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례 동작
전례는 하느님께 드리는 공적 예배행위이다.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는 한 하느님의 백성이 같은 믿음을 표현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전례의 특성상 그 표현은 일치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곧 전례 동작은 일치 속에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표현하는 전례 동작이 매우 다양하다. 표현방법 자체도 크게는 나라마다, 작게는 개인마다 다르다. 따라서 전례는 내용과 행위자에 따라 다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1) 서는 자세
존경을 표하는 자세 : 사제나 부제가 복음을 봉독할 때엔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서서 경청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서 있었다(출애 20,21 ; 느헤 8,5 ; 에제 2,1 ; 다니엘 10,11). 이러한 존경의 자세는 하느님을 대리하여 전례를 집전하는 사제나 부제에게도 행해진다. 그래서 예식의 처음과 끝에 주례자가 입당하고 퇴장하면 교우들은 일어선다. 하느님께 대한 존경의 자세는 누구보다도 제단 봉사자들, 특히 사제에게 필요하다. 이들은 백성을 대표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는 것은 제단 봉사자들의 기본 자세이다(집회 50,13).
가장 보편적인 기도자세 : 성서에 보면 기도할 때에 흔히 서서한다(1사무 1,26 ; 마르 11,25 ; 루가 18,13). 까따콤바의 벽화나 고대조각 또는 초세기 저서들을 보면 당대의 신자들은 흔히 서서 기도했다. 이는 사도교회의 관습에서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부활과 기쁨의 자세 :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우리도 그분을 통하여 부활하여 일어났다. 이레네오의 증언에 의하면 <일어섬 = 부활, 기쁨>의 연관성이 초세기부터 있었다. 그러한 의미 부여는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져 부활시기와 주일에는 서서 기도하는 예가 많다(삼종기도 등).
그 밖에 깨어 있음, 준비, 활동에 임하는 태세, 감사, 주님 맞이 및 종말이나 희망의 자세를 나타낸다.
2) 무릎 꿇음
보편적인 경배 및 기도자세 : 두 발로 서는 존재인 인간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낮추고 작게 만드는 겸손의 몸짓이자 상대방에게 존경을 드러내는 동작이나 자세이다. 하느님은 더없이 높으시고 거룩하시며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다. 먼지에 불과한 인간이 그 분 앞에 나설 때엔 자연히 경배의 자세로 무릎을 꿇게 된다. 이러한 자세는 이스라엘의 경배 및 기도 자세였다. ”어서와 허리 굽혀 경배 드리자. 우리를 지으신 야훼께 무릎을 꿇자“(시편 95,6). 예수께서도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실 때에 무릎을 꿇으셨다(마태 26,39).
뉘우침을 드러내는 자세 : 인간이 자신의 죄많은 처지를 생각하고 뉘우침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이런 면에서는 부활과 기쁨을 나타내는 서는 자세와는 정 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간청의 자세 : 인간은 겸손되이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써 간절한 원의를 드러낸다. 피정이나 특별 기도 행사를 시작할 때에 외는 “임하소서, 성령이여”( Veni Creator Spiritus)의 첫 구절도 그런 의미에서 무릎을 꿇고 바친다. 또한 성 금요일의 장엄 기도 때에 무릎을 꿇는 것도 같은 뜻을 지닌다.
3) 앉음
인간은 몸의 구조상 오래 서 있거나 꿇어 있으면 쉽게 피로를 느끼는 반면 앉으면 몸도 편안해지고 마음도 차분히 가라 앉는다. 즉 올바른 자세로 앉아 있다는 것은 바른 몸가짐을 나타내는 것 뿐만 아니라 정성이 담긴 기대와 주의력으로 가득차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전례에서는 가르치거나 경청의 자세로 앉는 자세를 취한다.
가르치는 자세 : 주교나 사제는 강론이나, 훈계를 할 때에 앉는다. 주교는 서품식, 견진예식, 미사 등 각종 예식 중의 훈화 부분에 흔히 앉는다.
경청의 자세 : 전례 중에 복음을 제외하고 성경을 봉독할 때에나 사제나 부제의 강론 때에 교우들은 앉아서 경청한다. 소년 예수께서도 성전에서 학자들 가운데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였다(루가 2,46). 마르타의 자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였다(루가 10,39). 그리고 성경 봉독 후나 영성체 후에도 모든 사람은 앉아서 침묵 중에 주님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고요한 가운데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을 기울인다.
4) 엎드림
몸 전체를 땅바닥에 맞대고 엎드리는 것은 무릎을 꿇는 것과 허리를 굽히는 것을 최대한으로 강화시킨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가장 심화된 경배, 겸손, 속죄, 간청의 자세이다. 이런 뜻으로 성서에는 엎드려 기도하는 대목이 가끔 나온다(창세 17,3 ; 신명 9,18 ; 느헤 8,6 ; 유딧 9,1 ; 마태 17,6 ; 묵시 4,10 등). 흥미로운 사실은 루가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게쎄마니에서 우릎을 꿇고 기도하시지만 마태오(26,39)와 마르코(14,35)에 따르면 엎드려 기도하신다.
