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가 작품

강국진님 작품 감상

문성식 2015. 8. 31. 23:52

 

 

강국진님 작품 감상

 

 
역사의 빛 - 1986 년작 / 50.2*32.8 / 종이에 아크릴/드로잉

95년 유작전



 
역사의 빛 - 1986 년작 / 65*55(15호) / 종이에 아크릴

95년 유작전.

제4기의 작품은 <역사의 빛>이란 시리즈로 큰 맥을 이루고 있다. <가락>이니 <역사의 빛>이 다같이 고유한 미의식에의 나름의 표상을 기도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의 빛>은 더욱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시기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한 맛을 준다. 대단한 절제가 요청되었던 <가락>연작에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호쾌한 기운이 화면을 누비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붓 자국은 보다 분방하고 색조는 화사한 톤으로 얼룩진다


 
역사의 빛 - 1988 년작 / 46.5*50.5(10호) / 종이에 아크릴

95년 유작전.

그의 작품세계에서 유화작품은 <선조작업>과 <가락> 시리즈. <빛의 흐름> 시리즈. <역사의 빛> 시리즈 등 항상 하나의 주제를 잡고 오랬동안 그것에 매진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현재 국회의사당 중앙홀 벽면에 걸려있는 300호짜리 대작 <역사의 빛>은 80년대 말 그가 몰두했던 연작의 일부로서 그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그림이다. 또한 강국진은 유화와 아크릴 작업외에도 설치와 판화분야에서도 큰 관심을 보여 적지않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특히 판화에 대한 그의 관심은 아주 선구적이었다. 그는 70년대 초반에는 판화교실을 여는 등 판화 보급에 앞장서기도 했으며 3번의 판화 개인전을 통해 한국 현대 판화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 주간경향.손일영 기자


 
역사의 빛 - 1988 년작 / 65*55(15호) / 종이에 아크릴

95년 유작전.

제4기의 작품은 <역사의 빛>이란 시리즈로 큰 맥을 이루고 있다. <가락>이니 <역사의 빛>이 다같이 고유한 미의식에의 나름의 표상을 기도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의 빛>은 더욱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시기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한 맛을 준다. 대단한 절제가 요청되었던 <가락>연작에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호쾌한 기운이 화면을 누비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붓 자국은 보다 분방하고 색조는 화사한 톤으로 얼룩진다


 
역사의 빛 - 1988 년작 / 65*55 / 종이에 아크릴

95년 유작전.

이와 같이 형상들의 이야기구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작품의 구조는 전적으로 종래의 선조에 의한<형식구조>로부터 형상에 의한 <이야기 구조>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구조는 근본적으로 과거VS현재, 밝음VS어둠, 복잡VS단순, 낡은것VS새것 따위와 같은 대립적 상황들의 <통합>을 모색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형상을 빌리지 않고 단순히 색면과 약간의 선조들을 동반한 가장 단순한 색면대조를 보이는가 하면 - 이 경우는 특히 明과 暗의 대조와 통합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 가령, 왼편의 녹색바탕에 불상을 그려 명상하는 자태의 단순성을 나타내고 이와 대조되는 복잡한 상황을 오른편에 배열하는 경우와 같이 단순성과 복잡성의 이야기구조를 극히 종합적으로 얻으려는 경우도 있다. 가능한 한, 종래와 달리 더 많은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구체적인 것, 형상적인 것을 도입하려 했다고 말하는 작가의 진정한 의도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가락>시리즈가 추구했던 것의 반대급부에 이미 도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종래의 평면형식의 구조를 이야기구조로 전환시킴으로써 화면에서 단순히 선조구조의 구조적 매력이나 장점에 매혹되지 않고 화면을 다시 작가의 영감이나 잠재의식과 같은 체험들을 가볍게 그러나 진솔하게 토로하는 언어의 구조로, 요컨대 이야기를 통해서 체험적 현실들을 서술하려는 데 있다. 강국진 화집에서


 
역사의 빛 - 1988 년작 / 65*55(15호) / 종이에 아크릴

95년 유작전.

