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시대의 예언자, 김수환 추기경 Ⅱ- 인간애

문성식 2011. 2. 15. 22:10

 

 

 

 

시대의 예언자, 김수환 추기경 Ⅱ- 인간애
 
핍박받는 이들에 ‘살아있는 하늘’ 되어준 참 벗
 
 
<사진설명>
▲ 1999년 2월 설날을 맞아 화재로 임시 천막생활을 하고 있는 화훼마을 주민들을 방문한 김 추기경이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 집없는 이들을 위한 청빈선언 대행진(1997)에서 고 제정구 의원등과 행진을 하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
▲ 김 추기경이 1986년 12월 24일 상계동 철거민들과의 성탄 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일생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가 ‘사랑’이라면 그 사랑의 대상이 바로 ‘인간’이다. 김 추기경은 늘 ‘인간’ 그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 김 추기경을 만난 많은 이들은 ‘인간’을 빼고 김 추기경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그것은 인간을 위하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다운 삶이 유린되는 사회와 개인을 구원하여 사랑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입니다.”(1986년 3월, 정의와 평화를 구하는 9일 기도 메시지)
 
 
인간, 인간, 인간….
 
1995년 여름, 삼풍 백화점이 붕괴했다. 김 추기경은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직접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희생자를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 미사에서 김 추기경은 ‘인간’이 없는 세상을 질타한다.
 
“우리가 돈보다는 사람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았더라면,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루카 9,25)고 하신 복음 말씀대로 인간과 인간 생명이 모든 가치 중에서 제일간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살아왔더라면, 그리고 누구보다도 우리 정치인과 경제인들에게 이런 인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에 앞서 있었더라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밤 10시, 텔레비전에 무허가 판자촌에서 화재가 났다는 뉴스가 나오면 곧바로 빈민사목 담당 사제에게 전화를 걸어 찾아가라고 독려하던 그였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당장 찾아가서 미사를 봉헌하자고 말한 것도 그였다.
 
탄광 노동자들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겠다고, 강원도 사북까지 찾아가기도 했고,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매매춘 여성 보호시설을 찾아 상처 입은 영혼들의 여린 손을 잡아주었다.
 
인간을 사랑한 인간, 김 추기경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파생된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 기본권’과 ‘사회 정의’가 지켜져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도 고귀한 창조 사업의 협력자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김 추기경은 ‘인권 모독’ ‘인권 침해’ ‘인권 유린’등과 관련된 사건에는 유난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김 추기경은 1995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인권 회복을 위한 기도회’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군의 만행은 인권에 대한 모독이며 용서받을 수 없는 인권 유린”이라며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범한 모든 반인륜적·반도덕적 죄를 깊이 인식하고 뉘우치고 사죄해야 한다”고 분노했다.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하시어 당신과의 생명의 나눔에 초대하시고 같은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부르셨습니다. 사실 성경을 보면 하느님의 첫째 관심사는 인간이며 또한 하느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것도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를 완전히 존중하심과 동시에 세계와 우주의 주인이 되도록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의 창조 사업의 협력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종교 등의 모든 목적은 인간을 위한 것, 즉 하느님 사업의 협력자로서의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거룩한 소명에 따라 궁극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도록 전 인간적인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인간의 문제가 모든 문제의 핵심이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1988년 11월, 일본 상지대학 강연)
 
더 나아가 그에게는 신학도 인간을 위한 신학, 우리를 위한 신학이었다. 아니, 인간을 위한 신학 우리를 위한 신학이어야 했다.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정신만이 우리 모두를 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우리 모두를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런 사람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진정 보다 인간다운 사회가 되고 이 땅에는 참된 화해와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나아가 이 정신은 남북 분단의 미움의 벽도 무너뜨려 평화 통일의 길을 열어줄 것이고 우리나라로 하여금 온 인류 세계를 가슴에 안는 나라 되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1994년 5월, 연세대학교 강연)
 
이러한 믿음 때문에 김 추기경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면 어김없이 자신의 시간을 내놓았다. 특히 그가 우선적으로 만난 이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늘‘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서울대교구장직을 수행하는 바쁜 일정 가운데도 해마다 성탄 전야에는 소외된 이들이 살고 있는 복지시설 등지를 찾아가 성탄 미사를 함께 드린 것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진한 인간에 대한 애정은 그를 늘 소외된 곳에 있게 했다.
 
“우리 자신이 변해야 세상이 변합니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진실한 인간, 정의의 인간, 사랑의 인간이 되어야 세상이 진리와 정의와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1979년 4월, 영등포 교도소 미사)
 
“주님은 바로 우리 인간이 죽음의 운명을 쓰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리를 위해 오셨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원 하셨습니다.”(1999년 7월, 서울구치소 사형수들을 위한 미사)
 
김 추기경은 기회가 닿을 때 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갔다. 사북 탄광을 찾아 탄광 체험을 했으며, 사형수 및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미사를 직접 주례했다. 또 매춘 여성들을 위해 큰 관심을 기울이는 등 수많은 복지시설을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오늘날 서울대교구 사회복지사목, 노동사목, 빈민사목의 틀은 대부분 김 추기경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교회 사회복지 활동에 대한 대 사회적인 높은 인지도는 대부분 김 추기경에 의해 다져진 것인 셈이다. 한국 교회는 그의 ‘인간사랑’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이 시대 인간의 벗
 
김 추기경은 본당에 견진성사 방문을 하게 되면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묻는 등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다. 빈민촌에 예고도 없이 찾아가 철거민들과 대화했다. 서슬 퍼런 유신 시대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달려가서 호소할 때 기꺼이 만나주었다. 아파하는 사람들의 호소에 함께 아파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서울대교구 주수욱 신부는 그런 김 추기경을 두고 “김 추기경은 지독하게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이 공업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이로써 온 국민이 가난에서 탈출하기를 꿈꾸던 시기에 가난한 노동자들 편에 서서 자신의 온 몸을 던지신 이 시대의 진정한 벗”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신앙했기에, 동일방직 노조원들이 오물을 뒤집어쓰고 옷이 벗겨진 채 끌려갈 때, 이에 분노하고 그들을 위로했다. 심지어는 강화도의 작은 공장 노동자들이 해고되었을 때, 이 사안을 주교회의에서 다루도록 하기까지 했다.
 
김 추기경을 알고 있는 사제들은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와 대화하고 사회 한가운데서 자신의 견해를 말하면서 하느님의 생생한 말씀을 전하고 세상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김 추기경이 있었기에 더 이상 세상이 교회를 낯설어하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세상의 가난한 이들, 힘없는 이들에게 선뜻 다가가는 김 추기경을 보면서 한국 사회는 교회를 더 이상 낯선 종교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이다. 인간 김 추기경의 진한 인간애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 추기경은 우리들의 벗이었다.
 
[가톨릭신문, 2009년 2월 22일,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