5)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힘
이 동작은 동서를 막론하고 인사 때에 흔히 쓰이는 존경의 표지이다. 그 의미도 무릎을 꿇는것과 대동소이하게 심도의 강약은 굽히는 행위의 심도로 표현한다. 전례에는 한쪽 무릎을 꿇는 동작보다 먼저 들어왔으며 오늘날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 예물을 받아 들이기를 청하는 사제의 기도(”주 천주여 겸손되 마음과...“), 사제의 영성체 준비기도, 개회식과 폐회식 때의 제대에 대한 인사 등
유의할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한쪽 무릎을 꿇거나 입맞추는 풍습이 없기 때문에 이들 동작을 모두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히는 동작, 곧 작은 절이나 큰 절로 통일시켰다. 즉 제대 친구, 복음서 친구, 성체 성혈 거양후의 장궤, 자세의 영성체전 장궤, 주교에게의 친구나 장궤 등이 모두 큰 절이나 작은 절로 바뀌었다.
6) 손을 모음, 올림, 벌림--이 세 동작은 몸 전체를 대변하는 손이나 팔의 동작이다.
손을 모음 : 경건, 겸손, 봉헌의 표시이다. 또한 다른 동작(축복, 안수 등)을 취하기 위한 준비자세이기도 하다.
손을 벌림, 올림 : 개방, 수용태세, 올리는 기도, 간청 등의 자세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주례자의 기도와 연관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손을 펴드는 자세는 높이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그 분의 도움을 바라는 자세이며 함께 있는 모든 이를 기도에로 초대하는 자세이다.
예) 기도합시다... 주님의 기도.
7) 안 수
손은 사람이나 사물과 접촉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그래서 안수는 가장 오래된 예배 동작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서의 영향을 받아 안수를 하느님의 영, 힘, 또는 권한을 부여하는 표시로 축성, 축복 등의 예식에 많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견진, 고해, 서품, 병자 도유 등 성사 예식의 핵심 동작으로 간주하고 있다.
8) 행 렬
많은 사람이 줄을 지어 함께 걷는 행렬은 공동으로 의지, 소망을 표시하거나 증거하는 동작이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 소망, 증거, 축제, 환영, 존경, 신께 나아감 등의 의미로 교회 전례 안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다윗은 주님께 대한 환영과 존경의 표시로 계약의 궤를 운반할 때 행렬하였으며(2열왕 6 ; 시편 68)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한주간 동안 머물면서 축제와 신께 나아감 등의 표시로 매일 성전과 실로암 샘 등으로 행렬하였다.
현행 예식에서는 다음의 경우에 행렬을 한다. : 성체 행렬, 2월 2일의 주의 봉헌 미사 전 빛의 행렬, 성지 주일의 입성 행렬, 미사 때의 입당, 복음서 봉독, 예물 봉헌, 영성체 및 퇴장 행렬, 행렬 때에는 일반적으로 동반 성가가 따른다.
9) 십자 성호
십자가는 고대 중동 지방의 사형 도구였으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희생되신 이후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이 되었다. 교회는 이미 초세기부터 여러 형태의 십자표시를 전례나 사적인 기도 등에 애용하였다.
십자 표지에 대한 최초의 증언은 2세기 중엽의 떼르뚤리아노가 제시하는데, 입교 예식의 첫 단계인 예비자를 받아들이는 예식 때에 예비자의 이마에 십자표를 그렸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예비자 예식, 견진 예식, 복음 봉독 등에 이마 또는 복음서에 한 번 십자 표시를 한다.
이마나 입술 및 가슴에 십자를 그리는 양식은 작은 십자 성호라고 하는데 이미 중세기 이전부터 애용되었으나 전례 안에 들어온 것은 12세기 이후이다. 현재는 복음 봉독 직전에만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해설은 많은데 대체적으로는 복음의 말씀을 머리로 깨닫고 입으로 선포하며 마음으로 받아들여 실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사람이나 사물에 십자표를 그리는 형태는 4-5세기부터 안수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축복, 축성, 사죄, 구마 등 여러 의미가 있다. 현행 예식에서는 미사 때의 축성, 참회 예식의 사죄, 각종 예식 끝의 파견 축복, 사물 축성 등에 나타난다.
본 의미의 십자성호는 5세기 경부터 나타나지만 전례나 개인 등에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경부터이다. 특히 이 동작은 중세 초기에 성삼 기도문(성호경)과 합쳐 지면서 더욱 일반화 되었다. 이마와 가슴 및 양 어깨에 십자성호를 긋는 뜻은 구원의 상징인 십자가를 자신의 몸에 그어 줌으로써 스스로를 축복하며 하느님의 은총을 비는 것이다.
현재 이 십자 성호는 전례나 개인기도의 시작과 끝, 하루 일과나 각종 활동의 시작과 끝 등에 널리 쓰인다.