이와 같이 형상들의 이야기구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작품의 구조는 전적으로 종래의 선조에 의한<형식구조>로부터 형상에 의한 <이야기 구조>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구조는 근본적으로 과거VS현재, 밝음VS어둠, 복잡VS단순, 낡은것VS새것 따위와 같은 대립적 상황들의 <통합>을 모색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형상을 빌리지 않고 단순히 색면과 약간의 선조들을 동반한 가장 단순한 색면대조를 보이는가 하면 - 이 경우는 특히 明과 暗의 대조와 통합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 가령, 왼편의 녹색바탕에 불상을 그려 명상하는 자태의 단순성을 나타내고 이와 대조되는 복잡한 상황을 오른편에 배열하는 경우와 같이 단순성과 복잡성의 이야기구조를 극히 종합적으로 얻으려는 경우도 있다. 가능한 한, 종래와 달리 더 많은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구체적인 것, 형상적인 것을 도입하려 했다고 말하는 작가의 진정한 의도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가락>시리즈가 추구했던 것의 반대급부에 이미 도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종래의 평면형식의 구조를 이야기구조로 전환시킴으로써 화면에서 단순히 선조구조의 구조적 매력이나 장점에 매혹되지 않고 화면을 다시 작가의 영감이나 잠재의식과 같은 체험들을 가볍게 그러나 진솔하게 토로하는 언어의 구조로, 요컨대 이야기를 통해서 체험적 현실들을 서술하려는 데 있다. 강국진 화집에서


 
역사의 빛 - 1988 년작 / 65*55(15호) / 종이에 아크릴

95년 유작전.

제4기의 작품은 <역사의 빛>이란 시리즈로 큰 맥을 이루고 있다. <가락>이니 <역사의 빛>이 다같이 고유한 미의식에의 나름의 표상을 기도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의 빛>은 더욱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시기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한 맛을 준다. 대단한 절제가 요청되었던 <가락>연작에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호쾌한 기운이 화면을 누비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붓 자국은 보다 분방하고 색조는 화사한 톤으로 얼룩진다


 
역사의 빛 - 1988 년작 / 65*55 / 종이에 아크릴

95년 유작전.

이와 같이 형상들의 이야기구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작품의 구조는 전적으로 종래의 선조에 의한<형식구조>로부터 형상에 의한 <이야기 구조>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구조는 근본적으로 과거VS현재, 밝음VS어둠, 복잡VS단순, 낡은것VS새것 따위와 같은 대립적 상황들의 <통합>을 모색함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형상을 빌리지 않고 단순히 색면과 약간의 선조들을 동반한 가장 단순한 색면대조를 보이는가 하면 - 이 경우는 특히 明과 暗의 대조와 통합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 가령, 왼편의 녹색바탕에 불상을 그려 명상하는 자태의 단순성을 나타내고 이와 대조되는 복잡한 상황을 오른편에 배열하는 경우와 같이 단순성과 복잡성의 이야기구조를 극히 종합적으로 얻으려는 경우도 있다. 가능한 한, 종래와 달리 더 많은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구체적인 것, 형상적인 것을 도입하려 했다고 말하는 작가의 진정한 의도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가락>시리즈가 추구했던 것의 반대급부에 이미 도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종래의 평면형식의 구조를 이야기구조로 전환시킴으로써 화면에서 단순히 선조구조의 구조적 매력이나 장점에 매혹되지 않고 화면을 다시 작가의 영감이나 잠재의식과 같은 체험들을 가볍게 그러나 진솔하게 토로하는 언어의 구조로, 요컨대 이야기를 통해서 체험적 현실들을 서술하려는 데 있다. 강국진 화집에서

 
가락 - 1980 년작 / 40*30 / 수채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제목없음 - 1980 년작 / 40*30 / 수채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가락 - 1981 년작 / 66.0*50.5 / 유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가락- 빛의 흐름 - 1981 년작 / 39.2*27.3 / 수채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가락 - 1981 년작 / 40*30 / 수채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작품64-1 - 1964 년작 / 130*162(100호) / 캔버스 오일

