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 희망편지

지금 여기 나에게

문성식 2021. 7. 29. 18:58


      지금 여기 나에게 우리는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나 자연 생태계를 보면 사는 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나 풀 한 포기나 토끼 한 마리나 나서 살다가 죽는 건 다 같습니다. 다만 사람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내 생존이 먼저이고 의미는 나중인데, 스스로 만들어낸 의미에 사로잡혀서 의미의 노예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이런 이념들이 우리를 옥죄고 괴롭힙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게 더 좋을까요? ‘현재 이 시점, 이곳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여기’가 아니라‘저기'를 이야기합니다. 오늘 하루도 잘 못 살면서, 죽어서 어디 가는지를 물어봐요. 또 우리는 늘 옛날이야기를 합니다. 어릴 때 이러저러해 힘들었다고 하는 것은 다 지나가버린 일입니다. 과거도 아니고 이래도 아니고 ‘지금 여기 나에게 깨어있기’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늙어서 젊게 사는 법 나이가 들면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처럼 여겨지는데 찾아보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젊은 사람들이 된장을 담그면 맛이 없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 하면 맛이 납니다. 그렇지만 나이 들면 힘에 부치니까 젊은 사람들이 힘쓰는 일을 하고 노인들은 조언을 해주면 일이 굉장히 효율적이게 됩니다. 시골에 가면 노인들이 장정처럼 일을 합니다. 젊을 때는 도시에서 직장 다니는 게 좋아 보이지만 늙어보면 농사꾼은 70살이 돼도 은퇴가 없어요. 힘닿는 데까지 일해서 80이 돼도 자식들에게 뭐든 보내주지 자식에게 얻어먹고 살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몸을 움직이고 자신의 쓰임을 다해야 생기가 있습니다. 별 할 일 없이 육체적으로 편하다고 반드시 좋은 게 아니에요. 뭘 해도 하는 것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좋습니다. 아내를 감동시키는 행동 가피를 바라려면 기도를 간절하게 해야 합니다. 간절하게 한다는 말은 하늘이 감동할 만큼 간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먹을 거 다 먹고, 입을 거 다 입고, 잘 거 다 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기도하면 하늘은 고사하고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감동을 안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험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늘이 감동할 만한지 안 한지는 옆에 있는 사람이 감동하는지 안 하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남편이 감동하든지 남편이 하는 행동을 보고 아내가 감동하든지 부모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자식이 감동하든지 옆에 있는 사람이 감동해야 합니다. 감동하면 인간성이 바뀌어 버립니다. 이해하는 것은 의식의 세계가 움직이는 것이지만 감동하는 것은 무의식의 세계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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