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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땅으로 탈바꿈한 '天刑의 섬'

문성식 2011. 6. 8. 07:43

가도 가도 천릿길, 전라남도 고흥. 남해로 불쑥 튀어나온 반도로 이루어진 이 고을 남서쪽 끝자락인 녹동항 앞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 소록도(小鹿島). 섬의 생김새가 어린 사슴을 닮았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이라던가. 이렇게 소록도는 이름도 예쁠 뿐더러 경치도 아름다워 고흥8경 중 두번째를 차지하고 있지만, 섬 곳곳엔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서려 있으니.

고흥반도 남서쪽 끄트머리인 녹동항 앞바다에 떠있는 소록도는 해안 풍광이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6년 한센병(나병) 환자들이 집단 수용되면서 신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 '천형(天刑)의 섬'으로 바뀐 뒤 환자들은 오랜 세월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야만 했다.

환자들이 고통으로 조성한 중앙공원

소록도 해협의 폭은 600m. 예전엔 통통배로 10분, 몇년 전엔 페리호로 5분, 2009년 소록대교가 생긴 요즘엔 섬으로 들어서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오랜 세월 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오던 슬픈 섬이 비로소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 것이다.

소록도는 해안선의 길이 14㎞, 면적 4.42㎢다. 서울 여의도의 1.5배 정도 되는 아담한 섬으로서 모두 17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지만 외부인들은 섬 초입의 대형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야 한다. 그것도 섬 전체가 아니라 옛 병원 건물이 모여 있던 '중앙공원' 일부 구역만 돌아볼 수 있다.

입구 왼쪽의 생활자료관엔 소록도병원의 역사와 환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갖가지 자료가 전시돼 있다. 한센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곁들일 수 있는 공간이다.

소록도 중앙공원은 아름답다. '천국의 정원'처럼 잘 가꿔져 있다. 히말라야삼목 동백 팔손이나무 치자나무 등 남국 풍광 물씬 풍기는 나무들은 물론이요, 황금편백 실편백나무, 그리고 봄마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매화 진달래 등등. 육지의 이름난 공원들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다.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 쉽지 않은 이 정원은 한센병 환자들이 70여년 전 처음으로 가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엔 환자들의 피나는 고통이 묻어있다.

소록도병원을 거쳐 간 여러 원장 중 최악은 바로 4대 원장이던 일본인 수호 마사토(周防正季) 원장이었다. 그는 1933년 부임해 1942년 피살되기까지 9년간 재임했는데, 이 기간은 소록도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다. 수호 원장이 발령받기 전까지만 해도 환자의 수는 700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수호 원장이 올 무렵 조선의 한센병 환자는 모두 이곳으로 붙잡혀왔고, 마침내 환자는 5000~6000명으로 급증했다. 이들은 대부분 힘든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

이 중앙공원은 수호 원장 시절이던 1936년 12월부터 3년4개월 동안 조성됐다. 환자들은 일본인들에 의해 채찍질을 당하면서 노예처럼 일을 했다.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돌을 나르고 다듬었다. 일을 하다가 손가락마디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조국도 빼앗기고, 인권도 없는 이들은 멸시와 냉대 속에 그렇게 고통 받으며 살아갔다. 수호 원장은 이토록 지독한 인권유린으로 이루어진 공원 중심에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 그리곤 매달 20일을 자신에 대한 '보은감사일'로 정해 환자들을 동상 앞에 모아 놓고 절을 시켰다.

