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독교 여성들의 활동
2) 대책활동
그 당시 발족된 전쟁미망인 수산회(1956.7.10),전국 윤락여성 구호대책위원회(1958.12.11),대한전몰군경 미망인회(1963.8.12)들의 단체들이 모두 이들 여성들이 자립갱생하도록 돕는 사업을 하였다. 이를테면 전국 윤락여성 구호대책위원회는 대표가 유각경 씨였는데 윤락여성들에게 자기 생활책 타개,도의 및 신앙생활 지도를 하였고 윤락여성 상호간의 친목과 갱생을 목적으로 하였다. 경제적 자립을 시키기 위해서 수예,편물을 가르치고 직물공장을 설치하여 기술을 습득케 하였다.49)
이 단체들뿐 아니라 기독교 여성단체들도 이 문제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즉 절제회는 6.25의 피해자들인 전쟁 유가족들을 위한 희망원, 한미기술학원,학교를 못가고 구두닦이에 나선 불우한 아동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하에 애동원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특히 윤락가의 여성이나 소년원에서 형을 마치고 나온 무의무의탁한 13세 이상 20세의 소녀범죄자들을 수용 보호하는 애우관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이 애우관은 1947년에 시작하여 병든 영혼을 깨우치는 한편 육신의 독립된 생활을 하도록 기술교육을 시켜 취업의 길을 열어주었다.50)
또한 6.25 이후의 YWCA의 사업도 일반 구호사업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는데 연합회에선 지방의 인건비 보조,미국를 비롯한 외국의 상호 협조부를 통한 긴급사업비 조달 구호품 알선 등을 했다. 이중에서 특히 동래농예원 사업은 농촌부녀자와 동란으로 인한 무의무탁의 소녀들에게 농업,축산,원예,가내수공업 등의 기술교육을 시켜 좋은 실적을 보였다.51)
개체 교단에서도 이들을 위한 사업을 하였는데, 예를 들면 감리교 여선교회에서도 부산 "자매원"을 운영,927명의 윤락여성을 수용하고 이용,양재,타자 등을 훈련시켰으며 이들을 위하여 250평 되는 3층 건물을 신축하였다고 한다. 이 윤락여성 선도사업은 여선교회의 큰 사업 중의 하나로 각 지방과 지회에서도 이들을 위한 원호활동을 하였다.52)
그러나 윤락여성사업은 그들을 불쌍하고 타락한 영혼으로 보는 자세로 해서는 안될 것이다. 가부장제 문화권에 속하는 사회 구조는 여성들을 공적인 생산활동의 영역에서 제외시켜 왔고, 정당한 직업에 취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자신을 파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회구조적 시각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여성문제 해결은 영원히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여성들도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서 살 수 있도록 훈련받아야 하고 또한 그 훈련받은 것을 사용해서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마련되기 전에는 윤락여성들을 단속하고,한꺼번에 수용해서 기술을 가르친다. 해도 이 수용소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감옥으로 여겨지고,재수없으면 붙들려오는 곳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해방 후 기독교 여성지도자들이 주로 정권적인 차원의 정치적인 활동을 엘리트 중심으로 하였기 때문에 교회 여성들이 자체조직을 정비하고 사회의 기층을 이루는 대중 여성들의 고난이나 그들의 인권 등 그리스도께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문제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물론 이때 기독교 여성단체를 이끌어 나간 지도자들의 신학도 확고히 정립되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그들의 활동도 활발하지 못했고 교회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에 일반 여성단체들은 일제에서 해방되자 전문적인 단체들을 계속 만들어 여성들 각자가 몸담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밑받침을 해주었다. 즉 조선과학여성회,대한가정학회,여성문제연구회, 가정법률 상담소들이 생겨났다.53) 이러한 단체들이 비록 그들의 사업내용에 있어서는 성숙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여성문제를 전문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루려 했던 시도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에 비해 기독교 여성들의 조직 및 단체는 뒤떨어져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제하에서 "무조건 순종하고 인내하고 봉사하라"는 식민지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 세상 일에 마음을 두지 말고 저 세상,즉 영적인 일에만 전념하라"는 보수성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교회만이 구원의 방주라는 믿음을 고집하여 자기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에서 뒤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당시의 기독교 여성들의 활동은 자연 구제사업의 차원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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