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문성식 2016. 9. 28. 08:30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청계천 판자촌 뒷골목이라네요.

하꼬방촌 루핑집들

 

50, 60년대 어딜가나 볼수있는 거리와 전경

등에 업힌 어린이와 엄마가 빈민국 한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주역들이지요.

 

요사이 TV속 동남아의 가난한 골목같네요

판자촌들 그래도 즐겁게 뛰노는 어린이들

행복하냐고 물어본다면 행복하다고 할겁니다.

세계 최빈민국 방글라데시가 행복감 세계 일위라고 하는걸 볼때…

 

이 판자촌에도 방을 얻고저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소개해주고 몇푼이라도 벌자고 여기에도 복덕방은 존재 했겠지요.

 

전농동 제방길입니다

이때만 해도 그 알량한 자전거도 흔치않던 시절

 

어린 시절 추억의 군것질

그래도 벌어보자고 노점상을 차려놓고

 

가난해도 머리를 상투틀지 못하고 깍아야하기에

여기에도 이발소는 존재한답니다.

 

이 어린이들이 지금은 나이가 50~70대가 되였겠지요.

 

가난하여 학교에 못가는 아이들을 위해 공민학교 같은곳이

생겨나고, 검정고시를 치뤄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지요.

 

지긋지긋한 물지게 지고 나르기

 

중량판자촌 철거 시작 그래도 이곳 떠나면 어디가서 살라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 소수의 판자촌 실태…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주하여 성남 대단지가 형성됨.

 

중량천은 썩을대로 썩어 악취가 만연하고 어느 생명체도 살아있지 않은 하천 요즘 중량천엔 장미꽃이 천국을 이루고 하천엔 잉어떼와 피라미떼들이

다모여 제식훈련을 받고있으니 세상 참 많이 변했지요.

 

청계천 봉제공장의 누이들,

저 열악한 환경에서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죠.

 

삽입곡 이미자 노래 영화주제가

[저강은 알고있다]원곡입니다.

 

신문잡지 가판대 경찰 단속 중

 

이때만해도 제법 잘 지여놓은 청량리역앞 대왕코너

이 건물이 그땐 불도 잘 나드니만 사람도 꽤나죽고

 

저 시절이 눈에 선한데…

지금은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졌는데

그만큼 더 행복해 졌을까요?

한번 뒤돌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