1965년 1회논꼴 동인전 출품작
95년 유작전 전시작품
글 : 오광수/미술평론가

강국진의 작가로서의 활동은 65년 논꼴 동인의 결성과 발표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논꼴 동인은 65년 홍대 졸업생들이 중심이 된 단체로 그 구성 요원은 강 국진을 비롯해 정찬승, 김인환, 한영섭, 남영희, 최태신, 양철모 등이었다. 이들 그룹 형성은 같은 교실에서의 의기투합과 그것의 보다 진전된 정신적 공동체로서 집단 제작실을 경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논꼴이란 그룹명은 집단 제작실이 있던 무악재 너머 홍제동 화장터 근처의 옛 지명에서 따온 것이었다. 65년 졸업반이었던 이들이 한 곳에 집단 제작실을 마련하여 생활과 제작을 같이 했다는 것은 단순한 젊은 열기로만 이루어진 것이기보다는 이념의 공동질을 모색했던 치열한 의식에서 가능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도 이 시절 그들의 술자리에 가끔 참여 한 적이 있는데 언제나 그 토의 방식은 뜨거웠고 진지했다. 무엇을 어떻게 결론 내린다기보다 각자 지니고 있는 예술에 대한 뜨거운 욕구들을 무차별하게 쏟아놓는 자리였다. 때로는 조용조용 얘기가 전개되다가도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격론에 휩싸여 감정들을 가누지 못할 때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적어도 논꼴이란 그룹은 이런 내막을 통해 결성된 단체였다. 논꼴 창립전은 65년 2월 신문회관에서 열렸다. 이 때 펴낸 <논꼴 아트>는 일종의 동인지 겸 창립전 카다로그로 대용된 것이었다. 여기에 나와있는 선언문을 보면, 대단히 추상적이기는 하나 현상을 극복하려는 그들 나름의 의욕이 간단없이 표명되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 전문을 옮겨본다.> <<일체의 타협의 형식을 벗어나는 시점에서 우리는 항시 자유로운 조형의 기치를 올린다. 1)새 세대에 참여하는 <자유에의 의식>을 우리의 조형 조건으로 한다. 2)우리는 극단적 시간의 창조적 변화를 조형윤리로 삼는다. 3) 기성의 무분별한 감성에서 벗어나 지성의 발판에서 형성의 모랄을 추구한다.>> 창립전에 출품한 강 국진의 작품은 6점으로 <작품>으로 명제가 통일 되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의 직시된 인간상의 모순, 이것을 강한 선, 가열된 바탕, 부정의 세계를 뚫고 폭발하는 무수한 기호형에서 오는 직열(直列)된 감정, 이것이 나의 캔버스 위에서 표현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표명하고 있단. 다소 생경한 언어의 표명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강국진의 당시 작품에 대한 자기의 변으로서는 상당히 정곡을 찌른 표현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그만큼 화면은 강인한 선조의 폭발하는 구성력에 지탱된 인상을 주었으며 그것이 점차로 기회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작가변에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해 66년에 열린 2회전에서도 그의 작품성향은 창립전 때와 그대로 맥락되면서 보다 단순화된 선조의구성과 부드러운 색조의 토운이 곁들여지고 있다.


 

 
뉴욕 풍경 - 1979 년작 / 28.5*21 / 수채화

뉴욕 에 거주 당시 그린 풍경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가락 - 1979 년작 / 40*30

1979년 뉴욕 개인전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가락 - 1979 년작 / 40*30 / 수채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제목없음 - 1979 년작 / 76*53

파리개인전

제3기의 회화 작품의 선조에 의한 전면화로 특징지어 볼 수 있다. 섬세하게 흐르는 선조들이 빽빽이 화면을 누비는 계열이다. 그는 이 계통의 작품들을 <가락>이란 명제로 시리즈화하고 있다. 가늘게 분할된 선조들이 화면을 덮어가는, 이 전면화 또는 단색화 경향은 당시 한국미술의 일각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모노크롬의 추세와 간접적 연계를 가지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방법의 모색으로 보인다



 

