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서소문 순교터 성지(서소문 공원 내) 서소문 순교자기념관
▲서소문 밖 순교터 성지
103위 순교 성인들 중 44명의 성인 성녀와 124위 시복시성추진 대상자중 25명과 함께 수많은 순교자들을 탄생시킨 한국 최대의 순교지가 바로 서소문 밖 네거리이다.
한국 교회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은 바로 이곳에서 "월락재천수상지진(月落在天水上池盡)", 즉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물은 솟구쳐도 연못에서 다한다."라고 하여 굽히지 않는 신앙을 증거한 바 있다.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숨져 간 순교자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중 성인품에 오른 이만도 44명으로 이들은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39년 기해박해,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통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희광이의 칼 아래 스러져 갔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서소문 밖 형장이 기억하는 첫 인물은 만천(蔓川) 이승훈이다. 그는 한국 교회 최초로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훗날 조선 교회의 베드로로서, 본명이 의미하는 반석(盤石)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조선 교회의 반석으로 전교에 힘쓰던 그는 신유박해의 서슬로 최필공·정약종·홍교만·홍낙민·최창현 등과 함께 포졸들에게 잡혀 서소문 밖 형장으로 끌려간다.
사회적 명망이 높은 이들 여섯 명의 당당한 태도와 굳센 신념은 그들을 쳐다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 정약종은 약현·약전·약용 형제와 함께 이승훈의 처남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라고 할 수 있는 명도회의 회장을 역임한 그는 강직한 성품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주자학과 도가 사상을 깊이 탐구했다.
그러나 그는 마침 서양문물과 함께 들어온 한역 천주교 서적들을 손에 넣게 되고 주어사 강학회를 통해 천주교를 수용한다. 같은 때 강완숙을 비롯한 여교우들도 한꺼번에 참수된다.
최초의 여신도 회장이자 주문모 신부를 숨겨 준 죄목으로 아들 홍필주와 함께 체포된 강완숙은 몇 번이나 주리를 틀리면서도 주 신부의 거처를 함구하다가 다른 4명의 여교우와 함께 이승훈 등이 처형된 그 자리로 끌려 나간다.
▲서소문 밖 순교터 위치도
▲서소문 밖 순교터 성지
▲서소문 밖 순교터 성지
▲서소문 밖 순교터 성지
▲서소문 밖 순교터 성지
▲서소문 밖 순교터 성지
■ 순교자
신유박해(1801년) 때 부터 이곳은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여지기 시작했는데 이승훈(베드로)을 비롯하여 정약종(아우구스티노), 강완숙(골롬바), 최창현(요한)등 주로 평신도 지도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또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때에도 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하였는데 기해박해 순교자 41위와 병인박해 순교자 3위가 각각 1984년에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순교자 현양탑
1839년의 기해박해 때에도 서소문 밖 형장에서는 순교자들의 피가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이 때 처형된 이들 중에서 41명이 성인품에 올랐는데 그중에는 성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도 포함돼 있다.
그는 고문의 혹독함에 굴복해 한 번 배교한 후로는 더욱 굳건한 신앙으로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과 그의 누이 정정혜 그리고 정하상과 같이 북경을 여러차례 다녀온 유진길과 불과 13세의 나이로 부친과 함께 순교한 유대철 소년 역시 기해박해 때의 순교자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서소문 밖 네거리는 또다시 피로 물든다. 베르뇌 주교 등 외국 선교사들이 순교하던 바로 그 날 여기서는 남종삼, 홍봉주가 피를 흘린다. 그리고 이들의 머리가 네거리 말뚝에서 채 내려지기도 전에 최형·전장운의 목이 잘린다.
▲순교자 현양탑
▲순교자 현양탑
▲순교자 현양탑
서소문 밖에서의 순교사는 대략 세 단계로 나뉘어지는데, 첫 단계는 신유박해 초기부터 지도층 신자들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그 결과 1801년 2월 26일에는 첫 순교자가 서소문 밖에서 탄생하였다.
한국 교회의 반석인 이승훈(베드로)과 명도회의 초대 회장인 정약종(아우구스티노) 등 6명이 순교한 것이다. 그로부터 석 달 뒤에는 여회장 강완숙(골롬바) 등 남녀 신자 9명이 순교하였고, 10월과 11월에는 황사영(알렉산델)의 '백서' 사건과 관련하여 황사영, 현계흠, 황심(토마스) 등 5명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서소문 밖의 작은 개천가에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진 뒤에야 박해는 막을 내렸다. 두 번째 단계는 기해박해 때로, 1839년 4월 12일에 성 남명혁(다미아노) 등 5명과 오랫동안 옥에 갇혀 있던 성 김아기(아가다) 등 4명이 이곳에서 참수형을 받았다.
