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초심자 불교 교리 11~20

문성식 2011. 4. 18. 12:38


11. 예경은 왜 해야 합니까?

불교에서는 예경을 매우 중시하고 있는데, 부처님이나 탑을 향해 합장하고 예배하는 것은 부처님을 지극히 공경하고 존경하여 귀의했기 때문입니다.
절을 하면 어지러운 마음이 가라앉아 지혜가 생기고, 깨달음이 열리게 됩니다. 지극한 존경심으로 참된 것을 받들고, 자신을 지극히 낮춤으로서 무명을 굴복시키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참된 것이란 우리의 본성을 말하며, 이는 부처님의 성품[불성]과 같습니다. 따라서 본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곧 부처님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명을 굴복시킨다고 함은 자신의 본능적인 탐욕과 어리석음을 없앤다는 뜻입니다. 무명은 번외를 낳고 번뇌는 고통을 낳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번뇌를 여의고 참 나를 찾아 바로 살기 위하여, 이미 진리를 깨닫고, 사람들은 무명과 번뇌로부터 구하기 위새 가르침을 펴신 부처님을 따르고 예경해야 합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예배하면서 진실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가짐과 생활태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삶에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가치를 부여하게 되며, 즐겁고 보람된 나날이 됩니다.


12. 보살이란 어떤 분이며, 보살도란 무엇을 말합니까?

보살은 범어 <보디사트바>입니다. 한자로 음역하여 '보리살타'로 옮긴 것을 다시 줄인 말인데, 성불하기 위해 수행에 힘쓰는 이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즉, 안으로는 높은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고, 밖으로는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보살이란 넓은 의미로는 큰 마음을 내어 불교에 귀의한 모든 이를 말합니다. 지극히 심신으로 '사홍서원[
①중생이 아무리 많더라도 다 건지겠습니다.
②번뇌가 아무리 많을지라도 모두 끊겠습니다.
③불법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다 배우겠습니다.
④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가 아무리 높더라도 꼭 이루겠습니다.']을 발하여 육바라밀[보시 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수행하고, 자리이타의 행을 닦으며, 마침애 성불하는 이를 말합니다.
보살은 모든 중생에게 이로움을 주겠다는 서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리심을 발한다고 하는데, 이는 곳 구도심입니다. 자신의 성불만을 생각하고, 애써 다른 사람보다 먼저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원만을 행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고, 희생적인 이타행을 수행의 일과로 삼는 것이 보살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보살이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닦아가는 길[방법]이 보살도인데, 이것을 육바라밀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보시로서, 아낌없이 베푸는 것입니다. 중생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재물이나 따뜻한 마음, 부처님의 가르침 등 그가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행위입니다.
둘째는 지계인데, 삿되고 악한 것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고 바르게 몸과 마음을 간직하는 행위입니다. 셋째는 인욕으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나 쓸데없는 욕망을 참아 견디고, 외부에서 가해져 오는 수모나 부당함 , 유혹 등의 모든 고통을 참아 받아내는 행위입니다.
넷째는 정진인데, 끊임없는 노력으로 인한 향상을 뜻합니다. 주위의 환경이나 심적 동요에 이끌리지 않고, 역경이나 유혹에 빠지지 않은 채 꿋꿋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감을 말합니다.
