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4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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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526 보천사 |
소재지 | 해평면 보천사 |
지정일 | 1968.12.19 |
수량/면적 | 1구 |
시대 | 통일신라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구미시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보천사(寶泉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높이 1.32m.
보천사의 주존불로서 얼굴과 신체의 일부에 약간의 손상을 입었으나 광배와 대좌는 모두 갖추고 있다. 나발(螺髮)의 머리에는 육계(肉髻)가 표현되었으나 머리와의 구분이 불분명하다.
얼굴은 둥근 편이나 볼 살이 없어 양감(量感)이 표현되지 않았다. 눈과 코는 시멘트로 보수되어 고격(古格)스런 느낌이 사라졌다. 양감을 잃은 작은 얼굴, 힘없이 수평으로 반쯤 뜬 눈, 미소를 잃은 작은 입 등은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의 풍만하고 긴장감에 찼던 모습과는 달리, 왜소하고 섬약해진 신라 말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신체 또한 어깨는 좁고 움츠린 듯 각이 지고 가슴도 평면적이어서, 부처의 위엄이나 당당함이 사라지고 생동감 없는 왜소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두 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였다. 통견(通肩)의 불의(佛衣)는 탄력성이 없는 이완되고 약간 처진 듯한 밀집한 평행 옷주름〔平行密集形衣文〕으로, 배에는 띠 매듭이 표현되어 있다.
광배는 주형 거신광(舟形擧身光)으로 약간의 손상과 풍화 현상이 보이지만 대체로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내부는 두 줄의 선으로 두광(頭光)·신광(身光)을 구분하여 그 안에 보상화문(寶相華文)을 새겼다. 두광 안에는 연화문을 새겼다.
두광과 신광의 밖에는 향로와 네 구의 화불(化佛), 삼존좌상을 조각하였다.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겨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광배 형식은 향로를 배치한 점이 특이할 뿐 9세기 광배 형식과 같은 것이다.
대좌 또한 8, 9세기에 유행한 팔각연화대좌이다. 상대석에는 중판앙련(重瓣仰蓮) 16엽을 조각하고 각 연판 안에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중대는 팔각으로 각 모서리마다 우주(隅柱 : 모서리 기둥)를 표현하고 앞면에는 불좌상, 양 측면과 후면에는 꽃가지를, 그밖에는 비천상(飛天像)을 조각하여 형식화되어 가는 불상과는 대조적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대와 하대 사이에는 중대굄이 마련되었는데, 이것 또한 9세기 중엽의 불상대좌에 나타나는 유형이다. 하대는 복판복련(複瓣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겹잎의 연꽃)이 새겨진 것과 안상석(眼象石)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안상 내에는 양끝에 운문(雲文) 같은 것이 새겨진 점이 특이하다. 4각의 지대석(地臺石)에는 모서리마다에 지름 5.5㎝, 깊이 3.5㎝의 구멍이 뚫려 있다.
이상과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불상은 청룡사석조여래좌상(보물 제424호)이나 부석사(浮石寺) 자인당(慈仁堂)에 봉안된 영주북지리석조여래좌상(榮州北枝里石造如來坐像, 보물 제220호) 등 9세기 불상의 양식과 유사하다.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성이 짙은 광배와 대좌 또한 9세기 무렵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이 불상의 제작 연대는 신라 말기, 특히 9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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