공원 입구 오른쪽엔 감금실과 검시실이 있다. 수호 원장 시절 섬을 탈출하다 붙잡히거나 절도 등 범죄를 저지르다 걸린 환자들은 일본인들에게 심하게 매질을 당한 뒤 이곳에 감금됐다. 많이 죽었다. 힘들어서 죽고, 배고파서 죽고, 맞아서 죽고, 도망가다 바다에 빠져 죽고…. 수많은 환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렇게 죽은 게 끝이 아니었다.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는 '일생에 세번 죽는다'고 했다. 한센병에 걸려 세상과 격리되니 첫번째 죽음이요, 죽으면 실험용으로 해부를 당하니 두번째 죽음이요, 해부가 끝나면 화장을 시키니 바로 마지막 죽음이다. 이들의 주검을 해부하던 검시실은 모든 해부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병이 다 나아 출감을 하더라도 예외 없이 검시실에서 강제로 단종수술(정관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이렇게 착취를 일삼던 수호 원장은 결국 죽임을 당한다. 1942년 6월20일 아침, 한센병 환자 이춘상은 '보은감사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연단으로 향하던 수호 원장의 가슴을 칼로 찔렀다. 원장은 숨졌고, 이춘상은 이듬해 일본인들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원장 동상은 태평양전쟁 물자로 징발되면서 사라졌다. 민족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춘상 사건'은 단순 살인이 아니라 강제노역과 우상화를 강요한 일본인 총독부 관리를 응징한 항일운동의 한 부분이다.

이청준 소설 < 당신들의 천국 > 배경

스테디셀러인 이청준(1939~2008년)의 소설 < 당신들의 천국 > 은 소록도의 수호 원장 이야기와 광복 뒤 새로 부임한 원장이 외부의 편견으로 멈출 수밖에 없었던 오마도 간척공사 과정, 그리고 그 후일담을 소설로 쓴 것이다. 소록도로 향하기 전, 책꽂이에서 먼지 묻은 책 < 당신들의 천국 > 을 꺼내들고 다시 읽어보자.

수호 원장의 동상이 있던 자리엔 구라탑(救癩塔)이 들어서 있다. 한자를 풀이하면 '나병으로부터 구한다'는 뜻을 지닌 탑이다. 하단에 '한센병은 낫는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이 탑은 1963년 국제워크캠프 대학생 133명이 오마도 간척공사 근로봉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미카엘 천사장이 악마인 한센균을 창으로 박멸하는 모습이다.

공원 언덕엔 역시 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1920~1975년) 시인의 '보리피리' 시비도 보인다. 거기엔 슬픈 봄날 천형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은 시가 새겨져 있다.

보리피리 불며 / 봄 언덕 / 고향 그리워 / 피ㄹ 늴리리 // 보리피리 불며 / 꽃 청산 / 어린 때 그리워 / 피ㄹ 늴리리 // 보리피리 불며 / 인환의 거리 / 인간이 그리워 / 피ㄹ 늴리리 // 보리피리 불며 /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 눈물의 언덕을 지나 / 피ㄹ 닐리리

그런데 시비는 세워진 게 아니라 누워 있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이 바위의 다른 이름은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다. 예전 환자들이 공원을 조성하면서 완도에서 바위와 돌을 운반하여 왔는데, 당시 일본인들의 채찍이 얼마나 모질던지 목도를 메면 허리가 부러져 죽고, 목도를 놓으면 맞아서 죽었다고 하여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서있지 못하고 누워있는 보리피리 시비.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좌절과 절망을 씹으며 시를 읊던 시인의 고통이 아로 새겨진 듯하다.

여행수첩

●교통

▲경부고속도로→논산-천안고속도로→익산분기점→익산-포항고속도로→전주 분기점→완주-순천고속도로→순천 나들목→순천 시내→2번 국도→벌교→고흥읍→27번 국도(도양돚소록도 방면)→소록도 < 수도권 기준 5시간 소요 >

●숙식

소록도엔 편의시설이 없다. 숙박이 금지돼 있고, 식당도 없다. 방문객은 오후 6시 이전에 육지에서 나와야 한다.

소록도 입구이기도 한 녹동항에 숙식할 곳이 많다. 라바모텔(061-842-6300), 삼미모텔(061-844-8686), 호텔썬비치(061-844-7661), 로얄장(061-842-3825), 미도장(061-842-2795), 호수장여관( 061-844-2633), 로얄장(061-842-3826) 등 숙박업소가 있다.

미래식당(061-842-3844), 가람정(061-842-5050)은 복탕 전문집이다. 1인 1만5000원. 대진횟집(061-842-0003), 어촌회관(061-842-2628) 등에선 싱싱한 생선회를 맛볼 수 있다. 생선회 4인 기준 5만~8만원.

●참조

국립소록도병원 061-840-0500,0506, 도양읍사무소 소록출장소 061-830-5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