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소한 것의 존귀함
한국일보의 한 칼럼에 소설가 정연희씨가 쓴 글을 읽고 느낀 바가
무척 많았던 글을 소개합니다.
『오래 전에, 이디오피아 난민의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었을 때,
나는 교회 중등부 학생들 10여 명에게 난민의 실태를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그 곳에서는 지금 한 주일에 1천 명이나 굶어서 죽고 있단다. 이대로
가다가는 반 년 안에 1천만 명 이상이 굶어 죽게 된다는구나."
비교적 부유한 집의 자녀들이어서 그 이야기가 과연 어떻게 먹혀들어 갈
것인가를 우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도 뜻밖의 반응에 소스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데, 하나라도 많이 죽으면 좋지요,
뭐!"
별 생각 없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아니 오히려 옳은 대답을 하는
듯 자신 있게 말한 것은 청순하게 생긴 중학교 1학년생인 소녀였다.
너무 당황하여 한동안을 허둥거리다 "그들이 많이 죽어서 득을 보는 것은
살아 남은 우리들이야? 그렇다면 곧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서 죽어야 할 텐데,
어쩌면 네가 먼저 죽어야 하는 것 아니겠니?"
그 날의 교회 학교 공부를 어떻게 끝마쳤는지 지금도 기억해 낼 수 없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나는 나의 교회 생활과 교회 직분에 대하여 어둡고
깊은 회의에 빠졌다.
그 어린이의 말은 곧 내 속 깊은 곳에 숨어 있었던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의 입을 빌렸을 뿐이지, 그 생각은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흉악한 이기심의 일부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읽고 "정말 그렇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일이 없는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인간이 본성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가,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부모형제에 대해서까지라도,
그분들이 내게 귀찮은 존재가 될 때에는 그들이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일은 없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버림받고 배척당하는
그것은 어느 날 나 자신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ㅡ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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