 
가락 - 1980 년작 / 33.3*25.3 / 수채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작품64-3 - 1964 년작 / 25.0*29.0(변형10호) / 종이에 오일

제1회 논꼴 동인전 출품작

신아일보 1966. 5. 11 한국의 멋 찾는 의식 논꼴회 추상화전 홍대 미대 졸업생들로 구성된「논꼴」 의 제2회전이 12일부터 17일까지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추상미술을 추구하는「논꼴」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은 「한국의 멋을 찾겠다 」는 것. 7명의 작품 총20점속에서 담담히 드러나고 있는 것은 한국의 향토와 색동담당으로 고래부터 내려오는 한국의 풍습과 생활상을 밑받침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영섭 작품 80, 81에서 O, X의 부호와 함께 한국의 담의 역사를 침울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은 내용에 충실한 깊이있는 제작태도를 보이고 있어 중후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색채가 너무 짙어 작가의 이미지인 담의 분위기가 저조되고 있다. 정찬승 작 작품 74에서는 한국 고유의 멋을 독특하게 풍겨주고 있는데 이것은 흰색 바탕에 초록과 빨강색이 희끗희끗 지나가게 표현함으로써 차분한 테크닉을 보이고 있다. 무당이 굿하며 돌아가는 듯한 미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남영희작 작품 71에서는 (액션. 페인팅)에서 기원한 듯 너무 시각적인 강렬한 기교에먄 치중, 작가 자신의 이미지가 조금도 제시되고 있지 않다. 그 외의 한국향토에서 「이미지」를 얻고있는 강국진 작 「작품 63」과「작품 64」「작품 65」에서는 굵은 터치로 대담한 표현을 하고 있고 또한 고대벽화에서 다시 「이미지」를 얻어 부드러운 색의 융화를 얻고 있다. 전체적으로 한국의 멋을 찾겠다는 이 작가들의 이미지는 좋으나 이 전시를 통해 이것이 조금도 제시되고 있지않은 점이 아쉽다.


 
작품64-5 - 1964 년작 / 25.0*29.0(변형10호) / 종이에 오일

제2회 논꼴 동인전 출품작
글 : 오광수 : 미술평론가

강국진의 작가로서의 활동은 65년 논꼴 동인의 결성과 발표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논꼴 동인은 65년 홍대 졸업생들이 중심이 된 단체로 그 구성 요원은 강 국진을 비롯해 정찬승, 김인환, 한영섭, 남영희, 최태신, 양철모 등이었다. 이들 그룹 형성은 같은 교실에서의 의기투합과 그것의 보다 진전된 정신적 공동체로서 집단 제작실을 경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논꼴이란 그룹명은 집단 제작실이 있던 무악재 너머 홍제동 화장터 근처의 옛 지명에서 따온 것이었다. 65년 졸업반이었던 이들이 한 곳에 집단 제작실을 마련하여 생활과 제작을 같이 했다는 것은 단순한 젊은 열기로만 이루어진 것이기보다는 이념의 공동질을 모색했던 치열한 의식에서 가능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도 이 시절 그들의 술자리에 가끔 참여 한 적이 있는데 언제나 그 토의 방식은 뜨거웠고 진지했다. 무엇을 어떻게 결론 내린다기보다 각자 지니고 있는 예술에 대한 뜨거운 욕구들을 무차별하게 쏟아놓는 자리였다. 때로는 조용조용 얘기가 전개되다가도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격론에 휩싸여 감정들을 가누지 못할 때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적어도 논꼴이란 그룹은 이런 내막을 통해 결성된 단체였다. 논꼴 창립전은 65년 2월 신문회관에서 열렸다. 이 때 펴낸 <논꼴 아트>는 일종의 동인지 겸 창립전 카다로그로 대용된 것이었다. 여기에 나와있는 선언문을 보면, 대단히 추상적이기는 하나 현상을 극복하려는 그들 나름의 의욕이 간단없이 표명되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 전문을 옮겨본다.> <<일체의 타협의 형식을 벗어나는 시점에서 우리는 항시 자유로운 조형의 기치를 올린다. 1)새 세대에 참여하는 <자유에의 의식>을 우리의 조형 조건으로 한다. 2)우리는 극단적 시간의 창조적 변화를 조형윤리로 삼는다. 3) 기성의 무분별한 감성에서 벗어나 지성의 발판에서 형성의 모랄을 추구한다.>> 창립전에 출품한 강 국진의 작품은 6점으로 <작품>으로 명제가 통일 되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의 직시된 인간상의 모순, 이것을 강한 선, 가열된 바탕, 부정의 세계를 뚫고 폭발하는 무수한 기호형에서 오는 직열(直列)된 감정, 이것이 나의 캔버스 위에서 표현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표명하고 있단. 다소 생경한 언어의 표명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강국진의 당시 작품에 대한 자기의 변으로서는 상당히 정곡을 찌른 표현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그만큼 화면은 강인한 선조의 폭발하는 구성력에 지탱된 인상을 주었으며 그것이 점차로 기회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작가변에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해 66년에 열린 2회전에서도 그의 작품성향은 창립전 때와 그대로 맥락되면서 보다 단순화된 선조의구성과 부드러운 색조의 토운이 곁들여지고 있다.