모든 종류의 십자 표지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원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자체로 가장 짤막하고 명료한 신앙행위가 된다.
2.전례 색깔
전례복의 색깔은 거행하는 전례력에 따라 신앙의 신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목적을 가졌다.
동방 예식에서는 전례복의 색깔을 별로 중요시 하지 않으나, 서방 예식에서는 12세기 경부터 축제의 내용에 맞추어 사용하였다.
✡ 백색 :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며 영광, 결백, 기쁨을 상징한다. 부활시기, 성탄시기, 수난과 관계되는 날을 제외한 주님의 축일과, 기념일, 성모축일, 천사와 순교자가 아닌 성인 성녀 축일과 기념일, 모든 성인(1월 1일)과 세자 요한 축일(6월 24일), 사도요한 축일(12월 27일), 베드로의 사도좌(2월 22일) 및 사도 바오로의 개종(1월 25일)축일, 죽은 이를 위한 미사
✡ 홍색 : 사랑과 피를 상징한다. 주의 수난 성지주일과 성 금요일, 성신강림 주일, 주의 수난 예식, 사도와 복음사가의 축일 및 순교성인 축일과 기념일
✡ 녹색 : 생명의 희열과 희망을 상징한다. 연중시기
✡ 자색 : 통회, 보속을 상징한다. 대림시기와 사순시기, 죽은이를 위한 미사
✡ 흑색, 삼베색 : 죽음을 상징한다. 죽은이를 위한 미사나 장례 예식
✡ 장미색 : 기쁨을 향한 휴식을 상징한다. 대림 제3주일, 사순 제4주일
✡ 금색 : 미사를 성대하게 거행할 때 입으며 백색, 홍색, 녹색을 입을 때 사용할 수 있다.
☞ 이상과 같은 색깔의 제의를 축일에 따라 갖추지 못했을 경우에는 백색으로 대신할 수 있다. 따 라서 전례시에 제의색만 보아도, 그 날 축일의 성격을 알 수 있다.
3.미사의 의미
1)미사란 무엇인가?
어원에서 보면 미사라는 말은 제사라는 말과는 관계없이 전연 다르게 유래되었습니다. ‘미사’라는 말은 라틴어 Mittere(보내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제사가 다 끝난 다음 교우들을 보낸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던 것입니다. 옛날 라틴어 미사 중에 의식이 끝날 때에 Ite missa est(돌아갈 수 있으니 돌아가시오;: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말에서 미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미사 성제를 ‘미사’라고 부르게 된 것은 4세기부터 였습니다. 그전에는 라틴 세계에서 ‘꼴렉타’(collecta:모임)라는 말을 쓰기도 했고 또 다르게는 ‘아젠다’(agenta:행할 것)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영어로는 mass라하고, 불어로는 messe, 독일어로는 mess라고 하는데 이 모든 말의 어원은 라틴어 missa est입니다.
이러한 미사의 본질적인 성격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사라고 하는 성격과 잔치라고 하는 성격이 가장 크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사를 제사의 성격에서 보면 미사는 예수께서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서 자신을 바치신 십자가의 제사를 되풀이하여 사제의 손으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천주 성부께 바치는 가장 숭고한 제사인 것입니다. 제사는 그 자체가 절대자에게 바치는 최대의 경신 행위인 것입니다. 제사를 바치는 이유는 절대자에게 대한 흠숭, 감사, 속죄, 기원 이상 네 가지 내용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미사를 통해서 우리는 ① 하느님께 최대의 흠숭을 드리고, ②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한 용서를 받고, ③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④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받게 됩니다.
또 잔치라는 성격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통하여 성체 성사를 설정하셨듯이 미사는 나눔의 잔치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빠스카 축제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기념하는 축제로서, 그들이 에집트 종살이에서 벗어나 해방을 찾게 된 역사적 사건을 명절로 기쁘게 지내며 기념하였듯이 신약의 빠스카인 성체 성사 즉 미사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약의 빠스카가 완성되는 것으로, 예수님 자신이 구약의 속죄양이 되시어 제물이 되시고 스스로 제관이 되시어 하느님께 빠스카 축제를 지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설정된 성체 성사(미사)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받아먹어라. 너희는 받아 마셔라’라고 하셨으므로 이 성체 성사(미사)는 곧 빠스카 잔치라는 것입니다.
미사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전제하고 이제는 미사의 각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2)미사의 각 부분에 대한 해설
(1)개회식
㉠ 입당송(입당성가) : 입당은 성전에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입당송은 미사 예절을 시작하고 집회의 일치를 강화하며 교우들의 마음을 전례 시기와 축제의 신비로 인도하고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에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입당송은 사제가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입당할 때 그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알아 환영하는 백성의 환호 소리이며, 이것은 주일이나 축일에 따라 고유한 것이며, 대개 시편에서 발췌한 구절들입니다.
