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0.jpg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줄여서 ‘대불정수능엄경’또는 ‘능엄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부처님의 말씀을 머리속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여 얻을 것을 주요사상으로 하고 있다. 능엄경은 전체 10권으로 되어 있으며 스님들이 수련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경전이다.

이 책은 당(唐)의 반자밀제(般刺密帝)가 번역하고 송(宋)의 계환(戒環)이 해(解)한 것을 국역(國譯)하여 을해자(乙亥字)로 간행(刊行)한 것이다. 볏짚과 닥나무를 섞어 만든 누런 종이에 찍어낸 활자본으로 크기는 세로 37.5㎝, 가로 23.8㎝이며 전 10권 중 권 제1이 전한다. 활자본은 글자를 하나하나 파서 고정된 틀에 끼우고 찍어내는 것을 말하며, 을해년에 만들었다고 하여 을해자본(乙亥字本)이라고 한다.

을해자본은 원래 세종 31년(1449)에 수양대군(세조)이 왕명으로 번역에 착수한 것인데, 마무리를 못하고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에 유명한 승려와 유학자들을 총동원하여 완성하였다.

을해자본은 간경도감<刊經都監:세조 7년(1461)에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여 간행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서 불경을 간행하는데 기준이 되었으며, 남아있는 활자본이 적어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권수(卷首)에 1.8 ×1.15㎝의 교정인(校正印)이 영인(鈴印)되어 있다. 저혼고정지(楮混藁精紙)를 사용하고, 상하저지(上下楮紙)를 배접(褙接)한 표지이다.

을해자(乙亥字)로 인출한 국역본(國譯本)은 본래 세종(世宗) 31년(1449)에 세종(世宗)의 명(命)으로 세조(世祖)가 착수했으나, 내용이 통하지 않고 어려워 미루어 오다가 세조 7년(1461) 5월 회암사(檜巖寺) 불사(佛事) 때의 석가여래분신사리(釋迦如來分身舍利) 출현을 계기로 효령대군(孝寧大君)이 다시 청해 세조가 당시의 고승(高僧) 거유(巨儒)를 동원해서 국역하고, 그해 6월부터 몇 달에 걸쳐 찍어낸 것이다. 세조 7년(1461) 9월의 어제발(御製跋)에 의하면, 당시 400부(部)가 인출(印出)되었으나 오늘에 전해지고 있는 것을 겨우 권 1 ·2 ·5 ·6 ·7 ·8 ·9 ·10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을해자본(乙亥字本)은 국역내용이 간경도감본(刊經都監本)과 다를 뿐 아니라 역주(譯註)의 체재와 대중소자체(大中小字體)가 간경도감본(刊經都監本)의 규범(規範)이 되었고, 또한 인출시기(印出時期)가 확실치 않은 다른 많은 대중소자체(大中小字體) 을해자(乙亥字) 불서(佛書)의 연대를 추정하는 데에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