이어 6월 이후에도 계속 순교자가 탄생하였으며, 8월 15일에는 성 정하상(바오로)과 유진길(아우구스티노)이 다시 이곳에서 참수되었다. 이때 조선 교회의 지도자요 밀사 역할을 하던 정하상은 미리 체포될 것을 예상하고 "상제상서"(上帝相書)를 작성하여 품안에 지니고 있었는데, 이를 조정 관리들이 발견해 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천주교가 진교(眞敎)'라는 호교론이 알려지게 되었으나, 박해로 눈이 먼 그들은 이를 묵살해 버리고 말았다.
기해박해 때의 처형은 11월 24일에 성 정정혜(바르바라) 등 7명이 순교의 화관을 받은 뒤에야 끝나게 되었다. 세 번째의 병인박해 때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사람은 남종삼 성인 등 3명으로 나타난다. 전국적으로 가해진 대박해 임에도 이곳에서 순교한 신자가 적은 이유는,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신자들을 체포하거나 투옥하고 처형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기록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이름 모를 은화(隱花, 숨은 꽃)들이 서소문 밖의 형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순교의 영광을 바쳤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이들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다. 다만 그들 모두 양같이 순하게 칼을 받았고 신음도 원망도 없이 오직 천주를 행한 한마음이 얼마나 컸던가 하는 것만 미루어 헤아릴 뿐이다. 지금은 서소문 시민 공원으로 단장돼 있는 이 순교의 현장에는 103위 성인의 탄생을 본 1984년, 한국 천주교 현양 위원회에서 세운 순교자 현양탑이 하늘로 치솟아 건립돼 있다.
▲순교자 현양탑
▲순교자 현양탑
▲순교자 현양탑
▲순교자 현양탑
▲순교자 현양탑
▲순교자 현양탑
▲순교자 현양탑
▲순교자 상
▲순교자 상
▲복된 순교자의 삶
▲복된 순교자의 삶
▲순교성인 44위 순교자 명단
▲순교성인 44위 순교자 명단
▲순교성인 44위 순교자 명단
▲순교자 54위 명단
▲순교자 54위 명단
▲순교자 54위 명단
▲순교자 현양탑 뒷면
▲순교자 현양탑 뒷면
▲순교자 현양탑 뒷면
▲순교자 현양탑 뒷면
▲순교자 현양탑 뒷면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
▲약현성당 100주년 기념 순교자기념관
▲약현성당 100주년 기념 순교자기념관
▲기념관 성당 내부
▲기념관 성당 내부
▲기념관 성당 내부
▲기념관 성당 내부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 성당의 감실과 16위 성인 유해함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 성당의 감실과 16위 성인 유해함
◆16위 성인 명단
사도 성 바오로
사도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성 바르나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
성 모방 베드로 신부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
성 남종삼 요한
성녀 허계임 막달레나
성녀 빅토리아
성 율리아노
성 심플리치시오 주교
성 블라시오 주교
성 요한 데 리베라 대주교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주교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녀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 성당의 감실과 16위 성인 유해함
▲제대왼쪽 순교자 44인 성인
▲제대 오른쪽 순교자 명단, 순교하신 54위 치명 순교자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 내부
▲십자가의 길
▲서소문 순교자 전시관
2008년 7월 설계에 들어가에 들어가 1년 2개월여 만에 완공된 전시관은 562m², 2개 층(상·하층) 규모로 전시관과 미디어 룸, 강당, 수장고, 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다.
본당 피정의 집을 리모델링한 전시관은 기존 서소문순교자기념관 1층에 있던 전시실에 비해 2008년 7월 설계두 배 이상 큰 규모. 전체적인 설계와 유물·사료 배치 등을 짜임새 있게 해 관람객들의 편의를 도왔고 유품과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소방시설을 갖췄다.
연구공간을 겸한 수장고를 둔 것도 특징이다. 서소문순교자기념관 관장 윤종국 신부는 "유물관이나 역사관을 준비하는 오랜 역사를 가진 본당들이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고자 설계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전시관은 '박해시대와 서소문순교성지', '중림동본당 역사' 등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박해시대와 신앙의 자유 시대가 단절된 역사가 아니라 수많은 순교자들을 낳은 박해로 인해 신앙 자유가 찾아온 것임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서소문순교성지 소개로 시작하는 전시관은 신유·기해·병인박해 당시 서소문에서 순교한 순교자 소개와 가계도, 순교일, 성인 초상화, 탁희성 화백의 순교성화 등이 전시돼 있다.
고(故) 한희동 신부가 기증한 '을축년 첨례표'(1865년 1월부터 1866년 3월까지 주요 축일과 기념일이 표시된 목판 인쇄본)와 160여 년 전 병인박해 당시 것으로 추정되는 '십자가 성화 액자'(최승룡 신부 기증)는 전시관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이다. 박해시기 전시물을 거쳐 '피어라 순교자들의 꽃들아' 라는 제목으로 이어지는 전시관은 중림동본당의 지난 118년 역사를 소개한다.
