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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64-1 - 1964 년작 / 130*162(100호) / 캔버스 오일 |
1965년 1회논꼴 동인전 출품작 95년 유작전 전시작품 글 : 오광수/미술평론가
강국진의 작가로서의 활동은 65년 논꼴 동인의 결성과 발표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논꼴 동인은 65년 홍대 졸업생들이 중심이 된 단체로 그 구성 요원은 강 국진을 비롯해 정찬승, 김인환, 한영섭, 남영희, 최태신, 양철모 등이었다. 이들 그룹 형성은 같은 교실에서의 의기투합과 그것의 보다 진전된 정신적 공동체로서 집단 제작실을 경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논꼴이란 그룹명은 집단 제작실이 있던 무악재 너머 홍제동 화장터 근처의 옛 지명에서 따온 것이었다. 65년 졸업반이었던 이들이 한 곳에 집단 제작실을 마련하여 생활과 제작을 같이 했다는 것은 단순한 젊은 열기로만 이루어진 것이기보다는 이념의 공동질을 모색했던 치열한 의식에서 가능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도 이 시절 그들의 술자리에 가끔 참여 한 적이 있는데 언제나 그 토의 방식은 뜨거웠고 진지했다. 무엇을 어떻게 결론 내린다기보다 각자 지니고 있는 예술에 대한 뜨거운 욕구들을 무차별하게 쏟아놓는 자리였다. 때로는 조용조용 얘기가 전개되다가도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격론에 휩싸여 감정들을 가누지 못할 때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적어도 논꼴이란 그룹은 이런 내막을 통해 결성된 단체였다. 논꼴 창립전은 65년 2월 신문회관에서 열렸다. 이 때 펴낸 <논꼴 아트>는 일종의 동인지 겸 창립전 카다로그로 대용된 것이었다. 여기에 나와있는 선언문을 보면, 대단히 추상적이기는 하나 현상을 극복하려는 그들 나름의 의욕이 간단없이 표명되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 전문을 옮겨본다.> <<일체의 타협의 형식을 벗어나는 시점에서 우리는 항시 자유로운 조형의 기치를 올린다. 1)새 세대에 참여하는 <자유에의 의식>을 우리의 조형 조건으로 한다. 2)우리는 극단적 시간의 창조적 변화를 조형윤리로 삼는다. 3) 기성의 무분별한 감성에서 벗어나 지성의 발판에서 형성의 모랄을 추구한다.>> 창립전에 출품한 강 국진의 작품은 6점으로 <작품>으로 명제가 통일 되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의 직시된 인간상의 모순, 이것을 강한 선, 가열된 바탕, 부정의 세계를 뚫고 폭발하는 무수한 기호형에서 오는 직열(直列)된 감정, 이것이 나의 캔버스 위에서 표현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표명하고 있단. 다소 생경한 언어의 표명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강국진의 당시 작품에 대한 자기의 변으로서는 상당히 정곡을 찌른 표현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그만큼 화면은 강인한 선조의 폭발하는 구성력에 지탱된 인상을 주었으며 그것이 점차로 기회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의 작가변에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해 66년에 열린 2회전에서도 그의 작품성향은 창립전 때와 그대로 맥락되면서 보다 단순화된 선조의구성과 부드러운 색조의 토운이 곁들여지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