다섯째는 선정인데, 정진에 힘써 어떠한 어려움이나 변화에도 마음이 흔들이지 않는 경지입니다. 이것은 가벼운 안정이나 억지로 가라앉힌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본래의 깊고 청정한 마음에 안주하는 것은 뜻합니다.
여섯째는 지혜인데, 생각이나 분별심을 넘어 인간의 참 성품을 찾음으로써 스스로 밝아짐을 말합니다.
이 여섯 가지 길은 불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닦아야 하는 기본적인 수행입니다. 또한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13. 기도할 때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미타불, 즉 아미타부처님은 '무량수불', '무량광불'이라고 하는데, 한없는 수명을 가진 부처님, 끝없는 광명인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은 오랜 옛날 법장 비구로 수행할 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마흔여덟가지의 큰 서원을 발하여 훌륭한 세상을 세울 것을 다짐하고, 마침내 성불하여 서방에 극락세계를 이룩하신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항상 그곳에 계시면서 이 세상의 온갖 괴로움에서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을 극락세계로 이끌어 주시는 부처님이십니다.
극락은 서쪽으로 십만억국토를 지나서 있다고 하여 서방극락세계라고도 합니다. 모든 불국토 중에서 가장 장엄한 세계라고 합니다. 극락에 나면 죄와 고통이 없고 무엇이든지 자기의 뜻대로 이루어지며, 더없이 청정한 곳이기 때문에 법문을 듣고 수행하면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이 누구나 성불하게 됩니다.
이러한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미타부처님을 진심으로 믿고 염불하면, 이 부처님의 원력에 의해 극락세계에 태어나므로, 염불을 할 때 아미타부처님을 생각하여 그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이 부처님은 원만무애한 자비, 지혜, 신력과 무한한 광명과 수명을 가진 분으로서, 아무리 죄업이 두텁고 사악한 사람이라도 아미타부처님을 생각하며 일심으로 염불하면, 이 부처님의 위대한 신통력에 힘입어 반드시 극락에 태어납니다.
그러나 극락은 꼭 십만억국토를 지난 먼 곳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부처님을 섬기고, 착한 마음으로 이웃과 화합하면서 바르고 즐겁게 살아 간다면, 그렇게 맑고 밝은 마음은 곧 극락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관자재보살'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관음보살이라 하기도 합니다. 관자재란 밝은 지혜를 얻어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재한 힘을 가졌다는 뜻이고, 관세음이란 이름 그대로 세상의 음성을 관장한다는 뜻입니다. 대자대비의 덕을 근본서원으로 하는 극락세계에서 아미타부처님을 돕는 보살님입니다.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시방세계를 비롯한 다른 모든 세계에 나타나서, 석가모니부처님을 돕는 자비의 화신입니다.
경전에 의하면 관세음보살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중생이 온갖 고뇌와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누구든지 나를 생각하고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어디에 있든지 천개의 귀로써 듣고, 천개의 눈으로 보아 그를 고통에서 구할 것이다."
이렇듯 관세음보살님은 무한한 자비의 능력으로 우리의 곁에서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고통을 당하거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면, 언제 어디라도 오셔서 그 원하는 바를 들어주시고 편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어머니와도 같으신 관세음보살님은 중생의 근기나 형편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몸을 나투시고 다가오기 때문에, 누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평등하게 구제해주시는 분입니다.