㉡ 제단에 인사 : 인사는 돌로 되어 있는 제단에 입을 맞추거나 깊이 숙여 절을 하는데, 한국 교회에서는 깊이 절을 하는 것을 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는 ‘돌’이시며 동시에 사막에서 히브리 백성을 보호하고 갈증을 풀어 준 바위이시고, 교회라는 건물의 주춧돌이시기 때문입니다.
㉢성호경 위의 설명 참조
㉣신자들에게 인사 그 후 사제는 “사랑을 베푸시는 성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인사를 하는데 이것은 신자들 가운데 그리스도가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현존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성 바울로의 고린토 후서의 맺음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현존 의식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신자들은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인사를 나눈다. 이 다음 사제는 그날의 미사지향을 간단한 말로 소개한다.
㉤ 참회 예절 : 사제는 신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을 하고 미사에 임할 수 있도록 참회의 기도로 초대한다.이는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기 전에 원한을 품은 형제가 생각 나거든 화해하고 돌아와 오라(마태 5,23)고 이르셨기 때문이다. 참회 예절은 미사 성제를 시작하면서 우리 자신의 허물과 죄를 먼저 주님 앞에 뉘우치고 고백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깨끗이 하는 예절로써, 모든 공동체가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뉘우치는 고백의 기도를 바치고 이에 사제는 사죄경으로 사죄를 선포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사 중의 참회 예절은 형식적인 예절이 되어서는 안되며, 실제로 대죄가 있을 경우에는 개별 고백을 해야 되지만 소죄나 미소한 죄가 있을 때에는 이 예절에서 죄를 뉘우치고 성체를 영함으로써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다.
㉥ 자비송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말하는 이 자비송은 주님을 부르며 그분의 자비를 간청하는 노래입니다. 이 기도에서 첫번은 천주 성부께, 두 번째는 천주 성자이신 그리스도께, 그리고 마지막은 성령께 자비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동방교회의 호칭 기도에서 젤라시오 교황때 로마 전례에 도입된 것인데 “주님,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말 전에 탄원 기도가 있었다.그런데 로마전례에는 봉헌전에 공동 기원과 봉헌문 중에 교회를 위한 기도와 청원 기도가 있음으로 여기서“주님,자비를 베푸소서”만 남게되었다.
㉦ 대영광송 : 이 기도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기쁨에 넘친 기도 중의 하나로서, Te Deum (감사가)과 함께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부르던 성서의 영감을 받은 시편으로 우리에게까지 남아 전해 오는 기도입니다. 대영광송은 성부, 성자, 성령이신 성삼위께 영광을 드리는 성시로서, 루가복음 2장 14절에 나오는 천사들이 구세주의 탄생을 찬미하던 노래로 시작되고 이어서 하느님 아버지를, 다음에는 아드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마지막에는 성삼위께 대한 찬미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기에 이 대영광송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와 속죄와 보속의 시기인 사순 시기를 제외한 모든 주일, 대축일, 축일 및 지역의 성대한 축제 때에 노래하거나 외우게 됩니다.
㉧ 본기도 : 대영광송이 끝나면 사제는 “기도합시다.”라고 하며 모든 신자들을 함께 기도에 초대한다. 이 본기도는 그날 미사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그러므로 사제가 기도하는 동안 우리도 또한 사제와 함께 마음 속으로 기도를 드림으로써 그 기도에 참여 해야 한다.
(2)말씀의 전례
㉠ 독서 : 이때는 신자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데 평일에는 독서가 하나밖에 없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주일과 대축일에는 두 개의 독서를 읽습니다. 제1독서와 제2독서가 있을 때에는 제1독서를 주로 구약성서에서 읽고, 제2독서는 신약성서에서 읽습니다. 이 말씀의 전례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과거에는 매년 읽혀지던 성서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말씀의 풍성한 식탁을 마련하도록 신자들에게 성경의 보고를 널리 개방하여 성경의 중요한 부분을 일정한 기간 내에 회중들에게 낭독해 주어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3년을 주기로 나누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성서봉독은 교회가 공식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대면해서 봉독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독서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끝나면 독서자는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고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합니다. “하느님께 감사”란 말은 신자들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감사의 정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므로 앵무새처럼 습관적으로 따라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 응송 : 제1독서 후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기도인 응송이 따릅니다. 구약성서와 관계있는 부분을 뽑아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음미하며,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생각하고 기념하기 위한 것인데 이는 시나고가(회당) 이래의 전통이기도 하다. 회당에서 율법서(모세오경)를 봉독하고 시편을 노래하던 것이 응송의 기원이라 할수 있는데 로마 교회전례에서는 그레고리안 성가가 차츰 발달함에 따라 음악적으로 풍부한 선율로 발전하게 되어 일반인들은 부르기가 어려운 층계송(그라두알레)이 되었다.
