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미술가는 서로 필요하다 (가톨릭 미술가의 날 세미나) 제1 장 - 12 -
종교와 예술은 불가분의 관계 오늘 미술가의 주보이신 복자 프라 안젤리코의 축일을 맞아 서울 가톨릭 미술가회 주최로 `한국 교회 미술의 오늘과 내일'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이 자리에 이처럼 많은 뜻 있는 분들이 한데 모여 주셔서 참으로 반갑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교회 건축을 위주로 생각해 보고자 모인 줄로 압니다. 생각해 보면 종교와 예술은 본래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예술은 유구한 세월의 흐름을 통해 어느 문화에서나 종교와 일체를 이루어 온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종교 가치가 예술 가치와 동일한 것은 아니겠으나 인류 역사를 통해 보면 이 둘은 대체로 함께 부침해 왔습니다. 그것은 역시 모든 예술은 그 본질부터가 어떤 초월의 증언이자 또한 그 상징적 구현의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자아를 초월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일 수도 없는 인간 본연의 가장 순수하고 민감한 발로인 까닭입니다. 그렇기에 미술은 진실로 인간다운 것을 넘어 종교적인 것, 아니 신적인 것을 표출하려는 경탄할 노력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미술을 남달리 이해하고 존중하시던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그 후반에 접어든 1964년 5월 어느 날, 자진 미술가들을 시스틴 성당으로 초청하여 만나신 자리에서 이런 뜻 깊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만인의 몫이 된 예술적, 정신적 유산이 교회와 예술과의 밀접한 사귐에서 태어났음"을 우선 상기시키면서 "그 사귐이 베풀어 준 모든 가능성을 우리는 (미술가) 여러분에게 (새삼) 바라고 청해야겠습니다. 따라서 미술이 하느님 숭배에 합당한 기능과 목적의 범위 안에서, 여러분이 부를 수 있는 자유롭고 힘찬 노래가 울려 나오도록 여러분 자신의 목소리에 맡겨 두어야 옳겠습니다." 그것은 "예술이 전혀 없는 곳에는 종교 예술이 있을 수 없고 예술이 적은 곳에는 종교 예술도 적기" 때문이며, "그리스도교 예술을 살리려면 그 시대마다 살아 있는 예술의 거장들에게 호소해야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술가에게 지워진 막중한 책임 바티칸 박물관 내에 현대 종교 미술 부문이 열리게 되었던 것도 미술가와의 이 만남이 그 발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의 사정은 어떠합니까. 또 앞으로는 어디로 가야겠습니까. 한 나라에서 신앙이 얼마나 참되게 뿌리 내렸는가를 가늠하는 좋은 잣대가 있다면 여러 다른 기준도 있겠지만, 얼마나 복음적 삶을 살고 있는가, 성소자 수, 선교사 수 또는 사랑의 나눔으로 사회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그 예술적 표현의 성숙 여부일 것입니다. 제가 1968년에 서울 대교구로 부임했을 때에는 본당이 모두 합쳐서 43곳인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던 것이 26년 사이에 무려 157곳으로 불어났습니다. 이 달 안에 6개 본당이 신설될 예정입니다. 그러면 163개가 되는데 그중에서 당장 성당을 지어야 할 곳이 11군데, 멀지 않아 지어야 할 곳이 25곳이나 됩니다. 전국적으로는 특히 대도시나 신도시의 경우 모두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고맙고도 놀라운 현상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종교 미술 창출의 다시없는 호기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와 민족 앞에서 우리 교회 공동체와 미술가에게 지워진 막중한 책임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가는 신앙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느님과 만나는 지상 전례를 함께 거행하는 곳이 교회당이라면 그 공간이 가진 쓸모와 뜻은 대단히 큰 것입니다. 그 자리는 참으로 하느님과 인간이 깊이 만나는 자리,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자리, 우주적인 통합 일치의 의미를 지닌 자리, 사랑과 평화가 담긴 자리입니다. 그 쓸모와 뜻과 아름다움을 하나로 이루어 보려는 새로운 안목과 진지한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봅니다. 비단 교회 공간의 건축뿐이겠습니까. 교회 미술 전반이, 상본에서 십자가상에 이르기까지 신자 하나하나의 마음속 저 깊이까지 미치는 힘과 그 작용에 대해 예술가와 사목자가 다 함께 벌써부터 깊이 생각했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인 중 여럿이, 특히 서방에서, 그 사회가 내쳐 버린 신앙에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고무적인 일입니다. 더욱이 한국에서처럼 많은 성숙한 예술인이 스스로 신앙을 찾는 마당에서는 더 이상 어설픈 외래에 의존함이 없이 진정한 우리의 언어로 일을 훌륭히 해내리라는 크나큰 기대를 걸어 봅니다. 아무쪼록 여기 모이신 여러분께서 참신하고 활기 찬 전기를 마련하는 데 앞장서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1994. 2. 18. 명동 문화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