14. 불교의 상징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무엇을 의미합니까?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들을 위하시는 마음이 넓고 깊으셔서 중생 각자의 모습과 형편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화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슬기로운 지혜와 덕을 상징하고, 그 가르침을 나타내는 상징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대표적은 몇 가지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①불교기
불교기는 1956년 실론(지금의 스리랑카)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정식으로 승인하여, 현재 모든 불교국가와 불교단체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는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3:2이며, 바탕은 다섯 가지의 색(청색, 황색, 적색, 백색, 주황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로로 그은 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로로 그은 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영원히 변함없다는 뜻을 각각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청색은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불법을 구하는 정근, 황색은 찬란한 부처님 몸의 빛과 같이 변하지 않는 굳은 마음을, 적색은 항상 쉬지 않고 수행에 힘쓴느 정진, 백색은 깨끗한 마음으로 온갖 번뇌를 맑히는 청정, 주황색은 수치스러움과 그릇된 길로의 꾀임에서 잘 견디어 이기는 인욕을 상징합니다.

②법륜
법륜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항상 구르고 굴러서 모든 중생들을 깨우쳐 구제하는 것입니다. 마치 수레바퀴와 같다는 뜻으로 법륜이라고 합니다.

③연꽃
연꽃은 진흙 속에 피어나는 꽃이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성스러운 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연꽃과 같이 항상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더없이 거룩하고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싯다르타태자가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났을 때, 태자가 동서남북으로 일곱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땅에서 연꽃이 솟아 올라 태자를 떠받들었다는 데서 연유해 불교 꽃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연꽃은 진흙(사바세계)에 뿌리를 두되, 거기에 물들지 않고 하늘(깨달음의 세계)을 향하여 피며, 꽃송이가 크지만 몇 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게 아니라, 중심을 향하여 겹겹이 다 붙어 형성된 모습이 불두를 연상시킵니다. 성스럽고 아름답지만 요란한 향기가 나지 않는 것이 마치 부처님과 같아서 불교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④등
부처님께서 사위성에 머무르시며 설법을 하고 계실 때에, 프라세나짓(바사닉) 왕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위해 수만 개의 등불을 밝혀 등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때에 사위성에는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부처님을 위하여 지나가는 행인에게 동전 두닢을 빌어, 깨어진 그릇에 기름을 구해 부처님이 계시는 길 모퉁이에 등불을 밝히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등불 하나를 밝히오니 이 공덕으로 다음 세상에 깨달음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중에 부처님의 제자인 목건련존자가 가사자락으로 등불을 끄려고 하였지만, 오직 이 가난한 여인의 등불만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목건련아. 이것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여인의 지극한 정성으로 켠 등불이므로 꺼지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등불과 같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 주시며, 우리들의 마음을 밝게 비추어 주십니다. 등불은 곧 부처님의 자비요, 광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께서 오신 '사월 초파일'에 정성들여 만든 등을 부처님께 올리고, 온 누리에 부처님 법의 등불을 밝혀, 어둠과 어리석음에서 헤매는 중생들을 밝은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⑤코끼리
코끼리는 모든 짐승 가운데 가장 힘이 세고, 점잖으며, 자비로운 동물입니다. 코끼리가 불교를 상징하게 된 것은, 속세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하얀 코끼리가 품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다음에 싯다르타태자를 잉태하게 된 까닭으로 우리 불교와 인연이 깊은 동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⑥용
용은 옛날부터 신성한 동물로 알려진 행운의 상징인데 불교와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게 된 데에는 크게 두가지의 연유가 있습니다.
<수행본기경>에 보면, 싯다르타태자가 태어났을 때 하늘나라의 '가라'와 '울가라'라는 두 용의 신이 차갑고 더운 두줄기의 물을 쏟아내려 태자를 목욕시키고, 하늘에서 꽃비를 내리게 했다는 탄생설화가 있습니다.
또한 <보요경>에는 싯다르타태자가 태어나셨을 때, 아홉 마리의 용이 내려와서 향기로운 물을 뿌리어, 태자의 몸을 깨끗이 씻어드렸다는 탄생설화가 있습니다.

⑦보리수
보리수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나무인데 일명 '깨달음의 나무' 또는 '지혜의 나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서 수행을 하셔서 마침내 큰 깨달음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⑧사슴
사슴은 옛날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동물이며, 특히 불교와는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닫고 나서, 처음으로 교진여 등 다섯 명의 비구를 위해 설법하신 곳이 녹야원(사슴 동산)입니다. 지금도 녹야원에서는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사슴을 방목하고 있다고 합니다.

⑨卍
卍(만)자는 '길상' 즉, 행운을 뜻합니다. 경전을 보면 "여래의 가슴에 육인(六印)의 상이 있는데, 형상은 卍자와 같다. 이를 길상해운(吉祥海雲)이라고 한다. 卍자는 금강과 같이 견고한 승장(勝藏)으로서 마음을 장엄한다. 일체의 마구니가 다 온다 할지라도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卍자가 심지(心地)를 장엄하는 표상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심지를 장엄한다고 하는 것은 만가지 덕이 모인 것을 말하는데, 덕이 많으면 반드시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가슴이나 머리, 손, 발들에 나타난 卍자의 형상도 덕의 총체로서 길상과 행운의 상입니다.
卍자는 태양이 빛을 발하는 모양으로 사방에 다 뻗쳐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가로는 삼세(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고, 세로로 그은 것은 시방을 나타냅니다. 즉, 卍자는 시간과 공간을 두루 다 포함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데, 이처럼 부처님의 몸에 드러난 덕의 형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방으로 꺾인 모양은 범부의 마음에서 부처님의 마음에 이르는 것을 상징하며, 반대로 부처의 마음에서 범부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부처님이 중생의 몸으로 깨달음을 이루어 성불하신 것은 앞의 경우에 해당하고, 성불하신 뒤에 사바세계에서 45년간 중생과 함께 생활하시며, 교화하신 것은 뒤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15. 지장보살과 약사여래는 어떤 분이십니까?