 
작품64-6 - 1964 년작 / 25.0*29.0(변형10호) / 종이에 오일
소장처 : 개인 소장

제1회 논꼴 동인전 출품작
글 : 오광수 / 미술평론가

강국진의 작가로서의 활동은 65년 논꼴 동인의 결성과 발표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논꼴 동인은 65년 홍대 졸업생들이 중심이 된 단체로 그 구성 요원은 강 국진을 비롯해 정찬승, 김인환, 한영섭, 남영희, 최태신, 양철모 등이었다. 이들 그룹 형성은 같은 교실에서의 의기투합과 그것의 보다 진전된 정신적 공동체로서 집단 제작실을 경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논꼴이란 그룹명은 집단 제작실이 있던 무악재 너머 홍제동 화장터 근처의 옛 지명에서 따온 것이었다. 65년 졸업반이었던 이들이 한 곳에 집단 제작실을 마련하여 생활과 제작을 같이 했다는 것은 단순한 젊은 열기로만 이루어진 것이기보다는 이념의 공동질을 모색했던 치열한 의식에서 가능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도 이 시절 그들의 술자리에 가끔 참여 한 적이 있는데 언제나 그 토의 방식은 뜨거웠고 진지했다. 무엇을 어떻게 결론 내린다기보다 각자 지니고 있는 예술에 대한 뜨거운 욕구들을 무차별하게 쏟아놓는 자리였다. 때로는 조용조용 얘기가 전개되다가도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격론에 휩싸여 감정들을 가누지 못할 때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적어도 논꼴이란 그룹은 이런 내막을 통해 결성된 단체였다. 논꼴 창립전은 65년 2월 신문회관에서 열렸다. 이 때 펴낸 <논꼴 아트>는 일종의 동인지 겸 창립전 카다로그로 대용된 것이었다. 여기에 나와있는 선언문을 보면, 대단히 추상적이기는 하나 현상을 극복하려는 그들 나름의 의욕이 간단없이 표명되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 전문을 옮겨본다.> <<일체의 타협의 형식을 벗어나는 시점에서 우리는 항시 자유로운 조형의 기치를 올린다. 1)새 세대에 참여하는 <자유에의 의식>을 우리의 조형 조건으로 한다. 2)우리는 극단적 시간의 창조적 변화를 조형윤리로 삼는다. 3) 기성의 무분별한 감성에서 벗어나 지성의 발판에서 형성의 모랄을 추구한다.>> 창립전에 출품한 강 국진의 작품은 6점으로 <작품>으로 명제가 통일 되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의 직시된 인간상의 모순, 이것을 강한 선, 가열된 바탕, 부정의 세계를 뚫고 폭발하는 무수한 기호형에서 오는 직열(直列)된 감정, 이것이 나의 캔버스 위에서 표현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표명하고 있단. 다소 생경한 언어의 표명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강국진의 당시 작품에 대한 자기의 변으로서는 상당히 정곡을 찌른 표현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그만큼 화면은 강인한 선조의 폭발하는 구성력에 지탱된 인상을 주었으며 그것이 점차로 기회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작가변에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해 66년에 열린 2회전에서도 그의 작품성향은 창립전 때와 그대로 맥락되면서 보다 단순화된 선조의구성과 부드러운 색조의 토운이 곁들여지고 있다.



