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0.jpg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대비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불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多包式) 맞배기와지붕.

 

대비사는 신라 진흥왕 27년(566)에 신승이 세우고 진평왕 22년(600)에 원광국사가 보수했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박곡리 마을에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왔다.

 

이 건물은 17세기 경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공포(拱包)의 세부에 조선시대 초기의 수법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

이중으로 조성된 잡석기단(雜石基壇) 위에 남향하여 있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올리고 기둥머리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돌렸으며, 그 위에 공간포(空間包) 각 2구(具)의 공포를 놓았다.

공포는 내삼출목(內三出目)·외이출목으로 외부는 쇠서〔牛舌〕가 약간 아래로 처지면서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고, 내부도 살미첨차가 촛가지로 장식되지 않고 끝이 비스듬히 절단되어 조선 초기의 수법을 보이고 있다. 가구(架構)는 원형(圓形) 단면의 대들보 위에 종보를 올리고 천장은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대들보와 천장에는 용·연화문·보상화문 등이 새겨진 화려한 단청이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맞배지붕 양측면에는 풍판(風板 :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대는 널조각)을 달았다. 개구부는 전면과 양측면에 나 있는데 전면은 빗살의 분합문이다.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초기에서 중기에 걸친 양식적 특징을 잘 갖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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