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가톨릭 교리 / 7.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문성식 2015. 6. 10. 23:32

가톨릭 교리

7.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나그네의 삶이 비록 힘겹고 고달프지만 우리의 생각과 자세를 조금만 바꾼다면 좀더 기쁘고 즐거운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인생의 길이는 우리가 정할 수 없지만 인생의 넓이와 깊이는 우리가 바꿀 수 있습니다. 얼굴의 생김새는 쉽게 바꿀 수 없지만 우리의 표정은 바꿀 수 있습니다. 하늘의 날씨는 바꿀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가짐은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변화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진리를 가르쳐 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참된 스승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10).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느님 나라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느님 나라는 구약에 약속된 바와 같이 ‘주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러 오시어 온 세상을 정의로 다스리시고 만백성을 공평하게 다스리시는 것’(시편 97,9 참조)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착한 사람이 죽은 다음에 가는 천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상 생활에서부터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고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느님 나라가 당신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미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가르치셨고, 사람들이 삶의 자세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이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도록 이끄셨습니다.

 

참 행복
     앞에서 읽어 본 ‘참 행복’에 대한 예수님의 설교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려 줍니다. 지금까지 가난하고 힘없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구조적 불의와 제도적 차별 때문에 참 행복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하느님 나라의 정의가 실현되기 시작함으로써 그들도 참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을 거부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살아감으로써 손해를 보거나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역시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짐으로써 하느님의 참다운 자녀로 인정받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 나라의 실현은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 행복과 평화를 누리게 되리라는 기쁜 소식, 곧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는데, 이는 그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는 하느님의 구원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악령에 사로잡혀 고생하는 사람을 해방시켜 주신 다음, “나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 내고 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마태 12,28) 하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회에서 죄인으로 취급하여 구원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켰던 소경이나 나병 환자, 세리와 사마리아 사람 등을 가까이 부르시고 치유하여 주시며 함께 대화를 나누시고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 하느님 나라의 평화로운 모습을 실제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사람들의 마음 자세뿐 아니라 이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과 비뚤어진 질서를 바로잡는 실천적인 행동을 요구합니다. 자기의 이익을 우선으로 여기고 눈앞의 성공을 먼저 생각하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은 ‘좁은 문’(마태 7,13-14 참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참 행복을 깨달은 사람은 이 세상이 약속하는 모든 것을 포기할지라도 하느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 낸 사람은……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랑의 새 계명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새 계명은 구약성서의 율법을 폐기하고 새로 만든 법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율법은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이지만, 그것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근본 정신, 곧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마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살인의 원인인 미움과 원한까지도 품어서는 안 되며, 보복의 악순환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근본 정신을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마태 7,12)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마태 22,37-40) 하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 그 나라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심판의 잣대는 바로 ‘사랑의 실천’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리스도인의 소명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느님 나라는 내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는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실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들 가운데 가장 작은 씨앗인 겨자씨가 자라면 새들이 둥지를 틀 만큼 큰 나무가 되고, 적은 양의 누룩이 밀가루 반죽을 온통 부풀리듯이, 하느님 나라 역시 지금은 미약하게 보이지만 이윽고 세상 전체로 퍼져 나갈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셨습니다(마태 13,31-33 참조).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바라셨고,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5,13-16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이 악에 물들어 썩지 않도록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드러냄으로써 어둠을 밝혀 주는 빛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면서 하느님 나라의 참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 줄 때, 세상 사람들도 하느님을 참으로 알고 하느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데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고 그분의 사랑과 진리,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오심으로써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실현하는 일에 협력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우리의 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구절을 찾아보고, 그 말씀을 우리 일상 생활의 지표로 삼아 기쁘고 복된 삶을 누리도록 노력합시다.

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 교리 http://www.cbck.or.kr/index.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