 
작품65-4 - 1965 년작 / 25*29 / 종이에 오일

제2회 논꼴 동인전 출품작
글 : 오광수 : 미술평론가

논꼴 창립전은 65년 2월 신문회관에서 열렸다. 이 때 펴낸 <논꼴 아트>는 일종의 동인지 겸 창립전 카다로그로 대용된 것이었다. 여기에 나와있는 선언문을 보면, 대단히 추상적이기는 하나 현상을 극복하려는 그들 나름의 의욕이 간단없이 표명되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 전문을 옮겨본다.> <<일체의 타협의 형식을 벗어나는 시점에서 우리는 항시 자유로운 조형의 기치를 올린다. 1)새 세대에 참여하는 <자유에의 의식>을 우리의 조형 조건으로 한다. 2)우리는 극단적 시간의 창조적 변화를 조형윤리로 삼는다. 3) 기성의 무분별한 감성에서 벗어나 지성의 발판에서 형성의 모랄을 추구한다.>> 창립전에 출품한 강 국진의 작품은 6점으로 <작품>으로 명제가 통일 되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의 직시된 인간상의 모순, 이것을 강한 선, 가열된 바탕, 부정의 세계를 뚫고 폭발하는 무수한 기호형에서 오는 직열(直列)된 감정, 이것이 나의 캔버스 위에서 표현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표명하고 있단. 다소 생경한 언어의 표명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강국진의 당시 작품에 대한 자기의 변으로서는 상당히 정곡을 찌른 표현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그만큼 화면은 강인한 선조의 폭발하는 구성력에 지탱된 인상을 주었으며 그것이 점차로 기회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작가변에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해 66년에 열린 2회전에서도 그의 작품성향은 창립전 때와 그대로 맥락되면서 보다 단순화된 선조의구성과 부드러운 색조의 토운이 곁들여지고 있다. .





 
작품65-5 - 1965 년작 / 25*29 / 종이에 오일

제2회 논꼴 동인전 출품작
글 : 오광수 : 미술평론가

논꼴 창립전은 65년 2월 신문회관에서 열렸다. 이 때 펴낸 <논꼴 아트>는 일종의 동인지 겸 창립전 카다로그로 대용된 것이었다. 여기에 나와있는 선언문을 보면, 대단히 추상적이기는 하나 현상을 극복하려는 그들 나름의 의욕이 간단없이 표명되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 전문을 옮겨본다.> <<일체의 타협의 형식을 벗어나는 시점에서 우리는 항시 자유로운 조형의 기치를 올린다. 1)새 세대에 참여하는 <자유에의 의식>을 우리의 조형 조건으로 한다. 2)우리는 극단적 시간의 창조적 변화를 조형윤리로 삼는다. 3) 기성의 무분별한 감성에서 벗어나 지성의 발판에서 형성의 모랄을 추구한다.>> 창립전에 출품한 강 국진의 작품은 6점으로 <작품>으로 명제가 통일 되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의 직시된 인간상의 모순, 이것을 강한 선, 가열된 바탕, 부정의 세계를 뚫고 폭발하는 무수한 기호형에서 오는 직열(直列)된 감정, 이것이 나의 캔버스 위에서 표현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표명하고 있단. 다소 생경한 언어의 표명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강국진의 당시 작품에 대한 자기의 변으로서는 상당히 정곡을 찌른 표현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그만큼 화면은 강인한 선조의 폭발하는 구성력에 지탱된 인상을 주었으며 그것이 점차로 기회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작가변에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해 66년에 열린 2회전에서도 그의 작품성향은 창립전 때와 그대로 맥락되면서 보다 단순화된 선조의구성과 부드러운 색조의 토운이 곁들여지고 있다. .