지장보살님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속세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위하여 도리천상에서 설법하실 때 부처님으로부터 남다른 칭찬과 부촉(당부)을 받았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부터 미륵부처님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중생들을 교화하며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분입니다.
지장이란 '대지에 간직된 것'이라는 뜻으로, 대지의 모든 것이 딛고 뿌리 내리는 곳이며, 무엇이든지 다 차별 없이 받아주는 곳입니다. 대지는 생물을 살게 하며 자라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러한 지장보살님은 특히 사바세계의 중생과 인연이 깊어 남방화주(교화의 주인공)로 불리어지는데, 매일 아침 깊은 선정에 들어 모든 이들의 마음과 근기를 살펴보시고, 죄를 범하고 고통받는 중생을 건지기 위해 저들이 지닌 아주 작은 공덕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성숙시켜 천상이나 극락에 나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렇게 지장보살님은 중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수많은 몸을 나투시어 큰 위신력으로 도와주시기 때문에, 그 모습을 무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중생 모두에게 진리의 여의주를 지니게 하여 거기에서 한없는 공덕을 받아 쓸 것을 가르치십니다.
영혼을 천도하는 재를 올릴 때 지장보살님을 많이 염하는 것은, 지장보살님은 죽은 사람이나 지옥에 있는 중생을 구제할 뿐만 아니라, 고통받는 중생을 언제나 함께 제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약사여래는 '약사유리광여래', '대의왕불'이라고 불리어지는데, 아미타부처님은 서방극락세계(서방정토)의 부처님이시지만, 약사여래는 칠보로 이루어진 동방정유리세계의 부처님이시기도 합니다.
약사여래께서는 과거에 열두가지의 큰 원을 세워 마침내 성불하셨는데,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수명을 늘리십니다. 온갖 재난을 소멸하시고 중생들에게 옷과 음식을 넉넉히 주어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시며, 부처님의 진리를 잘 닦고 실천하면 높은 깨달음을 얻게 해주십니다.
약사여래께서는 왼손에 약병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이 보이도록 하여 남에게 물건을 베풀어 주는 형상을 하고 계십니다.


16. 공양이란 무엇입니까?

공양이란 '공급하여 자양한다'란 뜻으로, 음식이나 옷, 향 등을 부처님이나 보살님, 부모, 스승, 죽은 이에게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팔상록>에 보면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전생에 호명보살이셨답니다. 그때 연등부처님께 꽃을 바친 공덕으로 수기를 받아 대각을 이룰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 정성을 바치는 행위를 공양이라고 합니다.
공양에는 물건을 바치는 공양과 진리를 바치는 법공양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법공양은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적 신념을 뚜렷이 표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자신의 믿음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상의 공양인 법공양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를 배워 널리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혼자만 배워 알고 즐거워 할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전해서 함께 참 삶의 길을 걷도록 하는 노력입니다.
이 공양이란 말은 '재'와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공을 올린다는 것은 곧 지극한 정성을 올린다는 말입니다. 또 정성을 드린다는 것은 어떠한 하나의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재를 올리는데 물질적으로 많이 차려야만 훌륭한 불공은 아닙니다.


자기 분수에 맞게 정성껏 하면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많은 돈을 들여서 불공을 했지만 자신은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행위를 한다면, 이러한 불공은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재의 의식을 보면, 어느 신자의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을 초대하면, 부처님께서는 여러 제자들과 함께 그 집에 가서 식사를 하시고는 대개 설법을 하심이 상례였습니다. 설법이 끝나면 신자들은 의문나는 점이나 평소에 생각했던 점을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을 차려서 대접하는 것을 재라했고, 모르는 것을 알도록 설법하고, 법문을 듣는 것도 재라고 했습니다.


17. 불공은 어떻게 올리며, 특히 부처님께 향과 촛불을 올리는 뜻은 무엇입니까?

