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129호 |
---|---|
소재지 | 경남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369 |
소재지 | 야로면 |
지정일 | 1963.01.21 |
수량/면적 | 2기 |
시대 | 통일신라 |
소유자 | 국유, 공유, 사유 |
관리자 | 합천군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월광사지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탑. 2기. 높이 5.5m.
월광사지에는 동서로 쌍탑이 있는데, 서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근년에 수리 복원한 것이다.
두 탑이 다같이 2층기단 위에 세워진 방형 삼층석탑으로, 신라 석탑의 전형양식에 따라 규모나 양식은 같지만, 조형상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어 양자가 동시작품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단부(基壇部)는 규모에 비하여 많은 석재를 사용하였는데, 갑석(甲石)만 하더라도 상하 각각 8매의 판석(板石)으로 세분되어 있는 것이 보기 드문 수법이다. 기단 면석(面石)에는 상하층 다같이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탱주(撑柱 : 받침기둥)를 모각(模刻)하였는데, 동탑은 1주씩이고 서탑은 2주씩이다.
갑석의 윗면은 경사가 비교적 큰 편이고, 중앙에는 2단의 굄이 있는데 그 단면이 하단은 두껍고 둥글며 상단은 얇고 모나게 조각하여 위층을 받치게 하였다. 상층기단의 갑석 처마 밑에는 두 탑 다같이 부연(副椽 :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을 조각하였는데, 동탑의 것은 매우 빈약하다.
탑신부는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을 각각 별개의 돌로 제작하였다. 옥신에는 우주가 낮게 모각되고 옥개석은 비교적 얇은 편인데, 밑에 5단의 받침과 윗면에 2단의 모난 굄을 조출하였다. 옥개석 처마는 수평이고 지붕의 경사도 완만하며, 네 귀에서 살짝 반전(反轉)하여 경쾌한 곡선을 이루었다.
상륜부(相輪部)는 동탑에 일반형의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이 남아 있으나 서탑은 완전히 없어졌다. 이 탑은 탑신에 비하여 기단부, 특히 하층기단이 지나치게 큰 느낌이 있으나 탑 전체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며, 결구와 돌다듬기가 정연한 수작(秀作)이라 할 것이다.
월광사지는 해인사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가야천에 한 지류가 합치는 삼각지에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0 합천군 불우조(佛宇條)에는 “월광사는 야로현 북쪽 5리에 있는데 대가야 태자 월광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月光寺在冶爐縣北五里世傳大伽倻太子月光所創).”라는 기록이 보일 뿐 다른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
월광태자는 생몰년 미상. 대가야의 마지막 왕. 아버지는 이뇌왕(異腦王)이고, 어머니는 신라의 이찬(伊飡) 비조부(比助夫)의 누이이다. 가야의 시조 어머니인 가야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의 10세손이라고 하니, 시조왕 이진아시(伊珍阿豉)의 9세손이다.
562년(진흥왕 23)에 이사부(異斯夫)와 사다함(斯多含)이 거느린 신라군에게 멸망하였다. 가야산 아래, 즉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북쪽 5리에 망국의 한을 품고 죽은 월광태자를 기념하는 월광사(月光寺)가 세워졌고, 그에 대한 애절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서
동
'한국의 탑,부도,석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물 제124호 경주남산리삼층석탑(慶州南山里三層石塔) (0) | 2015.07.24 |
---|---|
보물 제126호 무장사지삼층석탑(鍪藏寺址三層石塔) (0) | 2015.07.24 |
보물 제132호 화엄사동오층석탑(華嚴寺東五層石塔) (0) | 2015.07.24 |
보물 제133호 화엄사서오층석탑(華嚴寺西五層石塔) (0) | 2015.07.24 |
보물 제151호 연곡사삼층석탑(鷰谷寺三層石塔) (0) | 2015.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