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2007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 제58주기 추모식을 앞두고 강원 산골에 있는 나에게 초청장을 보내주셨습니다.
아마도 3년 전인 2004년 1월 31일부터 3월 12일까지, 여러 네티즌들의 후원으로 미국 메릴랜드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서 재미동포들의 도움을 받아 백범 선생의 암살배후를 규명하였던 지난 일을 가상히 여겨, 그때 성원해 주신 모든 네티즌에게 보내주신 듯합니다.
재미 동포유학생들로 구성된 자원봉사 조사반원들은 백범 선생의 암살배후에 관한 조그마한 언턱거리라도 찾으려고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자료실에서 연일 눈에 핏발을 세웠지만, 똑 떨어지는 문건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2004년 2월 27일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2층 문서 자료실에서(사진자료실은 5층임) 조사반원 주태상씨가 미 육군정보파일을 열람하던 중, 이 사진을 발견하여 나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 때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나는 즉시 현장에서 스캔하여 컴퓨터에 저장해 왔습니다.
이 사진 여섯 매는 백범 선생이 1949년 6월 26일 정오 무렵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진 뒤 열흘 후인 1949년 7월 5일 국민장 장례식 날 백범 선생의 운구가 소공동을 지날 때 미 육군정보팀에서 촬영하여 본국에 보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사진은 2005년 12월 1일 나 혼자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 갔을 때 NARA에서 박유종(임시정부 박은식 대통령 손자) 선생이 발견한 것으로 백범 선생 국민장 장례 장면입니다.
백범 선생 서거 제58주년을 맞이하면서 새삼 경건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며, 이 사진을 온 겨레에게 바칩니다.
"친애하는 자매 형제여, 우리의 살길은 자주 독립의 한 길 뿐이다. 이 길이 아무리 험악하다 하여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니가지는 못하는 길이다. 주저하지도 말고 유혹 받지도 말고 앞만 향하여 매진하자. 내가 비록 불초할지라도 이 길을 개척하고 나가는 데는 앞에서 나갈 각오와 용기를 가지고 있다. 부월(斧鉞)이 당전(當前)할지라도 도피하지는 아니하겠다." - 부월이 당전해도 단정 반대. 1948년 3·1절 기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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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이 없이는 독립이 있을 수 없고, 독립이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다.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면 우리의 유일한 무기는 민족단결 뿐이다. 그러나 현시에 우리 조국이 미·소 양국의 분단점령을 당하고 있는 이상 국제협조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제협조에 노력하였고, 앞으로 이 노력을 계속할 결심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경험에서 얻은 교훈에 의하여 국제협조의 노력도 공고한 민족단결이 있은 뒤에야 주효할 수 있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인식하였다." - 통일 독립기구 강화. 1948. 6.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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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차 회담에 방책이 무엇이냐고 묻는 친구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부터 특별한 방안을 작성하지 아니하고 피차에 백지로 임하기로 약속되었다. 왜 그러냐하면 민주 통일 자주의 독립된 조국을 건설하려는 환언하면, 조국을 위하여 민주 자주의 통일 독립을 전취하는 현 단계에 처한 우리에게는 벌써 우리의 원칙과 노선이 명백히 규정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모든 방안의 작성과 해결은 이 원칙과 이 노선에 부합됨을 전제조건으로 할 것뿐이다." - 원칙노선은 명백하다. 1948. 4.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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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선 때문에 우리에게는 통일과 독립이 없고 자주와 민주도 없다. 어찌 그 뿐이랴. 대중의 기아(飢餓)가 있고, 가정의 이산(離散)이 있고, 동족의 상잔(相殘)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의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 백범 선생 말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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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 <나의 소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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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일찍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 <나의 소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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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첫째로 남의 절제도 아니받고, 남에게 의뢰도 아니하는, 완전한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을 뿐더러, 우리 민족의 정신력을 자유로 발휘하여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 <나의 소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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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쪽이나마 먼저 독립하고 그 다음에 반쪽마저 통일한다는 말은 일리가 있는 듯하되, 실상은 반쪽 독립과 나머지 반쪽 통일이 다 가능성이 없고, 오직 동족상잔의 참화를 격성(激成)할 뿐일 것이다." - '통일 독립 달성을 위한 7거두 성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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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다운 사람들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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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양민규(양삿갓)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