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불화,탱화

영국사 寧國寺

문성식 2015. 7. 11. 21:16
소재지 : 영동군 양산면 
원문참조 및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사찰종합정보
답사여행길잡이(충북편) 
사진출처 : 20100206 촬영 

20100622_0104.jpg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천태산(天台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창건 및 연혁〕  

천태산은 지륵산(智勒山) 또는 천주산(天柱山)이라고도 한다.

절의 연혁과 관련해 가장 오래된 중요한 기록으로는 고려 명종10년(1180년)에 세워진 원각국사비이다. 이 비문에 따르면 영국사는 1175년(고려 명종5) 이전에 존재하였고, 원각국사의 하산처가 되면서 크게 번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의 삼존불 그러나 정확한 창건연혁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 다만 현재 영국사 대웅전 앞에 있는 3층석탑(보물 제533호)은 9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영국사는 신라 하대인 9세기 후반에는 창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당시 불교계의 흐름으로 보아 영국사는 신라 하대에 선종 계열의 사찰로 기능을 하였고, 고려시대에 천태종 사원으로 위상을 새로 정립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그후 고려 문종(1046~1083)의 네째 아들로서 승려가 되어 송나라에 가서 천태교학을 익힌 후 돌아 와 고려 천태종을 연 대국국사 의천이 이 절을 트게 중창하고 동,서,북암을 지었다. 이때 대각국사는 절을 국청사라 부르고 지륵산이던 산 이름을 천태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영국사 은행나무또한 전하는 바에 의하면 고려 고종 때에는 감역(監役) 안종필(安鍾弼)이 임금의 명을 받아 탑과 부도 및 금당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이후 공민왕에 의해 다시 영국사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홍건적들이 황해도를 건너서 개경까지 육박하자, 왕은 이 절로 피난하여 국태민안의 기도를 계속하는 한편, 이원(伊院) 마니산성에 근위병을 포진하여 놓았다. 이 절의 맞은편에는 팽이를 깎아놓은 듯한 뾰족한 봉우리가 있는데, 왕은 그 봉우리 위에 왕비를 기거하도록 해놓고 옥새를 맡겨두었다.

 

원각국사비 비각그 뒤 마니산성의 근위병들이 홍건적을 함정에 빠뜨려 무찌르고 개경을 수복하여 난을 평정하자, 공민왕은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평군민안(平君民安)이 되었으니 절 이름을 영국사로 바꾸라 하고 현판을 써준 뒤 떠났다 한다. 또, 일설에는 조선 태조 때 세사국사(洗師國師)가 산 이름을 지륵으로, 절 이름을 영국사로 하였다 하나 신빙성이 없다.

 

일설에는 태조 때 세사국사가 산 이름을 지륵으로, 절 이름을 영국사로 하였다고 하나 신빙성은 없다.조선 전기에 들어와서도 영국사는 계속해서 번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태종7년(1407년)에는 의정부에서 명찰로써 여러 고을의 자복사(資福寺)에 대신하기를 청하여 실행하도록 하였는데, 조계종에 옥천의 지륵사가 등장하고 있다.

 

20100622_0036.jpg지륵사는 영국사가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른 것으로 바로 영국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이후 "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지륵산과 영국사가 등장한다. 조선 초 서거정의 시문집인 "四佳集" 에도 영국사에 대해 읊은 시가 등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도 계속해서 향화가 이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의 내용으로 보아 사세는 상당히 쇠퇴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도 영국사는 "輿地圖書"를 비롯한 문헌에 지륵산 영국사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등장한다. 숙종 35년(1709년)에 영산회후불탱(보물 제1397호), 영조 37년(1761년)에 동종(銅鐘), 그리고 영조 48년(1772년)에 삼장보살탱이 조성된다. 이로 미루어 영국사는 조선후기에도 사세는 크지 않았으나 계속해서 명찰로서의 명맥을 유지해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영국사에는 조선시대에도 여러 학자들이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사실이 기록되고 있는데, 그것은 영국사가 깊은 산속에 위치한 조용한 사찰이라는 것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19세기에는 영국사사적문, 영국사중수기 등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영국사부도그 뒤 1893년(고종 30) 춘계(春溪) 등이 삼축당(三祝堂)을 중수하였으며, 1934년 영동군수 이해용(李海用) 등이 힘을 모아 사찰을 중수하였다. 1942년에 옛 절터에 있던 삼층석탑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고, 1979년에는 법산(法山)이 대웅전과 요사 등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당우 및 문화재〕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533호인 영국사삼층석탑을 비롯하여, 보물 제534호인 영국사원각국사비(寧國寺圓覺國師碑), 보물 제535호의 영국사망탑봉삼층석탑(寧國寺望塔峰三層石塔), 보물 제532호인 영국사부도 마당의 보리수나무등이 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천연기념물 제223호로 지정된 수령 약 700년의 은행나무가 있다. 또한, 절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높이 3.5m의 석성지(石城址)가 남아 있다.

