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소리
여름 시계는 느려터진 줄만 알았습니다.
바람 잔잔한 한여름 오후,
나무 가지도 더위에 축 늘어져 옴짝 하지 않고
떠돌던 흰 구름도 모였다 흩어졌다 함을 멈추고 있기에
여름 시계도 늘어져서 가지 아니할 줄 알았습니다.
9월은 멀리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철모르는 코스모스가 한 두 송이 피고 지지마는..
철을 아는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꽃물결의 장관은 아직 연출되지 않기에
9월은 저 멀리서 천천히 올 줄만 알았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가고 또 가봐야
가을을 만나볼 줄 알았습니다.
눈감고 가만히 들어보면 마음으로 들리는 소리가
여름 파도소리인 줄 알았더니
그것이 가을이 오는 소리였나 봅니다.
가을은 미리 가을 색으로 마구 칠해놓고 그 길 따라
천천히 오는 줄만 알았더니 그런 게 아니었나 봅니다.
푸름이 아직 한창인데 알알이 익은 포도송이를 맛
보면서 성큼 가을이 다가옴을 알았습니다.
가을에는 아프다고들 하기에
그게 거짓인 줄 알았습니다.
코끝에 미리 전해지는 가을 내음에 보고 싶음에
가슴이 미리 아프려고 하니 가을이 짙게 물들어 오면
얼마나 아파해야 할지 나는 모릅니다.
ㅡ 좋은 글 중에서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