㉢ 알렐루야 : 제2독서 후에는 알렐루야를 부르는데, 알렐루야는 사순 시기를 제외하고 항상 노래로 부릅니다. 이 알렐루야는 ‘하느님을 찬미합시다’라는 뜻으로 여러 번 거듭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현의나 성인들의 축일에 대한 기쁨을 넘치게 나타내는 것이며 또한 부활의 기쁨을 나타내는 소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전에 읽은 사도 서간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고 다음의 복음 봉독에서 함께하실 그리스도를 환영하는 것입니다.
㉣ 복음 : 복음은 말씀의 전례의 최고의 품위를 이루는 것으로서, 가능하면 복음은 부제가 봉독하고, 부제가 없으면 사제가 복음을 봉독합니다. 이렇듯 복음은 아무나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부제나 사제가 읽는데 그 이유는 복음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말씀이며, 또한 복음을 읽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식)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복음을 읽기 전에 주의를 촉구시키기 위해서 하는 인사다.
2) ‘…에 의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하면 ‘주님 영광 받으소서’ 하고 작은 십자성호를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긋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을 머리로 깊이 생각하고, 입으로 고백하고 전하며, 마음속 깊이 간직하겠다는 뜻입니다.
3) ‘주님의 말씀입니다.’하고 사제가 복음을 읽은 후에 하면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하고 신자들은 환호로써 응답한다. 복음은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 강론 : 강론은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을 풀이하고 기타 신앙에 필요한 일들을 그날 전례 정신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론은 하느님의 백성을 거룩한 백성으로 회두시키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자기 자신을 잘 봉헌하기 위해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이 강론에 대해 미사 경본 총지침은 ‘강론은 전례의 한 부분이며 신앙 생활을 양육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권한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신앙 고백 : 신앙 고백은 하느님의 거룩한 구원 역사 전체, 즉 천지 창조에서부터 강생을 통해 성령 강림과 교회와 성사들의 신비에 이르는 구원 역사의 요약으로서, 복음에 대한 그분의 가르침에 동의를 표명하는 것이고 동시에 영세한 우리의 특권을 상기시키는 신앙의 응답인 것입니다. 성서 봉독은 이를 통하여 하느님이 말씀을 건네는 것이지만 신앙고백은 주님께 대한 우리의 대답과 같은 것이다. 이는 6세기 초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습니다. 이것은 성찬의 전례에서 성체성사를 받기 전에 세례성사 때의 결심을 새롭게 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앙고백은 주일과 대축일에 사제와 교우들이 함께 외우는 것으로서, 지역의 성대한 축제에서도 사도 신경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신앙고백은 주의 기도와 함께 초대 교회 때부터 사용하여 온 것으로 우리 공동체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함께 하고 있음을 증거 하는 것이며, 그 공동체를 효과적으로 심화시키는 말씀에 대한 응답이며, 교회와 그리스도를 믿는 전교회의 일치를 염원하는 호소인 것입니다.
㉦ 보편지향 기도 : 신자들의 기도는 어느 특정한 신자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고 모든 신자들에게 관계되는 보편적이고 공동체적인 성격을 띤 공동체의 기도입니다. 신자들의 기도 순서를 보면 먼저 전교회를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끝으로 지역 공동체를 위해 기도합니다. 신자들의 기도가 끝나면 말씀의 전례가 모두 끝납니다.
(3)성찬의 전례
㉠ 제물 봉헌 : 초대 교회 때부터 성체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빵과 포도주를 신자들은 집에서 가지고 와서 제대 앞에 바치면서 시편을 노래하였는데, 현대에 이르러서 화폐로 대신하게 되었고, 신자들 중에서 대표 2사람이 나와서 미리 준비된 빵과 포도주를 바칩니다. 제물을 제단으로 가지고 가고 사제는 집전자로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요,교회의 대표자로서 신자들의 제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공식적으로 제단에 바칩니다. 제물 봉헌 때 봉헌되는 빵과 포도주는 인간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빵과 포도주를 봉헌한다는 것은 우리의 수고와 땀을 봉헌하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의 전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또한 봉헌된 헌금은 우리의 노고와 수고를 담은 것이고 한 주간 동안 받은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제물로 사용되는 빵은 누룩이나 다른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밀로 만든 빵이며, 그것은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 때에 그러한 밀떡을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포도주도 역시 순수한 것이어야 합니다.
㉡ 예물 준비 : 빵을 바치는 기도’는 구약 때부터 베라카(찬미)의 기도 전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가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제는 성작에 포도주를 붓고 물을 섞는데, 이것의 상징적인 뜻은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희생에 우리의 노고와 희생을 한데 바쳐 하느님께 바친다는 뜻이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을 기념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천주성과 인간성이 결합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
㉢ 손을 씻음 : 손을 씻음은 초대 교회에서 신자들이 집에서 가지고 온 제물을 사제가 받았으므로 더러워진 손을 씻던 것이 오늘날 예절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사제가 손을 씻는 것은 사제의 내적 정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씻는 것입니다. 즉 성찬 예식을 거행하는 집전자에게 내적 깨끗함에 대한 요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 형제들이여... : 사제는 교우들에게 합심하여 드릴 제사가 하느님 아버지께 흡족한 제사가 되도록 열성을 다하여 기도하기를 권한다.
