋아난 ‘아기 채소’다. 그러나 어리다고 얕봐서는 안 된다. 새싹채소엔 셀레늄, 단백질, 비타민A·C·E, 미네랄, 효소, 카로틴, 엽산, 식이섬유 등 유익한 성분이 다 큰 채소보다 5~20배 이상 많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도 물만 제때 주면 손쉽게 키울 수 있어 취미활동으로도 제격. 조금만 부지런히 가꾸면 아파트 베란다를 농장처럼 꾸밀 수도 있다. 씨앗을 뿌린 후 일주일만 지나면 수확할 수 있어 다양한 채소를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싹채소 베란다농장’ 운영자 윤덕기(33)씨는 취미로 새싹을 기르다 새싹채소 관련 책을 펴낼 정도로 전문가가 됐다. “새싹채소를 기른 지는 2년이 다 되어갑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미 내가 먹을 것은 내 손으로 기른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어요. 식품에도 DIY(Do It Yourself)를 적용한 거죠. 때마침 우리나라에도 웰빙 바람이 불면서 새싹채소가 많은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아파트 베란다도 훌륭한 '농장'

새싹채소가 주목받은 계기는 항암물질 설포라팬(Sulforaphane)의 발견이다. 1992년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의 폴 탈라레이(Paul Talalay) 박사는 브로콜리 새싹에 설포라팬이 다 자란 브로콜리보다 40배 이상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새싹의 의학적 효능이 알려진 후 새싹채소 시장은 크게 팽창했다. 미국이나 유럽·호주 등지에서는 채소 매장의 30% 정도를 새싹채소가 차지할 정도로 일반화됐다. 시장 규모도 이미 200억달러를 넘어섰다. 동양에서는 일본을 중심으로 새싹채소 바람이 불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반 편의점에서도 새싹채소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고 야채시장 점유율은 10~20%에 이른다.

우리나라에 새싹채소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년 남짓. 잇따른 식품사기 사건으로 안전한 식품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지난해부터 거세게 불고 있는 웰빙 바람도 새싹재배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다음과 네이버에서 ‘새싹채소’로 찾을 수 있는 인터넷 카페만도 49개. 동호회 회원수는 3만2000여명에 이른다.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동호인을 더하면 20만명을 넘는다.


▲ 자료 : kitchengarden.co.kr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새싹 씨앗은 브로콜리, 적양배추, 유채, 다채, 설채, 아마, 밀, 보리, 케일, 비트 등 30여종에 이른다. 새싹 재배용 씨앗은 인터넷 쇼핑몰이나 대형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씨앗을 고를 때 주의할 점은, 땅에 뿌리는 씨앗은 사용할 수 없다는 것. 농약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덕기씨는 직접 고른 씨앗을 보여주며 좋은 씨앗 고르는 법을 설명했다. “좋은 씨앗은 통통하며 윤기가 나고 모양이 일정합니다. 그리고 가급적 국내산을 고르는 게 좋아요. 손으로 문질렀을 때 하얀 가루나 기타 물질이 묻어나면 방부제나 소독약품을 처리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초보 회원들은 윤씨의 설명을 받아 적느라 분주했다. “씨앗은 싹을 틔우기 위한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어요. 싹이 트는 그 순간을 위해 씨앗은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지요. 그래서 자연히 새싹은 다 자란 채소보다 많은 영양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애써 키운 싹 거둘 때가 가장 힘들어

다채 싹은 ‘비타민’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비타민 함량이 높다. 다채 싹 100g을 먹으면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 A 소요량의 80%를 섭취할 수 있다. 일본에서 샤브샤브 요리에 많이 넣어 먹는 소송채는 카로틴, 비타민C의 보고. 샐러드·유부와 함께 끓여 먹거나 라면과 함께 먹어도 식욕을 돋운다. 케일 싹은 간기능을 향상시키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작용을 한다.

김준연(33)씨는 알팔파 싹으로 효과를 봤다고 한다. “큰 딸이 변비기운이 있거든요. 먹는 양에 비해서 화장실 가는 횟수가 적어서 걱정했어요. 그런데 큰 딸에게 알팔파 싹을 몇 번 먹여보니까 화장실을 자주 가더라구요.” 알팔파 싹은 섬유소가 풍부해 장의 부담을 줄이고 배변을 돕는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함유해 피부미용에도 효과가 있다.



애써 기른 싹을 거둬들여야 할 때 ‘농부’들은 가슴이 아프다. 카페 회원들은 애지중지 키운 새싹을 거두려면 안타까운 마음에 손을 내밀기가 쉽지 않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박래천(32)·하은영(32)씨 부부는 역할 분담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남편은 재배용기를 준비하고 씨앗을 뿌리는 일을 맡는다. 하루에 두 번씩 물을 주는 역할 역시 박씨의 몫. 싹을 거두는 일은 부인이 담당한다. “제가 싹을 거두고 있으면 남편이 옆에서 흘겨보곤 해요. 수확할 때 제 손이 그렇게 얄미울 수 없대요.”

하은영씨의 역할은 하나 더 있다. 마음이 상한 남편을 위해 새싹 요리를 만드는 일. “처음에는 간단한 새싹 계란말이부터 시작했어요. 다음에는 새싹 비빔밥을 만들었고, 얼마 전에는 골뱅이와 새싹을 무쳐 간단한 술안주도 만들어봤어요.” 하씨가 소개한 새싹 요리만도 20여가지가 넘는다.

자기 손으로 키운 새싹을 뽑아낼 자신이 없다면 상품 포장된 새싹을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 대농바이오영농조합은 경기도 광주의 농장에서 브로콜리 싹, 강화순무 싹, 유채 싹, 다채 싹 등을 생산해 까르푸, 하나로마트 등에 납품하고 있다. 생산량은 하루에 1t 규모로 1일 매출액은 1500만원 수준이다. 김태훈 연구원은 “봄이 되면 수요가 증가해 하루 생산량을 2t 이상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싹전문음식점도 성황이다. 방이역 근처의 한 새싹비빔밥 전문점은 점심시간 무렵이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 사장 좌종남(38)씨는 작년 5월 생맥주 전문점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다 새싹요리전문점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하루 매출은 200만원이 넘는다. “요즘 소비자는 건강부터 챙기잖아요. 건강을 테마로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집 새싹비빔밥에 들어가는 채소는 계절에 따라 달라요. 여름에는 무 싹이 들어갑니다. 제철에 자라는 채소가 들어가야 맛이 제대로 나거든요. 도시에 살아도 사람은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하는 법이에요.” 좌씨가 밝힌 성공 비결은 자연과 호흡하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 새싹채소, 그 풋풋한 향기가 2005년 식품시장에 스며들고 있다.


※ [주간조선 1843호] 본 기사 작성에는 김승욱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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