 

12.gif 지정문화재 목록 및 해설

영국사부도[보물 532]

영국사삼층석탑[보물 533]

영국사원각국사비[보물 534]

영국사망탑봉삼층석탑[보물 535]

영동영국사의은행나무[천연기념물 223] 

영동영국사대웅전[충북 유형 61]

영동영국사석종형부도[충북 유형 184]

영동영국사원구형부도[충북 유형 185] 

 

〔가람배치〕

영국사에는 현재 누각과 대웅전 및 요사채가 있어 중심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맨 앞에는 최근에 지은 누각이 있다. 누각은 동향을 하고 있으며, 누각 아래를 통과해 오르면 대웅전 앞마당에 이르게 된다. 앞마당의 약간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는 신라 말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있다.

 

대웅전은 앞마당 뒤편 조금 높은 곳에 역시 동향을 하고 있다. 마당의 남쪽에는 ㄷ자형의 요사채가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앞쪽에 누각, 뒤편에 대웅전, 측면에 요사채가 있는 구성이다. 모두가 시대를 달리 하면서 조영된 것이며, 최근에 누각을 마당 앞쪽에 배치시킴으로서 중정형의 배치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반영하하였다.

 

영국사삼층석탑대웅전 뒤편으로는 산신각이 있다.한편 요사채와 산신각 뒤편으로는 여러 단의 축대가 있는데, 이곳에는 건물터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옛 영국사가 위치했던 곳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영국사의 중심 영역에서 남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는 원래 선방이 있던 곳이다. 계월암으로 최근에 들어와 건물을 신축하여 참선도량으로 삼고 있다.

 

분지 한 쪽의 영국사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영국사와 연관된 유적이 산재해 있다. 삼단폭포 옆에 솟은 봉우리는 속칭 망탑봉이라 부르며, 그 정상에 고려시대 중엽의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있다. 영국사 앞쪽 계곡 옆에는 수령이 1,000년 정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영국사 남쪽의 계곡, 즉 낭골을 따라 올라간 언덕에는 원각국사비를 비롯해 석종형과 원구형 부도 및 영국사부도가 있다.

 

〔사찰풍경〕

영국사(寧國寺)는 충청북도의 최남단, 충청남도와의 경계에 있는 천태산(해발714m)에 위치하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천태산1397번지이다. 원래 이곳은 옥천군 양산(陽山)면에 속해 있었으나 1906년 영동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는 군면 통폐합으로 양남일소면과 남이면 일부를 양산면으로 통합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천태산 남쪽에 동서로 금산군 제원과 영동군 가곡을 연결하는 68번 지방도가 있다. 금강을 따라 난 도로로 길 양쪽으로 펼쳐지는 경관이 매우 뛰어나다. 이 도로는 호탄천을 따라 난 501번 지방도와 만난다. 68번 지방도에서 501번 지방도로 꺾어 올라가다 보면 영국사와 천태산의 팻말이 보인다. 이곳에서 좌회천태산전을 하면 천태산 아래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주차장부터는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를 따라 천태산으로 오르게 된다.

 

계곡은 바위 절벽 사이를 흐르며, 진주폭포, 삼단폭포(옛명 용추폭포), 삼신바위 등이 있어 절경을 이룬다. 또한 바위 절벽에는 이곳을 찾았던 시인묵객들이 새겨놓은 글을 만나게 된다.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넓은 분지에 이르게 된다. 영국사는 이 분지의 서남쪽 동향한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천태산의 동쪽 사면 중턱에 해당한다. 분지의 가장자리로는 두 개의 계곡이 흐르다 만나서 삼단폭포를 이룬다. 이 물이 계곡을 이루고 그 계곡을 따라 영국사에 오르는 길이 있다.

 

망탑봉삼층석탑공민왕이 절에 머물 때 절 아래 마을 사람들은 왕이 다니기 편하도록 산위의 절까지 칡넝쿨로 역은 다리를 매달아 주었는데, 누교리라는 마을이름은 거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2.gif 교통안내

(1) 대중교통
영동읍내에서 영국사 입구를 거쳐 누교리/명덕리 방면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 여섯 차례 있다. 영국사 입구에서 하차 후 영국사까지 걸어가야 한다.
※ 버스시간표 : 영동역에서 06:20, 08:10, 11:00, 13:10, 17:00,19:00, 1일 6회, 30분 소요
(2)승용차

가. 경부고속도: 옥천I.C. → 4번 국도 영동, 무주 방면 → 이원 : 501번 지방도 → 누교리에서 우회전(표지판 활용) → 천태산 주차장 → 도보 약 20분(1km) → 영국사
나.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 금산I.C. → 68번 지방도 : 제원 방면 → 제원 → 68번 지방도 양산 방면 → 호탄교에서 좌회전 : 501번 지방도 → 누교리에서 좌회전(표지판 활용) → 천태산 주차장 → 도보 약 20분(1km) → 영국사

※ 승용차로는 영국사 만세루 바로 밑에까지 갈 수 있다. 누교리 대박식당(043-744-3033) 바로 옆으로 난 좁은 마을 길을 따라 누교저수지를 지나면 아랫도 가실 마을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영국사 팻말을 따라 좌회전, 산길을 계속 들어가면 영국사에 닿는다. 대박식당에서 영국사까지는 총 4.3km 거리이다.

 

12.gif 주변관광지

 

12.gif 입 장 료

성인 : 1000원 초등 : 300원

 

12.gif 주차시설

주차비 무료

 

12.gif 도움전화

영국사종무소 043) 743-8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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