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제90위 정복혜 칸디다(5.29) 기본정보
성인명 | 정복혜 칸디다 (鄭福惠 Candi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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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5월 29일 |
성인구분 | 복녀 |
신분 | 양인, 과부, 순교자 |
활동지역 | 한국(Korea) |
활동연도 | ?-1801년 |
같은이름 | 간디다, 깐디다, 정 칸디다, 정칸디다 |
신자들 사이에서는 ‘정 과부’라고 알려진 정복혜(鄭福惠) 칸디다는, 한양 근처의 양인 집안에서 태어나 혼인한 다음에도 한양에서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1790년 무렵 이합규를 만나 교리를 배우면서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으며, 그에게 세례를 받고 입교하였다. 이후 정 칸디다는 열심히 교회 일에 참여하면서, 친정 오빠와 아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또 과부가 된 뒤에는 한신애 아가타, 윤운혜 루치아 등과 함께 신자들 사이의 연락을 도맡았으며, 교우들이 만든 교회 서적을 팔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우들과 함께 모여 교리를 강습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도 노력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정 칸디다는 먼저 성물과 서적을 한 아가타의 집으로 가져다 숨겨 두고, 교우들이 체포되지 않도록 보호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그동안의 활동들 때문에 그녀의 이름이 박해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해 2월에 포졸들이 마침내 그녀를 찾아내 형조로 압송하였다. 이때 형조에서는 일단 정 칸디다를 포도청으로 옮겨 문초를 하도록 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형조로 데려와 문초와 형벌을 가하면서 그동안의 행적을 추궁하고 배교를 강요하였다. 이때 그녀는 잠시 마음이 약해졌으나, 곧 이를 뉘우치고 자신이 한 일을 떳떳하게 고백하였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5월 14일(음력 4월 2일)이었다. 당시 형조에서 정복혜 칸디다에게 내린 사형 선고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너는 남자 신자들과 어울려 부녀자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였으며, 천주교 서적과 성물을 모아 한신애의 집에 숨겨 두고 훗날 천주교를 전파하는 데 사용하려고 하였으니,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 정복혜 칸디다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해 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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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유은희 지음, 이슬은 길이 되어(한국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 이야기 두번째) - ‘빛을 전한 아름다운 여인들 하느님의 종 한신애 아가타, 김연이 율리아나, 정복혜 칸디다’, 서울(도서출판 순교의 맥), 2012년, 187-192쪽.
-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 '정복혜 칸디다', 서울(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년, 78-79쪽.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자료집 제2집 - '윤운혜, 정복혜, 정인혁', 서울, 2006년, 280-291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0권 - '정복혜 鄭福惠',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4년, 75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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