20년 단위 본당 연표와 더불어 당시 자료사진과 사료, 옛 성모소 제대와 제의, 제병 굽는 틀, 제병 재단기 등이 전시돼 있다. 1998년 발생한 화재 당시 사진과 화마에 손상된 성모상, 제대, 종탑 부속품도 볼 수 있다. 또 중림동본당 출신으로 1923년 사제품을 받은 뒤 만주 지역에서 사목하다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복역한 후 선종한 고 김선영 신부의 생애를 소개한 전시물도 있다.
전시관 중앙통로에는 본당 역대 주임신부 소개와 화보, 서소문순교자기념관 성당에 안치돼 있는 한국 순교성인 6명 등 13명 성인 유해에 대한 설명도 있다. 전시관은 앞으로 서소문순교성지에서 순교한 44위 성인과 한국교회가 시복을 청원한 25명의 하느님의 종 등 성지와 관계된 순교자들의 순교일에 맞춰 전시관 중앙공간을 이용한 순회·기획전도 가질 예정이다.
본당에서 소장하고 있는 교리서와 주보 등 각종 사료들을 모아 근?현대 본당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도 준비할 계획이다. 윤종국 신부는 "5억 원이 훨씬 넘는 공사비를 지원해 준 본당 주임 정훈 신부와 공사기간 중 불편을 감수해 주신 본당 신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서소문순교성지 순교자현양탑, 성인유해를 모신 서소문순교자기념관 성당,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중림동성당 등과 함께 이번에 문을 여는 전시관이 신자들이 언제든 찾아와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느끼고 신앙생활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순례명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순교자 전시관 입구
▲전시관 배치도
▲순교자 전시관 내부
▲순교자 전시관 내부
▲순교자 전시관 내부
▲순교자 전시관 내부
▲순교자 전시관 내부
▲순교자 전시관 내부
▲전시물, 순교자 가계도
▲신유박해 전모
▲신유박해 순교자
▲전시관 내부
▲전시관 내부
▲기해박해(己亥迫害) 전모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자
▲프랑스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순교 주교,신부
(성 앙베르 주교;범 라우렌시오, 모방 신부; 나 베드로, 샤스탕 신부; 정 야고보)
▲프랑스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순교 주교,신부
▲프랑스 파리외방선교회 소속 순교 주교,신부
▲병인박해(丙寅迫害) 전모
▲병인박해(丙寅迫害) 순교자
▲사제 영입을 위해 헌신한 성인들 (성 정하상 바오로,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유대철 베드로 부자,조신철 가롤로)
▲성 남종삼 요한
▲성 전장문 요한
▲성 최형 베드로
▲성녀 정경협 아가다 , 박희순 루치아, 김유리대 율리에타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 , 유소사 체칠리아 , 정 정하상 바오로
▲성녀 김효임 골롬바, 김효주 아녜스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베드로 초상 (1801년 신유박해때 이곳에서 순교)
▲1900년대에 성당 전경
종각의 첨탑이 건축되지 않은 최초의 성당 모습과 성당 주변의 논과 밭, 그리고 성당으로 올라가는 오솔길등 100년전 성당의 주변 모습( 첨탑은 1905년에 건축)
▲전시관 내부
▲전시관 내부
▲전시관 내부
▲전시관 내부
▲전시관 내부
▲전시관 내부
▲성모소제대 , 옛 성당 좌편 회당에 있던 제대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벽제대 이다
▲성모소제대 , 옛 성당 좌편 회당에 있던 제대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벽제대 이다
▲황사영 백서, 백서는 62x38cm 크기로 총 122행 13,311자에 달한다. ( 명주천에 적음) 원본은 현재 교황청 민속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을축년 첨례표( 1865년)
첨례는 축일의 옛말이다. 첨례표는 교회 전례력에 따른 주요축일을 월 일 별로 기록한 한장짜리 표를 말한다. 이 첨례표는 1865년 을축년에 제작된 것으로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첨례표다.
▲전시관에 전시된 교회 관련 고문헌들
▲전시관 내부 , 고문 기구들
▲중림동 성당 본당으로 올라가는 십자가의 길
▲중림동 성당 본당으로 올라가는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14처(The Via Dolorosa)
제1지점 :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가 재판을 받은 곳.
제2지점 :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제3지점 :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제4지점 : 예수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
제5지점 : 시몬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제6지점 :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7지점 : 예수가 두번째로 쓰러진 곳.
제8지점 : 예수가 여인들을 위로한 곳.
제9지점 : 예수가 세번째로 쓰러진 곳.
제10지점 : 예수가 옷 벗김을 당한 곳
제11지점 :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
제12지점 :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한 곳.
제13지점 : 예수의 시신을 놓았던 곳.
제14지점 : 예수가 묻힌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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