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기독교기본교리 제 5장 기독론론(그리스도.2)

문성식 2021. 3. 3. 22:58

 

 

 

      기독교기본교리 제 5장 기독론론(그리스도.2) 

 

 그리스도의 이름들

그리스도의 호칭과 이름들에 대한 주제를 다루자면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성자의 지위를 나타내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인자"는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을 대표하시는 참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오늘날의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성경 전체를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 호칭, 예표 등을 성구별로 공부하는 것은 참 가치 있습니다. 지면 사정상 우리 주님의 이름 중 가장 뛰어나고 또 가장 흔히 쓰이는 것 세 가지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그분은 주님이라고 불립니다.

이 이름은 그리스도께서 만유의 주이신 구약성경의 여호와(흠정역에서는 "주"로 표기함)이심을 입증합니다. 이 이름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권세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은 이 이름을 입버릇처럼 함부로 사용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주재권에 순복할 뜻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요13:13, 눅6:46).

두 번째로 그분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주(또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또는 "구원의 주" 라는 뜻을 가진 이 이름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서 가지셨던 이름이며 그분이 구원자이심을 강조해줍니다. 알려진 통념과는 정 반대로, 이 이름은 그리스도 당시에 유대 남자들에게 흔히 지어주는 이름이었습니다(헬라어인 "예수"는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 이 이름은 복음서에는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서신서에서는 "주"나 "그리스도"와 같은 호칭 없이 단독으로는 자주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 이들은 "주 예수님" 이나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그분을 높여드리는 호칭도 없이 그저 예수라는 이름만을 너무도 자주 씁니다. 찬송가에서도 "예수"라는 이름만 허전하게 씌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사도 바울이 그 서신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그분의 이름과 호칭을 다 갖추어 불리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세 번째로 그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이름은 단순히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호칭인 "메시야"에 해당하는 신약의 헬라어일 따름이며 그 뜻은 "기름부음 받은 자"(행4:26과 시2:1,2 비교)입니다. 이 이름은 주님이 다윗의 혈통이실 뿐 아니라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가지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을 쓰는 많은 사람들은 그저 이 이름이 무슨 "성(姓)"인 줄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함으로써 실상은 나사렛 예수께서 참 메시야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대신 "그리스도 예수"라는 이름을 쓸 때는 그분의 인성보다 그분의 직분을 더 강조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생애

여기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한 생애의 중요한 부분만 가장 짧게 쓸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복음서조차도 나사렛 예수의 전 생애에 대한 일대기라기보다는 그분의 행적과 말씀의 일부만 정선해 기록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분의 탄생과 소년기를 먼저 이야기해야 될 것입니다(마1:18-25, 눅2:1-10, 41-52). 하나님께서 동정녀 탄생이라는 기적을 통해 사람이 되신다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답고 합당한 일입니까! 처녀의 태 속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예수님께서 잉태되셨고 완전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물론 모든 인간이 물려받은 원죄가 조금도 없는 분으로 말입니다. 예수님은 땅 위에서 약 삼십 삼 년을 사셨습니다. 아기 적부터 삼십 세쯤 되실 때까지는 주 예수님께서 부모에게 순종하신 아들이었고 또 자기 천부에 대한 것에 관심을 가지셨던 완전한 소년이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 단 한번 언급되었을 뿐입니다(눅2:41-52). 복음서의 기록 대부분은 삼 년 남짓 되는 그분의 공생애에 대한 것이며 특별히 십자가에 달리신 주간(흔히들 "고난주간"이라 부름)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한 주간에 대한 기록은 복음서 전체에서 같은 기간의 기록으로서는 단연코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 받았습니다.

주님은 침례를 받으셨습니다(마3:13-17, 막1:9-11, 눅3:21,22).

메시야로서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이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선지자들(왕상19:16), 제사장들(출28:41) 그리고 왕들(삼하2:4)은 모두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각자의 특별한 사역을 위해 구별되었습니다.


삼십 세쯤 되어서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사촌인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요한은 누구에게든 침례를 주기 전 그 사람더러 회개하라고 항상 힘주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실 죄가 전혀 없으셨지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당시 경건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모두 침례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도 이 사람들과 같은 사람으로 여겨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마3:15). 아무도 예수님이 자기 죄를 자백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즉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예수님을 일컬었습니다. 더욱이 성령님은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셨습니다(요3:34). 구약에서 기름을 붓는 것은 신약에서의 성령님을 상징하는 그림입니다. 침례 받으시던 날 성령님께서 이와 같이 특별한 방법으로 예수님께 임했을 때,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기름부음 받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마4:1-11, 눅4:1-13).

