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궁궐,왕릉 이야기

왕릉이야기. 제20대 경종-의릉, 혜릉

문성식 2010. 8. 26. 20:35

 

 

  제20대 경종(景宗)과 계비(繼妃) 선의왕후(宣懿王后) - 의릉(懿陵)

 

 

의릉-경종과 선의왕후릉

소재지 :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 1-5
사 적 : 제 204 호

懿陵의 특징
 景宗{이균; 1688-1724, 재위 4년}과 계비(繼妃) 선의왕후 어씨(宣懿王后魚氏; 1705-1730)의 의릉은 쌍릉(雙陵)의 형식이면서도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의 영향으로 좌우로 나란한 봉분 조성이 아니라 앞뒤로 봉분을 조성했습니다. 여주(驪州)에 있는 효종(孝宗)의
영릉(寧陵)과 유사한 모양이지만, 경종의 의릉은 영릉보다 더 정확하게 앞뒤로 조성되어 정자각(丁字閣)에 보았을 때 앞의 능은 선의왕후릉이고 뒤의 능은 경종의 능입니다. 경종의 능에만 뒤에 곡장(曲墻)이 있어 쌍릉(雙陵)의 형식임을 알 수 있고, 숙종의 명릉(明陵)에 이어 역시 왜소한 석물(石物)들과 사각(四角)의 장명등이 특이합니다.

景宗代의 사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1721

1년

8월, 왕제(王第) 연잉군 세자 책봉

1723

3년

5월, 서양의 수총기(水銃器:소화기) 만듬

12월, 김창집 등 4대신 귀양{신축옥사}

10월, 남구만 <약천집(藥泉集)> 간행

1722

2년

3월,목호룡 상언으로 대옥사{임인옥사}

1724

4년

8월, 왕 승하{1688- } 세자 즉위

뒷 이야기
 장희빈(張禧嬪)의 아들로 유명한 경종은 33세의 나이에 왕위(王位)에 오르지만, 평소 병이 많아 불과 4년 밖에 재위에 있지 못한 비운(非運)의 국왕이었습니다.
 신축옥사(辛丑獄事)과 임인옥사(壬寅獄事)로 노론(老論) 세력이 대거 축출되고 소론(小論) 세력이 집권했던 신임사화(辛壬士禍)가 격렬하게 진행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병약(病弱)한 경종은 즉위 원년에 후사가 없을 것으로 예측되니 이복동생인 숙빈(淑嬪) 최씨(崔氏)의 소생(所生) 연잉군{영조}을 세자(世子)로 책봉해야 한다는 노론의 의견을 따라할 정도였습니다.

宣懿王后 어씨(魚氏) 약사(略史)
 1705년{숙종 31년} 함종(咸從) 어씨 함원부원군(咸原府院君) 어유구(魚有龜)의 딸로 태어난 선의왕후는 1718년에 세자빈(世子嬪)에 책봉되고 1722년{경종 2년}에 왕비에 진봉(進封)됩니다. 영조 즉위 후 대비(大妃)로 지내다가 26세의 나이{영조 6년}로 요절합니다.
 온화한 성품을 지녔다고 전해지는데, 역시 슬하(膝下)에 자식은 없었습니다.
 

 

 

 

 

혜릉-단의왕후릉 [복원된 정자각]

소재지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62 <東九陵 소재>
사 적 : 제 193 호

惠陵의 특징
 경종(景宗) 즉위 후 추존(追尊)된 정비(正妃) 단의왕후 심씨(端懿王后沈氏; 1686-1718)의 혜릉은 소실되어 초석만 남아있던 정자각(丁字閣)과 홍살문(紅--門)을 근래에 다시 고증(考證)을 통해 복원해서 주변의 다른 능들과 보조를 맞추게 되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 작은 석물(石物)들 등이 아담하게 조성되어 있고, 특이하게 능의 방향이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면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봉분은 병풍석(屛風石) 없이 난간석(欄干石)만으로 호위하고 있으며, 난간석에는 12지수(十二支獸)가 새겨져 있습니다.

端懿王后 심씨(沈氏) 약사(略史)
 1686년{숙종 12년} 청송(靑松) 심씨 청은부원군(靑恩府院君) 심호(沈浩)의 딸로 태어난 단의왕후는 11세 때 세자빈(世子嬪)에 책봉되었는데, 왕비에 오르지 못하고 33세의 나이{숙종 44년}로 슬하에 소생없이 생을 마감합니다. 경종 즉위 후 왕후에 추봉(追封)되고 1726년{영조 2년}에 휘호(徽號) 공효정목(恭孝定穆)을 추상(追上)했습니다. 

 

 

출처 :문화 사랑 오솔길 원문보기   글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