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한국 사회를위한 메시지를 가졌는가?(사회 과학 심포지엄 기조강연)
먼저 이 시간 천주교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을 기념하여 가지게 된 사회 과학 심포지엄에 이같이 많이 참석하여 주시고 큰 관심을 보여 주셔서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공사간에 바쁘신 분들인데도 이 심포지엄을 위해 준비하여 주신 분, 주제 발표를 해주실 네 분의 선생님들과 토론에 참여하실 여러 선생님께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말씀드립니다. 이울러 장소를 쾌히 빌려 주신 서강 대학교 당국에도 사의를 표합니다.
대사회 윤리적 판단은 교회의 의무 한국 사회와 가톨릭 이것이 오늘 이 심포지엄의 큰 주제이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특히 천주교가 이 땅에 전래되어서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특히 근대화에 어떻게 이바지했으며, 이바지했다면 특히 어떤 점을 긍정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가를 살피면서 아울러 그런 가운데 부정적인 면은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솔직히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150년의 과거를 한번 정리해 보고 더 나아가 앞으로 교회는 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인간과 사회 전반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겠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 이 심포지엄의 목적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천주교라는 한 종교가 현실 사회 발전 내지 개혁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메시지를 가졌는가?" 이런 의문을 어쩌면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 중에서도 또는 우리 사회 안에서도 많은 분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 종교란 순전히 내적인 것, 개개인의 영혼을 구하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현실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종교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고 보는 분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종교를 그렇게 보시는 것은 적어도 저희 가톨릭에 한해서는 너무나 좁게 보시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로는 정교 분리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가톨릭은 가톨릭대로 그리스도 복음의 빛에 비추어서 인간관, 사회관, 국가관, 세계관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정치나 경제의 윤리적인 측면의 판단은 교회도 할 수 있고 또 때로는 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나 경제가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침해한다든지 사회 정의에 위배되는 짓을 자행할 때에는 교회는 과감하게 그릇됨을 지적하고 때로는 그 시정을 위해 투쟁도 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땅에서부터 시작 "어떻든 교회는 참으로 사회 발전을 위한 메시지를 가졌는가? 현사회 문제에 대하여 교회가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교회 본연의 영역 밖의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우리 교회 안에서 아직도 많은 분들이 가지고 계시고 심지어 성직자들 가운데서도 신자들 가운데서도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분명히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사회 문제에 대하여 그 고유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가톨릭을 비롯한 그리스도교의 근본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의 중심 테마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란 후세의 천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룩되기를 기도하는 그대로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정신에 따르면 하느님은 만민의 아버지시요 만민은 인종이나 피부색, 민족, 국경 사회 계급 등 일체의 차별을 초월하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이며, 따라서 서로는 형제입니다. 때문에 `하느님 나라'는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서로 형제적 사랑으로 맺어지는 곳에 시작되고 이룩됩니다.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된다는 말은 모든 인간이 그만큼 크게 또 한없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말이요 바로 이 사랑에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평등과 근거가 있고 또한 상호간에 사랑해야 하는 이유, 즉 모든 인간을 인간으로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느님에게 가장 큰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요 아울러 이 인간들이 당신 안에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전하는 근본 메시지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도 죄 많은 인간을 다시 구원하기 위해 본시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어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또한 부활하시어 당신의 얼인 성령을 보내심도 이 때문이고 교회를 세우심도 이 때문입니다. 교회는 참으로 그리스도로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으로, 아버지이신 그분 아래 전 인류를 `하나'로 만드는 데 그 사명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헌장 첫 항에서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 및 모든 인간 상호간의 일치의 성사요 표지요 도구이다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인간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국가나 세속에 대하여 분명히 해야 할 말이 있고 따라서 정치와 경제에 대해서까지 교회는 인간과 사회 공동선을 위해 해야 할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역대 교황들은 사회 회칙이라는 것을 발표하여 정치, 경제, 노동 문제 등에 언급하면서 어디서나 그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며칠 전에도 일간지에 발표된 대로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노동 문제에 대하여 회칙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조 운동은 노동자의 권익 옹호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교회는 근로자들을 돕는 데 헌신해야 한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의 문제는 "교회는 현실 사회 문제에 대하여 메시지를 가졌는가?"가 아니고 "교회는 현실의 인간 문제, 사회 문제에 대하여 그 본질의 메시지를 왜 충분히 선포하고 있지 않는가? 왜 교회는 현실을 외면하고 초월적인 것만을 말하여 왔는가?"라고 비판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시간이 이런 면을 깊이 다루어 주시리라 믿고 다시금 참석하신 모든 분, 주제 발표하실 분들과 토론에 참여하실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두서 없는 인사에 대신합니다. (1981. 9. 19. 서강 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