㉤봉헌 기도 : 사제는 이 봉헌 기도 때에 우리 자신과 제대에 준비된 제물을 축복해 주시고 제사를 봉헌하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어주시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감사송 전구(서창전구:敍唱前句)
감사송 전의 이 대화구는 히폴리토의 사도 전승에 나타나 있다.성찬의 전례에 앞서 감사송이 나오는데 이것의 시작을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라는 집전 사제의 인사와 신자들의 “또한 사제와 함께 ”라는 대답의 감사송 전구를 한다.이러한 신자들의 찬동에 고무되어 사제는 정성을 다하여 감사송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노래한다.
㉥감사송 : 이 감사송은 그날 축일의 성격에 따라 다른 것을 보게 되는데, 예수께서 최후 만찬 때에 하신 흠숭과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며 천사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영광을 드리는 것과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하느님과 하느님 앞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실현된 하느님 나라의 구원의 역사가 진술되어 있고 성찬 기도문의 끝에까지 관련되어있다.로마 전례에서는 교회력에 따라 구세사의 특징을 진술하게 되있다. 성찬 기도 전체가 감사송이기에 여기서 감사송이라고 하는 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감사송 서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하시도다 : 거룩하시다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에 히브리 백성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던 환호 소리이며 묵시록에서 천신들이 하느님께 대한 찬미를 드렸던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사 중에 ‘거룩하시다’를 할 때에는 환호와 찬미의 자세를 지니고 참다운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호산나’(Hosanna)라는 말은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성찬기도 성립의 역사 성찬기도는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성문화 되고 고정되기 시작하였다.처음에는(대략 3 세기경까지) 말씀의 전례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충분히 음미한 후 하느님의 말씀에 대답하여 모든것을 바치려는 기도가 성찬 기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잘된 기도문을 배끼거나 가르침을 받아 보존하게 되었고 후세까지 남게 되었다. 여기에는 하느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주셨는가를 천지 창조에서 시작하여 주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진 구세사 전체가 하느님의 자비의 표현임을 이야기 하고있다.로마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용하여온 로마 전문에 대한 존경에서 이것을 성찬 기도 제 1양식으로 하고 히폴리토의 아나포라로 불리는 3세기의 성찬 기도를 현대에 맞게 수정하여 제 2양식으로 하였다.또 고대의 라틴 전례의 전통을 종합하여 새로운 성찬 기도가 작성되어 제 3양식이 되었고 동방교회의 교부 바실리오의 아나포라에서 취해 간결하게 하나로 정리한것을 제4양식으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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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청원 : 축성 기원 (성작 위에 손을 덮음) : 성령의 힘으로 예물을 거룩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며, 이때 복사가 종을 치는 것은 이 같은 거룩한 순간이 다가왔으므로 신자들에게 정신을 집중하도록 알리는 것입니다.
㉩성찬 제정과 성체 축성 : 축성 전에 사제는 밀떡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향하는 것은 감사와 봉헌의 표시이며, ‘이는 내 몸이니라, 이는 내 피니라’하는 사제의 선언으로 밀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고,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현존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체와 성혈을 따로 축성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위에서 말했듯이 성령의 작용은 중요한것이다.기도문 전체에서 성령의 작용을 두번청하고있다.먼저 성변화 전에 나오는 성령의 작용을 청하는 기도때 이다.네가지 기도문은 우리가 드리는 제물 (빵과 포도주)를 성령의 힘으로 거룩하게 하여 주예수 그리스도의 성체화 성혈이 되게 기도하고있다.성변화를 위하여 성령의 힘을 비는 때인것이다. 다음은 영성체를 위해 성령에 의한 일치를 기원하는 때이다. 그리스도의 몸에 함께 참여하는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해주기를 기도하는 때인 것이다.각각성찬의 기도는 각기 강조점이 있으나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기념,봉헌, 감사등 이고 여기에 덧붙여 하느님께대한 봉사 ,하늘나라의 대망,그리스도의죽음을 전하는 선교와선언등과 같은 성격도 포함되어 있다.
㉪ 거양 성체 : 사제가 성체와 성혈을 높이 드는 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성체와 성혈을 흠숭하고 감사와 찬미의 정신을 갖게 하기 위함이며, 이 때 복사가 종을 치는 것은 신자들이 온 정신으로 제대 위에 마음을 집중시키라는 것입니다.
㉫ 신앙의 신비여 : 사제는 성체 축성 후에 이같이 말하는데 이는 신자들의 환호 소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며, 이 말은 성찬 안에서 신앙의 모든 신비가 구체화되고 우리의 일치에 바쳐져 실현된 것을 가리킨다.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끊임없이 내림하고 있다는 긴박감과 우리가 그 신앙에 살고, 죽으심을 전하며 부활하심을 찬양하면서 살겠다는 신앙이 나타나 있고 증거하고 있다.
