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우리는 영원한 삶을 믿습니다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함께 놀았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메뚜기가 “우리 내일 또 놀자!”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루살이는 “내일이 뭐니?” 하고 물었습니다. 메뚜기가 내일에 대해 아무리 설명하여도 하루살이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메뚜기와 개구리가 함께 놀았습니다. 가을이 깊어져 개구리가 “우리 내년에 또 만나자!”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메뚜기는 “내년이 뭐지?” 하고 물었습니다. 개구리가 내년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주었지만 메뚜기는 통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하루를 살다가 죽는 하루살이가 내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 해를 살다가 죽는 메뚜기가 내년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일과 내년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만약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임종을 앞두고 “여보게, 우리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세!” 한다면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 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할 것이다. 그 때에 그 임금은 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이 말을 듣고 의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마태 25,31-40).
죽음이라는 숙명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입니다. 아무도 죽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칠지 모릅니다. 죽음 앞에서는 제왕의 권력도, 억만 금의 재물도, 천재의 두뇌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합니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쌓아올린 소중한 것들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기에 슬픔과 고통이 따릅니다. 또한 죽음은 단 한 번뿐이고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죽은 다음의 경험을 들려 주는 사람도 없어 죽음에 대하여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안을 느끼며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한편, 죽음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또한 죽음의 고비에서는 무신론자나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도 절대자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 세상에서 우리 삶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
우리의 삶에서 선하고 곱고 참된 것들이 죽음으로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 더 고귀하고 영원한 것으로 피어나리라는 희망과 확신이 있어야만 우리는 평생을 땀흘려 일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양심을 지키고 인간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것도,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도, 남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희망과 확신이 전제될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그리스도인은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 새롭고 영원한 삶으로 옮겨 가는 것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으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다.”(요한 11,25)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시간인 인생에 끝을 맺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감(요한 16,28 참조), 곧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자비로우시고 의로우신 하느님과 결정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주셨고, 우리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활기찬 삶을 살도록 해 주셨습니다.
사심판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상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 것은 이 세상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원리입니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악한 사람이 잘 살고 착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악한 사람은 양심의 가책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고 착한 사람은 떳떳하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누린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인간적이고 현세적 안목에서 볼 때 큰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행위의 대가를 이 세상에서 다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 하느님의 공정한 심판대에서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숨김 없이 드러나면서”(2고린 5,10) 그에 대하여 총결산을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죽은 다음에 하느님께 개인적으로 받는 심판을 ‘사심판’(私審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정의롭고 공정한 판정에 따라 우리는 각각 천국과 연옥과 지옥이라는 상벌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이 심판의 기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사랑을 실천하였는지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시고, 사랑만이 모든 행위를 가늠할 척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육신의 부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줄 것이다.”(마태 16,27) 하시면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세상과 인간 구원의 역사가 마침내 완성됨을 의미합니다. 그 때에는 죽은 모든 이도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1고린 15,13-14 참조).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인간 부활의 원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실 때의 육신을 지니시고 부활하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신은 영광스러운 특성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요한 20,19-20). “죽은 이들은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을 몸은 불멸의 옷을 입어야 하고 이 죽을 몸은 불사의 옷을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1고린 15,52-53).
공심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세상 마지막 날에 산 이와 죽은 이를 포함한 온 인류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공심판’(公審判)이라고 합니다. “죽은 이들이 모두 그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나올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요한 5,28-29). 생명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특수한 장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과 기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지만, 그것은 다만 씨앗일 뿐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것은 하느님을 “얼굴을 맞대고”(1고린 13,12) 보는 것이며, 하느님의 약속이 완전히 실현되는 것이므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고, 아무도 가져가지 못할 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지복직관’(至福直觀)이라고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미 이 세상에서 시작되어 자라고 있는 하느님 나라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시고자 다시 오시리라 굳게 믿으며 복된 희망을 가지고 그 날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인간의 지혜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마르 13,3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라.”(마르 13,33) 하신 예수님의 분부대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고대하며 그 날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롭고 영원한 삶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시어 모든 인간의 소망을 충족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 삶은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며, 죽음은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삶을 반성하고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의연한 삶을 살도록 노력합시다.
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 교리 http://www.cbck.or.kr/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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