 
작품66-1 - 1966 년작 / 25.0*29.0(변형10호) / 종이에 오일

제2회 논꼴 동인전 출품작

논꼴 창립전은 65년 2월 신문회관에서 열렸다. 이 때 펴낸 <논꼴 아트>는 일종의 동인지 겸 창립전 카다로그로 대용된 것이었다. 여기에 나와있는 선언문을 보면, 대단히 추상적이기는 하나 현상을 극복하려는 그들 나름의 의욕이 간단없이 표명되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 전문을 옮겨본다.> <<일체의 타협의 형식을 벗어나는 시점에서 우리는 항시 자유로운 조형의 기치를 올린다. 1)새 세대에 참여하는 <자유에의 의식>을 우리의 조형 조건으로 한다. 2)우리는 극단적 시간의 창조적 변화를 조형윤리로 삼는다. 3) 기성의 무분별한 감성에서 벗어나 지성의 발판에서 형성의 모랄을 추구한다.>> 창립전에 출품한 강 국진의 작품은 6점으로 <작품>으로 명제가 통일 되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의 직시된 인간상의 모순, 이것을 강한 선, 가열된 바탕, 부정의 세계를 뚫고 폭발하는 무수한 기호형에서 오는 직열(直列)된 감정, 이것이 나의 캔버스 위에서 표현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표명하고 있단. 다소 생경한 언어의 표명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강국진의 당시 작품에 대한 자기의 변으로서는 상당히 정곡을 찌른 표현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그만큼 화면은 강인한 선조의 폭발하는 구성력에 지탱된 인상을 주었으며 그것이 점차로 기회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작가변에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해 66년에 열린 2회전에서도 그의 작품성향은 창립전 때와 그대로 맥락되면서 보다 단순화된 선조의구성과 부드러운 색조의 토운이 곁들여지고 있다.





 
작품66-2 - 1966 년작 / 25.0*29.0(변형10호) / 종이에 오일

제2회 논꼴 동인전 출품작
글 : 유준상 / 미술평론가

강국진을 처음 알게 된 건 30년전 논꼴이었다. 논꼴은 서대문 밖 무학재 너머의 홍제동에 있었던 마을 이름이며, 그 일대가 논이었기에 그렇게 불리었다. 당시 이곳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으며 드문드문 초가집과 스라브 지붕이 보이는 매우 한적한 마을이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이웃에 화장터가 있었으며, 저 멀리 누렁 길로 구슬픈 가락과 만장이 나부끼는 상여 행렬이 지나가던 곳이었다. 이러한 마을에 이층으로 지은 간소한 집한채가 외따로 있었는데, 강국진 등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배운 동기들이 이 집을 빌려 공동의 아뜨리에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을<논꼴>이라고 불렀다. 참고로 당시의 동기들을 기억나는 대로 말하면 한영섭, 최태신, 김인환, 이묘춘 등과 얼마전에 타계한 정찬승이었다. 한편 여기서 제작한 작품을 가지고 65년<논꼴>창립전을 열게되고 한국미술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미시사회로 <논꼴>은 부상하게 된다.




 
파리 샤크레 - 1978 년작 / 32*24 / 수채와 콘테

파리 체류 당시 그린 샤크레 풍경


 
뉴욕 풍경 - 1979 년작 / 38.5*28.5 / 수채화




 
뉴욕 풍경 - 1979 년작 / 25*20.7 / 수채화



 
가락 - 1979 년작 / 20.5*20.4 / 수채화

선조의 가락에 뉴욕의 풍겨을 표현함.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파리 샤크레 - 1979 년작 / 20.7*26.3 / 수채화






 
가락 - 1984 년작 / 76*53 / 수채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가락-빛의 흐름 - 1985 년작 / 76*53 / 수채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가락 - 1985 년작 / 40*30 / 수채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역사의 빛 - 1985 년작 / 76*53 / 수채화

제4기의 작품은 <역사의 빛>이란 시리즈로 큰 맥을 이루고 있다. <가락>이니 <역사의 빛>이 다같이 고유한 미의식에의 나름의 표상을 기도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의 빛>은 더욱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시기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한 맛을 준다. 대단한 절제가 요청되었던 <가락>연작에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호쾌한 기운이 화면을 누비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붓 자국은 보다 분방하고 색조는 화사한 톤으로 얼룩진다.