㉬ 기념과 봉헌…전구 :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기념하는 기도가 먼저 나오고 이어서 교회 내의 구성원들 즉 교황과 주교들과 모든 성직자들이 나오고 다음에는 죽은 사람들을 위한 기도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나온다. 이러한 것은 이미 초대 교회 때부터 실시되었던 기도이다.
㉭ 마침 영광송 : 이 기도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노래이며, 이 영광송 끝에 신자들은 ‘아멘’이라고 응답하는데 이는 미사의 가장 장엄한 순간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다 바쳐 자신을 제물로 제헌하신 순간을 드러내는 것으로 인류의 구원 사업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신자들에게 말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이 영광송은 각 위격의 고유한 작용을 상기시켜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성령으로 하나되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모든 이가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일치됨을 의미하며, 이렇게 일치된 공동체가 하느님께 모든 영예와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다.
* 영성체 예식
㉠ 주님의 기도 : 이 주님의 기도로 성찬식, 즉 영성체 부분에 들어갑니다. 이 기도로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의 빵을 암시하는 일용할 양식을 청하고 또 죄를 깨끗이 씻어 달라고 간청하여 거룩한 빵을 실제로 거룩한 사람들이 받게 됩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육신적 양식만이 아니고 특히 영혼의 양식인 성체를 구하는 것이므로 주의 기도는 영성체를 하기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의 기도를 바치기 전에 사제는 “주의 가르침을 지키고 말씀을 따르면서 삼가 주님의 기도를 바칩시다.”라고 하며 기도로 초대하지만 아버지를 떠난 탕자처럼 하느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중개자이신 그리스도의 구원사업 덕분으로 감히 주님을 하느님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또 이것을 감사하고 주의 기도를 소중히 여기며 주님의 자녀되었음을 상기하면서 이 기도를 바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주의 기도의 본문은 마태오 복음에서 취한 것으로 이 기도의 주제는‘주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바라는 사상에 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에서 사용한 ‘이름’에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본질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 나라가 임하시며’라는 말이나‘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주의 기도의 후반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악에서 구하소서’까지의 네 가지는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 주의 기도가 영성체 전에 바치게 된 것은 매일미사가 거행되기 훨씬 이전부터의 관습이다. 주일날 받은 영성체를 전부 영하지 않고 집에 가지고 가서 매일 아침 주의 기도를 바치고 영하는 습관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 하듯이 하느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주님의 기도가 끝나면 하느님 아버지께 향한 이기도 부분은 주님의 기도에서 마지막 기원인‘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말을 이어받아 그 사상을 부연한 것이다. 여기에 주님의 기도 전체의 주제인 ‘아드님의 나라가 임하시며’라는 사상을 첨가하였다. 이러한 하느님 나라를 바라는 종말론적인 기대의 응답으로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하고 답한다. 여기 나라는 정치적인 국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내세적인 나라라는 뜻이 담겨 있다.
㉡ 평화의 기도: 그리고 다음의 교회를 위한 평화의 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되는데 그리스도를 향해 교회를 위해 평화를 청하는 기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하며 평화를 약속하셨다.“우리 죄를 보지 마시고 오직 성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성교회로 하여금 주의 뜻대로 화목하여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라 하신 주님의 약속으로 하느님이 교회에 평화와 일치를 주시도록 다시 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평화의 인사 : 주의 기도를 바친 다음 사제는 온 세상과 교회를 위하여 평화의 기도를 바칩니다. 교우들은 교회와 전인류 가족의 평화와 일치를 간청하고, 서로 평화와 사랑의 인사를 나눕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축복하는 마음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옆에 있는 형제 자매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이 평화의 인사는 서로의 평화와 일치를 나타내고 확인하는 하나의 기도이며 인사이다. 이러한 신자 상호간의 인사는 옛날에는 ‘신자들의 기도’라는 공동 기원 다음에 행하여 진 것으로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16,16)나 베드로 의 첫째 편지(5,14)에 나오는 “사랑의 입맞춤”이란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스티노나 히폴리토에 의하면 그것은 말씀의 전례를 끝맺는 기도의 마침이며 성찬의 전례에 들어가기 전에 신자들만이 서로 교환하는 인사였다고 한다. 여기엔 서로를 용서하는 것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이 평화의 인사가 영성체 전의 이 순서로 옮겨진 것은 그레고리오1세 교황에 의해서 였다.
