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이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글

문성식 2011. 2. 19. 15:40

 

 

 




겨울을 나기 위해 잠시 남쪽 섬에 머물다가 강원도 오두막이 그리워 다시 산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며칠 세상과 단절되어 지내다가, 어제서야 슬픈 소식을 듣고 갑자

기 가슴이 먹먹하고 망연자실해졌다.

추기경님이 작년 여름부터 병상에 누워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나 또한 병중이라 찾아뵙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기도를 올리며 인편으로 안부를 주고받았었다.

그런데 이토록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시다니!

십여 년 전 성북동 길상사가 개원하던 날,

그분은 흔쾌히 나의 초청을 받아들여 힘든 걸음을 하시고,

또 법당 안에서 축사까지 해주셨다. 그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첫 만남의 자리에서도 농담과 유머로써 종교간의 벽, 개인간의 거리를 금방 허물어뜨렸다.

그 인간애와 감사함이 늘 내 마음속에 일렁이고 있다.

그리고 또 어느 해인가는 부처님오신날이 되었는데,

소식도 없이 갑자기 절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오셨다.

나와 나란히 앉아 연등 아래서 함께 음악회를 즐기기도 했었다.

인간의 추구는 영적인 온전함에 있다. 우리가 늘 기도하고 참회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깨어지고 부서진 영혼을 다시 온전한 하나로 회복시키는 것,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 사회와 국가 전체, 전 인류 공동체로 확대된다.

우리가 만든 벽은 우리를 가둔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자신 안에서나 공동체 안에서나 그 벽을 허무는 데 일생을 바치신 분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분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말한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를

삶 속에 그대로 옮기신 분이다.

나와 만난 자리에서 그분은 "다시 태어나면 추기경 같은 직책은 맡고 싶지 않다.

냥 평신도로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하심(下心)',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실천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느님을 말하는 이가 있고, 하느님을 느끼게 하는 이가 있다.

 하느님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그 존재로써 지금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있음을

영혼으로 감지하게 하는 이가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이를 잃은 슬픔에 젖어 있다.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

그분이 그토록 사랑한 이 나라, 이 아름다운 터전에 아직도

개인 간, 종파 간, 정당 간에 미움과 싸움이 끊이지 않고

폭력과 살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진다.

이러한 성인이 이 땅에 계시다가 떠났는데도 아직 하느님의 나라는 먼 것인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단순함에 이른 그분이 생애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준 가르침도 그것이다. 더 단순해지고, 더 온전해지라. 사랑은 단순한 것이다.

단순함과 순수함을 잃어버릴 때 사랑은 불가능하다.

그분이 더없이 존경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씀이다.

 "사람은 결코 나면서부터 단순한 것은 아니다.

자기라는 미로 속에서 긴 여로를 지나온 후에야 비로소 단순한 빛 속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고 하느님은 단순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느님께 가까워지면 질수록 신앙과 희망과 사랑에 있어서

더욱더 단순하게 되어간다.

그래서 완전히 단순하게 될 때 사람은 하느님과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김수환 추기경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우리들 마음속에서는 오래도록 살아 계실 것이다. 위대한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리가 그분의 평안을 빌기 전에, 그분이 이 무상한 육신을 벗은 후에도

우리의 영적 평안을 기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분은 지금 이 순간도 봄이 오는 이 대지의 숨결을 빌어 우리에게 귓속말로 말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