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무에 그리 두려움이 많으신가?

문성식 2015. 7. 27. 15:51

 

무에 그리 두려움이 많으신가?

 

 

예전에 어느 일간지에 나이가 늙수그레한 경찰서장이 자신의 노모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다. 그 노모는 아흔 살이 가까운 나이이고, 아들인 경찰서장은 이제 오십 줄이 훌쩍 넘어선 나이이다. 그런데도 그 어머니는 그 아들이 출근할 때, 자동차들을 조심하며 교통신호를 잘 지키라는 투의 걱정이 담긴 쪽지를 삐뚤빼뚤하게 써서 건네주곤 했다고 한다.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아들이 항상 어린아이처럼 걱정이 되는 게 어머니의 마음인가보다. 그런 일이 또 있다. 그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고, 당부의 대상이 바로 그분의 자녀들인 우리들이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1:9)

 

위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입성하려던 참이었다. 그 가나안 땅에는 이미 기거하고 있던 많은 이민족들이 있었고, 그들과 피 터지는 정복전쟁이 예고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여호수아뿐 아니라, 당신을 포함해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당신이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여호수아와 비교해서 어떤 처지인가? 여호수아는 전쟁을 전혀 모르고 살았던 오합지졸인 이스라엘백성을 이끌고, 이미 전쟁에 능숙한 이민족들과 싸움을 앞두고 있다. 그러니까 그의 마음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상상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전쟁은 피할 길이 없다. 뒤 돌아 갈수도 없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없다. 위협을 하고 엄포를 놓는다고, 이미 조상대대로 살던 땅에서 살고 있는 이민족들이 자신들의 터전을 순순히 내줄 리가 만만하다. 그들은 여러 이민족들과 연합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단박에 없애버릴 수 있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인 여호수아에 비교해보면, 당신의 처지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다. 처자식들의 목숨을 빼앗길 위험도 없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그런 위태로운 상황도 아니다.

 

필자가 기도 코칭을 하면서, 많은 이들이 두려움에 직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기도훈련을 하게 되면 귀신들의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귀신들의 공격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장 많은 공격유형이 머릿속에 두려움과 공포, 걱정과 염려, 불안과 낙심 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넣어주는 계략이다. 물론 이러한 공격은 그냥 넣어주는 게 아니라, 가까운 가족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겨서 기도를 못하도록 공격하는 것이다.

 

기도훈련생들은 4:1 비율로 자매들이 많은데, 이 자매들은 결혼을 해서 남편과 자녀를 두고 있다. 그래서 이 기도훈련을 시작하면 남편들의 마음을 격앙시켜 기도를 못하게 하는 전략을 가장 많이 구사한다. 기도를 못하게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런 기도방식은 이단이라는 내용에서부터, 갖가지 구실을 내세워 마음을 격앙시킨다. 그래서 화를 내거나 싸움을 하게 만들고, 걱정과 두려움을 집어 넣어준다. 귀신들은 자녀들도 잘 이용하는데, 어린 자녀의 경우에는 아프게 해서 기도를 방해하거나, 기도만 하면 잠을 안자고 찡얼거리게 하여 기도를 방해하는 전략을 주로 쓴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인 공격은 남편을 통해 걱정과 두려움을 집어넣어주며 집요하게 기도를 못하게 하는 계략이다.

 

이런 처지에 빠지면, 많은 자매들은 남편들의 위압적인 말에 순응하고 기도를 중도에 포기하거나, 기도를 하고 있더라도 걱정과 염려에 휩싸여 집중력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이는 아내로서 남편의 말에 순응하는 게 성경적이라거나, 사랑으로 대해주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 남편의 말에 복종한다. 물론 그런 투의 말씀이 성경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하나님의 뜻하고 상관없는 경우에 한해서이지,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훈련에까지 적용되는 대상은 아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12:51~53)

 

그렇다면 예수님이 위의 말씀을 하실 리가 없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며 박해하는 사람들이, 먼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가까운 가족들이라는 말씀이다. 가족들은 사랑의 대상이며 섬겨주고 불쌍히 여겨야 하겠지만, 이들이 귀신들의 포로가 되어 신앙을 박해하며 기도를 방해한다면, 가족이 아니라 가족을 조종하는 귀신들과 담대하게 싸워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혹시라도 가정이 불화에 휩싸이거나 이혼을 당하며 자녀들에게 입을 불이익을 미리 걱정해서, 이들의 위협과 공갈에 백기를 들고 만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거나 기도를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가까운 가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라면 귀신들의 조종대상이다. 여기에는 직장상사도 해당되고, 시부모나 심지어는 친구나 지인까지 조종하여 집요하게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공격에 굴하지 말고 혹독하게 기도를 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냥 적당히 기도해서는 안 된다. 영적 싸움을 앞두고 있으면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연한 각오를 보여야, 하나님께서 이들과 대신 싸워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환경과 배우자의 위협이 두려워 기도훈련을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서 맞닥뜨리는 두려움은 죄다 귀신이 넣어주는 것이다. 이 두려움에 굴복하여 항복한다면 형벌을 받게 된다. 이 형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게 아니라, 귀신들의 포로가 되어 고통을 당하다가 생명과 영혼을 사냥당하고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에 던져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기도한다고 목숨을 빼앗는 정부도 없고, 복음을 전하면 재산을 몰수한다고 위협을 하는 이적단체들도 없다. 그런데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지레 짐작하고 두려워서 벌벌 떨고 계신가? 아니, 하나님이 당신편이 되어서 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무에 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시는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탄의 덫이다. 이 덫에 걸리는 자는 천국은 차치하고, 이 땅에서도 평안과 형통하게 살 것을 꿈도 꾸지 마시라. 당신이 바로 믿음이 없는 악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