㉢ 성체를 쪼갬 : 이 성체를 쪼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제가 성체를 나누는 의미는 최후 만찬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을 모방하는 것으로 초대 교회 신자들이 하나의 빵을 나누어 먹는 데서 신자들 간에 일치와 사랑을 표시하고,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처참한 죽음을 상징하며, 십자가상에서의 피를 흘리신 거룩한 제사를 상징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갈라졌던 영혼과 육신의 거룩한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체의 한 부분을 떼어 성혈에 넣는 것은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갈라졌던 몸과 피를 합침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예식은 성체를 나누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를 받아 모심으로써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어린양 : 여기서 말하는 어린양은 제물로 바쳐지는 양을 말합니다. 이 기도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희생되신 예수께 우리 죄의 용서를 청하는 것으로서, 세 번이나 반복을 하면서 주님을 받아 모시기에 부당한 우리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간청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물로 가장 많이 사용된 짐승은 무죄함과 양순함을 상징하는 어린양이었으며, 신약의 제물인 그리스도 역시 무죄한 자로서 십자가에서 참혹히 죽으시기까지 온순하시고 인내하셨으므로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라고 말씀하시며, 이분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 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하느님께 자비와 평화를 구하는 것이다.
㉤성체를 보여줌 : 사제는 영성체 때에 받아 모실 성체를 교우들에게 미리 보이며 그리스도의 잔치에 초대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우리는 성서에 나오는 백부장의 믿음(루가복음 7,6-7)의 자세를 본받아 ‘주님, 제 안에 주를 모시기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주의 몸을 받아 모시는 것이 우리에게 죄가 많아 합당한 자격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우리 영혼이 병들지 않게 하고 또 병든 우리 영혼을 낫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영성체 전의 신앙고백은 백부장의 말을 본따서 우리의 성체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제는 성체를 높이 들어 보이며 묵시록(19,9) 에 나오는 “하느님의 어린양의 식탁”이란 상징적인 요한의 말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인 완성 때의 영원한 잔치를 나타내는 주의 식탁으로 신자들을 초대한다.
㉥ 영성체 : 신자들은 줄을 서서 제대 앞으로 나아가 성체를 받아 모시게 되는데 이때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면 신자들은 ‘아멘’이라고 응답하며 성체를 영합니다. 우리가 성체를 영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드러내며, 우리는 성체 성사에 기초를 둔 일치를 표현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멘’하고 응답하는 것은 하나의 의지적인 행위이고 신학적인 행위이며, 우리의 신앙 고백으로 성체가 참된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것을 수긍하는 ‘그렇습니다. 나는 믿습니다’고하는 것이며 동시에 ‘예 저는 그리스도의 참된 몸을 모심으로써 그분의 몸인 교회의 건설과 일치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고 하느님께 약속을 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신자들도 성체와 성혈을 다 영했습니다. 그러나 신학이 발전함에 따라 신자들의 수가 많아지고, 또 빵과 포도주에 각각 완전한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현존하심을 인정하면서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신자들은 성혈을 영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특별한 경우에만 양형 영성체를 하도록 규정했습니다.
㉦ 영성체송(성체성가) : 사제가 영성체를 할 때에 신자들은 영성체송(성체성가)을 바치는 데 이는 그날 미사의 신비를 나타내고, 예수께서 최후 만찬 후에 제자들과 함께 올리브 동산으로 가시며 시편을 읊으신 것을 본떠서 하는 기도입니다. 영성체 때 성가를 부르는 것은 성체를 영하는 신자들의 영신적 일치를 드러내고 마음의 기쁨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 영성체 준비
1) 영혼의 준비 : 성세 성사나 고백의 성사를 받아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하며, 바른 지향과 거룩한 정신과 영혼의 유익을 위한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2) 마음의 준비 : 미사에 열심으로 참례하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 사랑의 정을 일으키며 예수님을 모시기를 간절히 원해야 한다.
3) 육신의 준비 : 공복재(한 시간 전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을 지키고 옷을 단정히 입어야 한다.
㉧ 영성체 후 기도 : 사제가 신자들을 대표하여 영성체에 대하여 감사드리고 또 영성체로 받은 은혜를 언제나 우리에게 머물게 해 주시기를 구하는 마지막 장엄 기도이다. 영성체가 끝난다음 영성체 후 기도는 본기도나 봉헌기도와 같이 미사의 세가지 공식기도의 하나로 나눔의 의식과 성찬의식 전체를 끝맺는 기도이다. 그 내용은 그 날의 그리스도 구원의 신비가 그리스도 인에게 작용하여 우리들의 생활에 풍성한 결실을 맺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4)폐회식
㉠ 사제의 강복 : 옛날에는 주교님들이 강복을 주셨는데 그때에는 퇴장하시면서 아무 말 없이 십자표로만 강복을 주셨습니다. 그 후 십자표와 함께 강복의 말을 삽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제들이 미사 후에 강복을 주게 된 것은 9세기부터 입니다. 이러한 강복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 축복을 주신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특별한 날에는 ‘장엄 축복’이나 ‘백성을 위한 기도’로 축복을 더욱 성대하게 할 수 있습니다.
㉡ 파견 : 미사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인사는 그분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지니고 파견됨을 명심케 합니다. 미사 시작 때에 천주 성삼의 이름으로 인사했듯이 파견 때에도 성삼의 이름으로 신자들을 축복한 후 복음을 선포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매일의 생활 속에서 미사 때에 받은 은혜와 결심을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출처 :가난한자임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유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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