 
역사의 빛 - 1986 년작 / 66*50 / 파스텔
소장처 : 개인소장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한국현대 파스텔전. 인터아트주관




 
가락 - 1982 년작 / 40*30 / 수채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가락- 빛의 흐름 - 1982 년작 / 76*53 / 수채화

제3기의 회화 작품의 선조에 의한 전면화로 특징지어 볼 수 있다. 섬세하게 흐르는 선조들이 빽빽이 화면을 누비는 계열이다. 그는 이 계통의 작품들을 <가락>이란 명제로 시리즈화하고 있다. 가늘게 분할된 선조들이 화면을 덮어가는, 이 전면화 또는 단색화 경향은 당시 한국미술의 일각에서 전개되고 있었던 모노크롬의 추세와 간접적 연계를 가지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방법의 모색으로 보인다


 
무제 - 1982 년작 / 22.5 * 30(변형4호) / 수채화

파리 체류 당시 그린 수채화


 
한탄강 - 1983 년작 / 27.5*19.8 / 수채화


 
가락-빛의 흐름 - 1984 년작 / 76*53 / 수채화

선조적 특성에 의한 화면의 <평면적> 해결은 작품으로 하여금 선숙에 의한 평면의 고유한 <기질적 발현>을 성공적으로 가져오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 발현은 물론 집합적인 것과 작가 개인적인 것의 융합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자기표현의 방법이라 생각되었으며 이러한 자기표현의 방법을 특히 선조구조와 이 선조구조를 지지해 주는 캔버스와 색료, 그리고 무엇보다 평면이라는 조건 등 일체의 지지체의 구조적 통일에 의해서 해결하려 하였던 점에 특징이 있었다.



 

 
가락 - 1981 년작 / 40*30 / 수채화

'형태'는 영어의 '포름'을 뜻할 수도 있겠지만, 본래의 뜻은 어떤 모양이나 형식을 가리킨다기 보다, 인간이 의식하는 "개념"이라든가 "관념"인 인식의 유발원(誘發原)을 가리킨다. 가령 과학자가 인식하는 "포름"은 분자나 원자의 세계이며 우리는 그 "포름"을 "기호"로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기호는 사물(事物) 그 자체는 아니다. 이러한 인식의 레벨은, 과학자의 "기호"가 설명의 도구라면 예술가의 "기호"는 표현의 도구라고 하겠으며, 모든 기정 사실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 다다이즘의 후예인 현대 작가들이 표현의 도구는 어차피 그의 "포름"인 신체일 수 밖에 없다. 또는 그 신체가 취하는 행위 곧 "퍼포먼스"의 역사적 당위인 것이었다. 생전의 그가 "무상행위의 반복"으로 수 없이 그어 내린 수직의 가락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고 하겠다.



 

 
제목없음 - 1981 년작 / 45*30 / 수채화

대단한 절제가 요청되었던 <가락>연작에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호쾌한 기운이 화면을 누비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붓 자국은 보다 분방하고 색조는 화사한 톤으로 얼룩진다.




 

 
제목없음 - 1981 년작 / 45*30 / 수채화

대단한 절제가 요청되었던 <가락>연작에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호쾌한 기운이 화면을 누비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붓 자국은 보다 분방하고 색조는 화사한 톤으로 얼룩진다.


 

 
제목없음 - 1981 년작 / 45*30 / 수채화

대단한 절제가 요청되었던 <가락>연작에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호쾌한 기운이 화면을 누비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붓 자국은 보다 분방하고 색조는 화사한 톤으로 얼룩진다.



 

 
제목없음 - 1981 년작 / 45*30 / 수채화

대단한 절제가 요청되었던 <가락>연작에선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호쾌한 기운이 화면을 누비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붓 자국은 보다 분방하고 색조는 화사한 톤으로 얼룩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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