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국보 제4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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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장흥 보림사 남ㆍ북 삼층석탑 및 석등(長興 寶林寺 南ㆍ北 三層石塔 및 石燈) |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
수량/면적 | 3기 |
지정(등록)일 | 1962.12.20 |
소 재 지 |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45 보림사 |
시 대 | 통일신라 |
소유자(소유단체) | 보림사 |
관리자(관리단체) | 보림사 |
가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보림사는 통일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체징(體澄)이 터를 잡아 헌안왕 4년(860)에 창건하였다. 그 뒤 계속 번창하여 20여 동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이 불에 타 없어졌다. 절 앞뜰에는 2기의 석탑과 1기의 석등이 나란히 놓여 있다. 남북으로 세워진 두 탑은 구조와 크기가 같으며, 2단으로 쌓은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놓고 머리장식을 얹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이다. 기단은 위층이 큰데 비해 아래층은 작으며, 위층 기단의 맨윗돌은 매우 얇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 쌓았으며, 각 층 몸돌에 모서리기둥을 새겼는데, 2·3층은 희미하게 나타난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계단형으로 5단씩이고, 처마는 기단의 맨윗돌과 같이 얇고 평평하며, 네 귀퉁이는 심하게 들려있어 윗면의 경사가 급해 보인다. 탑의 꼭대기에는 여러 개의 머리장식들을 차례대로 가지런히 올려 놓았다. 석등 역시 신라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네모꼴의 바닥돌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8각의 아래받침돌을 얹고, 그 위에 가늘고 긴 기둥을 세운 후, 다시 윗받침돌을 얹어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받쳐주도록 하였다. 화사석은 8각으로 4면에만 창을 뚫어 놓았고, 그 위로 넓은 지붕돌을 얹었는데 각 모서리 끝부분에 꽃장식을 하였다. 석등의 지붕 위에는 여러 장식들 놓여 있다. 이들 석탑과 석등은 모두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탑의 머리장식은 온전하게 남아 있는 예가 드물어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탑 속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해 석탑은 통일신라 경문왕 10년(870)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고, 석탑과 더불어 석등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앞뜰에 남북(南北)으로 대립(對立)하여 서 있는 2기(二基)의 삼층석탑(三層石塔) 사이에 아담한 석등(石燈) 1기(一基)가 배치(配置)되어 있다. 이 탑들은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전형적(典型的)인 양식(樣式)으로 석제상륜(石製相輪)까지 완전(完全)하게 갖추고 있는 희소(稀少)한 석탑(石塔)이다. 이중기단(二重基壇) 위에 놓여 있는 삼층석탑은 하층기단에 2탱주(撑柱), 상층기단에 1탱주를 간략하게 모각(模刻)하였고 상대갑석(上臺甲石) 윗면에 각형(角形)과 호형(弧形)의 탑신(塔身)받침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주목(注目)되는 것은 양탑이 다 완전(完全)하며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 보륜(寶輪), 보개(寶蓋), 보주(寶珠) 등 상륜부(相輪部)를 순서대로 나란히 갖추고 있어 신라(新羅) 말기(末期) 석탑연구(石塔硏究)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석등(石燈)은 탑과 더불어 전부재(全部材)를 완전(完全)히 갖춘 것으로서 전형적(典型的)인 양식(樣式)을 취하고 있다. 방형(方形)의 넓은 지대석(地臺石) 위에 역시 방형의 대석과 8각(八角)의 기대석(基臺石)이 놓였다. 기대석은 연화하대석(蓮華下臺石)보다 크기가 작으며 각측면(各側面)에는 안상(眼象)이 장식(裝飾)되어 있다. 연화하대석은 8엽복판연화(八葉複瓣蓮華)로서 귀꽃을 갖추고 있으며 간주석(竿柱石)은 8각주(八角柱)로서 짧은 편이다. 상대석은 원형평면(圓形平面)으로 연판(蓮瓣)은 중판(重瓣)으로 판내(瓣內)에는 중엽(重葉)을 장식하였다. 화사석(火舍石)에는 4면에 화창(火窓)을 구비하고 있으며 옥개석(屋蓋石)에는 아담한 귀꽃을 갖추고 있다. 정상(頂上)에는 중엽의 단판8엽연화문(單瓣八葉蓮華紋)을 장식하였고 그 위에 고복형(鼓腹形)의 상륜(相輪)과 보개(寶蓋)를 안치(安置)하고 최정상(最頂上)은 수연형(水烟形)의 보주(寶珠)로 끝막음하였다. 이들 석탑과 석등의 조성연대(造成年代)는 탑에서 발견된 탑지(塔誌)에 의해 신라(新羅) 경문왕(景文王) 10년(870, 함통(咸通) 11년)을 전후한 것임이 밝혀져 석탑, 석등 연구에 기본이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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