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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승려 현각이 지은 선종(禪宗)의 지침서로 각 구절에 송나라 남명선사 법천이 그 뜻을 구체적으로 밝힌 책이다.

이 책은 고려 고종 26년(1239)에 최이(崔怡)가 이미 간행한 금속활자본을 견본으로 삼아 다시 새긴 것 중 하나가 전해진 것이다. 닥종이에 찍은 목판본으로 크기는 세로 27.5㎝, 가로 16.6㎝이다.

책 머리부분에는 1077년에 오용천용(吳庸天用)이 지은 글이, 끝부분에는 1076년에 축황(祝況)이 판을 새길 때 지은 글이 실려 있다. 그 뒤에 최이가 선종에 있어 ‘증도가’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전해지지 않자 금속활자본을 거듭 새겨냄으로써 후대에 오래 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글자에 닳은 곳이 있는 점으로 보아 판을 만들고 훨씬 지난 뒤인 고려 후기에 다시 인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글자의 배열이 고르지 않고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어 이미 새겨져 있던 글자를 모아 만든 인쇄판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글자의 크기가 일정치 않으면서도 모양이 바른 점 등을 통해 초기 금속활자본의 면모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적어도 13세기 초에 인쇄한 것으로 생각되며, 고려시대 활자인쇄의 시기와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은 당나라 현각(玄覺)이 지은 선가(禪家)의 지침서로서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책인데 권말(卷末)에는 다음과 같은 사성기(寫成記)가 있어 고려시대 주자인쇄(鑄字印刷)를 규명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부남명증도가자실선문지추요야(夫南明證道歌者實禪門之樞要也) 고후학참선지류막불유사이입승당도오의연즉기가폐색이불전통평어시모공중조주자본이수기전언시기해(故後學參禪之流莫不由斯而入升堂覩奧矣然則其可閉塞而不傳通平於是募工重彫鑄字本以壽其傳焉時己亥)(1239) 구월상순중서영진양공최이(九月上旬中書令晋陽公崔怡)(?∼1249) 근지(謹誌)

1239년에 진양공(晋陽公) 최이(崔怡)가 기간(旣刊)의 주자본(鑄字本)을 중조한 것 중의 하나가 전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각자(刻字)에 닳은 곳이 있는 점으로 보아 고려 말기의 후인(後印)으로 보인다. 이 복각본(覆刻本)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 바탕이 되었던 주자본(鑄字本)이 고려 고종(高宗) 19년(1232) 강화천도(江華遷都) 이전에 이미 인출(印出)되었다는 점이다. 이 중조본(重彫本)을 통해서도 자열(字列)이 비뚤어지고 글자가 비스듬히 쓰러진 것이 나타나 보여, 조판(組版)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또 글자 크기가 일정치 않으면서도 모양이 바르고, 윗글자와 아랫글자의 획이 물리지 않은 점 등에서도 초기 주자본(鑄字本)의 면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이 책은 13세기 초엽의 고려 주자본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에 귀중한 인쇄자료(印刷資料)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