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80.jpg 백제시대의 불상. 높이 13.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36년 부여 군수리 절터의 목조탑 심초석(心礎石) 위에서 출토된 납석제(蠟石製)의 여래좌상으로, 출토지가 확실할 뿐 아니라 초기 불상 양식을 보여 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불상이다.

높고 네모반듯한 대좌 위에 선정인(禪定印 : 두 손을 가지런히 배 앞에 놓은 손 모양)을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삼매(三昧)에 든 선사(禪師)의 모습을 대하는 듯하다.

어깨는 전혀 각이 지지 않고 둥글게 표현되었고, 무릎 위에 모아 두 손을 깍지 낀 선정인의 자세는 단아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여 준다. 통견(通肩)의 법의는 두껍게 표현되어 신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어깨를 감싸며 무릎 위로 흘러내린 옷주름은 네모반듯한 대좌를 거의 덮으며 흘러내려 상현좌(裳懸座)를 이루고 있다.

가슴의 법의는 U자형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어깨와 팔에는 간단하게 음각선(陰刻線)으로서 옷주름을 표현하였다. 가슴에는 비스듬히 승각기(僧脚岐)를 나타내었으며, 두 무릎 밑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좌우대칭으로 Ω형 주름을 이루며 부드럽게 묘사되었다.

무릎 부분에는 두 손을 감싼 옷주름이 U자형의 주름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대좌는 네모반듯한 대좌로서 아무런 장식이 없는 단순한 형태이며, 약 3분의 2가량이 옷자락으로 덮여 있다.

이 불상의 자세라든가 형태는 4, 5세기 중국 불상의 영향을 많이 나타내고 있으며, 뚝섬에서 출토된 여래좌상의 형태와도 흡사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얼굴의 모습, 신체의 표현 등에서는 백제 고유의 양식이 잘 드러나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완숙한 백제 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제작 연대는 6세기 중엽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