하나님은 예수님을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심으로써 사람이 되신 주님을 친히 인정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사단은 즉각 여기에 도전했습니다. 사단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상태로 계시려면 다른 사람들처럼 반드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썼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결코 하나님을 거스려 죄를 범치 아니하시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사단은 온갖 악한 술책을 써서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키려 애썼습니다. 사단은 실패했고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죄를 짓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렇듯 주님이 시험을 받으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 고소하는 자가 기회를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욥의 경우에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욥1:9-11). 아마 사단은 "모든 사람은 죄를 짓습니다. 예수도 죄를 지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② 예수님은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아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유혹을 받으셨습니다(마4:1). 하나님께서 아드님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을 온 우주에 드러내시는 데에 친히 동의하셨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는 죄를 지으실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유혹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는 사단의 유혹에 응할 만한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흠 없으심을 부인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또 "주님은 죄를 지으실 수도 있었지만 짓지 않으셨다"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분은 엄청난 압박을 받으시는 가운데 자기가 죄 없으심을 증명하셨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죄를 지으실 수 없었지만 사람으로서는 죄를 지으실 수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말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 두 가지를 가지셨는데, 이 두 의지는 피차간에 반대로 작용했을 수도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말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이중 인격을 가지셨다, 즉 하나님의 아들은 단지 한 인간에게 "임하셨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이단적 교리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땅에 계실 때 죄를 지으실 수 있었다면, 그분이 현재나 장래에 타락하실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죄를 지으실 가능성을 언제쯤 잃게 되셨다는 것입니까? 유혹을 이기긴 하지만 언제든 넘어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보다는, 언제나 변함없이 완전하신 구주가 계심(히13:8)을 아는 것이 더 없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처럼 불완전한 인간의 예는 성경에 많습니다. 성경은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을 가르치고 있으므로, 인간적인 추리는 다만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결론에 이를 뿐입니다.

주님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많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이적들 가운데는 생명체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 행하신 것이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광풍을 잠잠케 하신 일이 있겠습니다. 또 생명체에 대한 이적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물고기를 기적적으로 잡으신 일 같은 것입니다. 특별히 인간에 대한 이적으로는 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 등이 있습니다. 영적인 이적으로는 귀신을 쫓아내신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더 듣기 좋게 만들 목적으로 예수님은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인품을 지니셨다든지, 그분이 함께 계시기만 해도 사람들의 몸이 한결 나아지곤 했다는 등의 말을 하곤 했습니다!

 

이 말이 주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광풍을 잠잠케 하신 일에도 적용되는 것인지 이러한 추론을 어떻게 보아야할지 어렵습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만, 이른바 "비신화화(非神話化)"라고 하는 즉, "성경의 기적적인 요소를 제거하려고 애쓰는 이론대로 성경을 설명하는 것"은, 성경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보다 더 믿기 힘든 법입니다. 그리스도는 이적을 행하셨으며 이는 그가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또 돕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또 이적을 행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심을 증거 하셨습니다(행10:38). 그분이 행하신 이적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 마음이 끌렸으며, 이 사람들이 자기 앞에 나왔을 때 주님은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적은 또한 믿지 않는 자들로 변명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요15:24).


마지막으로 주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어떤 책도 쓰시지 않으셨습니다만 그분의 가르침은 우리를 위해 사복음서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많은 부분과 또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의 많은 부분에 우리 주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에 대해 가르치셨을까요?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또 하늘나라에 대해, 그리고 당신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 재림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단순하게 복음을 전하셨지만, 종종 더 깊은 진리들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미래에 관한 것과 그분의 추종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특별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와 거기에 담긴 더 깊은 의미들은 바울의 서신에서 발견하게 되며 또한 구원론 편에서 상고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과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에 대한 역사적 측면만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푸셨는데 왜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은 그분을 배척했을까요?

 

우선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은 영광 중에 오셔서 자기들을 로마의 통치에서 구원해 줄 왕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히 오셔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막10:45). 다시 오실 때, 주님은 영광 중에서 우리들을 다스리게 되십니다만, 먼저 그분이 고난받으시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와 믿지 않음을 꾸짖으셨으며 특별히 종교지도자들의 외식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을 선동하여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하고 그분의 죽음을 요구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일차 "재판"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모인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열렸습니다. 이 기구는 예수께서 자기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그중 어떤 사람들에게도 죽일 권세가 없었기 때문에, 로마사람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로 예수님을 넘겼습니다. 빌라도는 이내 예수님께서 사형 받을 만한 아무 일을 하신 것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만, 백성들을 달래고 자기 관직을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의 바라는 것에 동의하고 예수님을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친구들은 그를 버렸고 유대인들은 그를 비웃었고 군병들은 그분을 괴롭혔습니다. 그분의 깊디 깊은 슬픔은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을 때 극에 달했습니다. 그런 뒤 주님은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하시고,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인간의 죄는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데서 명백히 드러났습니다만, 궁극적으로는 어느 인간도 그분에게서 목숨을 빼앗지는 못했습니다(요10:17-18, 행2:23).

 

그러면 왜 하나님은 주님을 버리셨을까요? 여기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한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고후5:21).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받으셨다는 증거는 친히 주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데서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