불공이란 우리들이 거룩하고 존귀하신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촛불, 향, 꽃, 차, 과일 등의 공양을 올리는 의식을 말합니다. 또한 불공은 진리이신 부처님을 믿고 따르며, 부처님의 크고 높으신 공덕을 찬양하고 우러르며, 밝고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여 부처님과 같이 참다운 이치를 깨닫는 것을 다짐하는 기도의식입니다. 이는 더없이 거룩하신 부처님과 보살님께 내가 바라는 것이 잘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비는 믿음이며, 참되고 올바른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가겠다고 하는 스스로의 다짐이자 부처님과의 약속입니다.
이런 뜻을 가진 불공은 대략 다섯가지의 요소를 갖추어야 하는데, 귀의, 참회, 공양, 발원, 회향입니다. 이 중에서 불공의 중심은 공양이며, 공양은 향이나 꽃, 음식 등을 삼보(불, 법, 승)나 부모님, 스승 또는 돌아가신 이에게 올리는 것이지만, 불공이라 함은 보통 삼보께 공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양하는 물건이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재물로써 공양하기도 하고, 자비와 보리심으로 자리이타의 행을 하는 공양(관행공양)도 있습니다.
몸으로 하는 예배공양과 입으로 하는 공덕찬탄과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기리는 공양을 '삼업공양'이라고 하며, 음식, 의복, 와구, 탕약 등을 올림을 '사사공양'이라고 합니다. 또한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을 '법공양'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은 모든 공양 중에서 법공양을 가장 큰 것이라고 중시하셨습니다.
이는 재물과 기타 물질로 공양하는 것도 공덕이 크지만, 진리인 불법을 알려줌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환희심을 일으켜 바르고 성실하게 살도록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펴서 널리 전하는 것이 중생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이익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향과 초는 스스로 몸을 태움으로써 향기와 빛을 발산합니다. 향은 여러 가지 모양과 빛깔을 가졌지만 그것들이 함께 몸을 태울 때 그 연기는 한데 어우러져 피차가 없습니다. 이는 이기심과 분별심을 뛰어 넘어 모든 사람이 화합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촛불을 밝힘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는 자기의 몸을 연소시킴으로서 주위를 밝혀 모든 사물을 드러내어줍니다. 이것은 자기희생입니다. 한 두 자루의 초가 스스로 몸을 불살라 그의 사명을 다하는 것처럼, 자기를 헌신하면 이와 같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18. 법당에는 세 분의 부처님이 모셔진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불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한분만 모시는 경우가 많으나, 절에 따라서 본존불(주불)의 양쪽에 다시 두분의 부처님이나 보살님을 모셔서 삼존불이 되어 있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일부의 예외는 있으나, 석가모니부처님이 모셔진 대웅전에는 부처님 양쪽에 문수보살님과 보현보살님이 모셔져 있고, 아미타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극락전에는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이 모셔져 있으며,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에는 일광보살님과 월광보살님이 함께 모셔져 있습니다.
또한 비로자나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비로전에는 좌우에 석가모니부처님과 노사나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은 대우주의 진신으로서 법성상주한 법신불(法身佛)이고 , 노사나부처님은 지혜와 자비를 두루 갖춘 공덕의 모습을 나타내는 보신불(報身佛)이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그 자체가 본래 진리이나, 중생들의 근성이나 능력에 따라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몸을 나툰 화신불(化身佛)이십니다. 그러나 이 셋은 이름만 다를 뿐 그 본체는 같습니다.
즉, 어떤 대상을 나타내는 데에는 본성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성질이나 일정한 형상이 있듯이, 세분의 부처님을 모시는 것도 이와 같이 우주법계의 합일을 나타내기 위한 데에 그 뜻이 있습니다.


19. 불교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이외에도 다른 부처님이 많은데, 무슨 까닭인지요?

불교의 시작은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이지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는 본래 없던 것이 아닙니다. 이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진리는 본래 처음도 끝도 없이 영원한 것인데,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수행을 통해 이치를 바로 아신 것입니다. 마치 훌륭한 광부가 금을 캘 수는 있지만 만들지는 않는 것과 같이, 부처님이 진리를 깨치신 것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만약 만들 수 있는 것이 라면 그것은 진리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불교의 교리는 다만 이론적인 가르침이 아니고 영원불멸한 것으로서, 석가모니부처님 이전에도 우주가 존재하고 있었듯이, 많음 부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적인 증거가 없다 하더라도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것이므로 믿어야 합니다.


20. 법회 때 삼귀의와 사홍서원을 하는 뜻은 무엇입니까?

삼귀의란 삼보에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삼보란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를 말하는데, 불보는 깨달으신 어른, 즉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은 우주만상의 진리인 법을 증득하신 보석과 같은 존재이므로 불보라고 합니다.
법보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법으로서, 부처님의 교법은 이 세상에서 비할 데 없이 수승하고 완전하며, 이 법에 의지하여 믿고 닦으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보석에 비유하여 법보라고 합니다.
승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 행하여 깨달음의 길을 가는 승단을 말하는데, 부처님의 법을 호지하여 진리를 영원히 세상에 전하는 존귀한 단체이기 때문에 승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삼귀의란 불교에서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안될 존귀한 삼보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그를 의지하고 따름으로서, 하나의 완전한 인격을 갖추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라 하겠습니다.
사홍서원은 앞에 소개된 대로 네가지의 넓고 큰 서원으로서, 보살이나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총원이라고도 하는데, 이 안에 보살의 모든 원이 다 포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