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글. 이해인 / 낭송. 이재영
당신이 내게 주신 가을노트의 흰페이지마다
나는 서투른 글씨의 노래들을 채워 넣습니다.
글씨는 어느새 들꽃으로 피어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읍니다.
말은 없어지고 눈빛만 노을로 타는 우리들의 가을,
가는 곳마다에서 나는 당신의 눈빛과 마주칩니다.
가을마다 당신은 저녁노을로 오십니다.
말은 없어지고 목소리만 살아남는 우리들의 가을,
가는 곳마다에서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 목소리에 목숨을 걸고 사는 나의 푸른 목소리로
나는 오늘도 당신을 부릅니다.
가을의 그윽한 이마 위에 입맞춤하는 햇살,
햇살을 받아 익은 연한 햇과일처럼 당신의 나무에서
내가 열리는 날을 잠시 헤아려보는 가을아침입니다.
가을처럼 서늘한 당신의 모습이 가을산천에 어립니다.
나도 당신을 닮아 서늘한 눈빛으로 살고 싶습니다.
싱싱한 마음으로 사과를 사러 갔었읍니다.
사과씨만한 일상의 기쁨들이
가슴 속에 떨어지고 있었읍니다.
무심히 지나치는 나의 이웃들과도
정다운 인사를 나누고 싶었읍니다.
기쁠때엔 너무 드러나지 않게 감탄사를 아껴 둡니다.
슬플 때엔 너무 드러나지 않게 눈물을 아껴 둡니다.
이 가을엔 나의 마음 길들이며 모든 걸 참아 냅니다.
나에 도취하여 당신을 잃는 일이 없기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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