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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호]나주의샛골나이 (羅州의샛골나이) | 중요 무형 문화제

문성식 2012. 3. 27.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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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28호
명 칭 나주의샛골나이 (羅州의샛골나이)
분 류 공예기술
지정일 1969.07.04
소재지 전남전역



※ 본문설명

나주의 샛골나이는 전남 나주 샛골의 무명짜는 직녀 또는 무명짜는 일에 대한 통칭이다. 무명의 원료인 목화는 고려말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서 들여온 것으로, 조선 초기부터 쌀과 함께 화폐구실을 할 정도로 급속히 보급되었으며, 일본으로 보내는 주요 교역품 가운데 하나였다.

무명의 제작과정은 재배와 수확, 씨앗기와 솜타기, 고치말기, 실잣기, 무명날기, 베매기, 무명짜기 순으로 이루어 진다. 8월 중순부터 목화를 따기 시작하는데, 처음 딴 목화가 가장 좋다. 볕에 말린 목화를 씨아틀로 씨를 빼내 씨앗기를 하고 솜활이라는 기구를 이용해 솜을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인 솜타기를 거친다. 탄 솜을 말판 위에 펴놓고 말대로 비벼 고치를 만든 후 물레를 이용해 실을 뽑아 가락에 감는 실잣기를 한다.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하는 무명날기를 하고, 베매기인 풀먹이기 과정을 거친 후 베틀을 이용하여 직물을 짠다. 예전에는 개성의 송도목과 진주의 진주목이 명품으로 날렸으나 오늘날에는 나주의 나주세목 또는 샛골목이 12승 무명으로 유명하다.

나주의 샛골나이는 흰색으로 인해 백의민족으로 일컬어지는 한민족의 옷을 풍요롭게 하며, 한민족의 애환을 담고 있는 역사적인 전통직물로 가치가 높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기능보유자로는 노진남이 인정받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보충설명
조선시대에는 고양(高陽)나이 등 여러 곳에 무명의 명산지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나주의 샛골나이무명이라고 하면 한산모시와 함께 전국적으로 이름이 있다.

샛골무명은 목화를 따서 이를 말려 씨앗기를 하고 솜활로 솜을 타서 고치말기를 하는 순으로 일이 이어진다. 고치말기가 끝나면 물레 질을 하여 실을 잣는다. 물레에서 실을 뽑아 가락에 올린다. 가락옷에 감긴 실뭉치를 댕이라 부른다. 무명 한 필에는 10개의 댕이가 필요하다. 샛골무명에도 칠새에서 보름새까지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십이새가 고작이다. 즉 목화 3kg(5근)으로 무명 20자 한 필을 짤 수 있는데 바디로는 40구멍이 한 새 이고 한 구멍에 두 올씩 들어가니 올로는 80올이 되는 셈이다. 올의 굵고 가늘기에 따라 새가 정해지면 날틀과 겉틀을 열 자 간격으로 고정시켜서 무명을 날고는 베매기를 한다. 새에 맞추어 무명올을 바디에 꿰서 끝을 도투마리에 고정시키고 그것을 들말에 걸어 놓고 움직이지 않도록 돌로 눌러둔다. 그리고 풀을 먹인다. 매는 일이 끝나면 도투마리를 베틀로 옮긴다.

무명을 짜는 과정은 모시를 짜는 과정과 같다. 단지 다른 것은 무명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은 실꾸리에서 속대를 빼고 실끝을 찾아내어 물에 담가 속속들이 적신 다음 북에 넣어서 속실 끝에서부터 짜기를 시작한다. 이중으로 된 날줄이 교차될 때마다 북이 좌우로 오락가락하면서 보두집으로 씨줄이 들어간 곳을 힘차게 앞으로 당겨 치면서 씨를 다져간다. 날줄이 교차되게 하는 것은 용두머리에 달린 신나무를 거친 신끈 끝에 신을 매어 오른발에 신고서 줄을 당기면 이중으로 된 밑의 날줄이 올라간 사이에 북을 넣어 보두집으로 한두 번 친 다음 발을 뻗쳐 줄을 놓아주면 위의 날줄이 내려와 교차되는 사이에 북을 넣어 씨줄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짜들어가는 중턱에는 폭을 조절하기 위해서 최발로 양옆을 뻗치고 날줄이 끊어질 경우에는 눈썹놀이에 매달린 솜을 조금 뜯어서 잇는다.

무명을 짜는 데는 습도의 공급이 필요하므로 때때로 젖일개로 날줄의 마른 부분을 적셔주어야 한다. 짜는 자리는 방이나 대청, 헛간 등이며 익숙한 솜씨로는 칠새의 무명 20자 한 필을 짜는 데 3일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