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20_0117.jpg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누각.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건물.

 

본래 이 건물은 조선 초기의 재상이었던 황희(黃喜)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했는데, 1434년 이를 중건하였으며, 정인지(鄭麟趾)가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것에서 광한루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타 버렸고, 현재의 건물은 1638년(인조 16) 재건한 것이며, 장의국(張義國)이 누 앞에 연못을 파고 오작교를 가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향으로 지당(池塘)에 면하여 있는 이 건물은 막돌바른층쌓기의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사각의 돌기둥을 세워 마루 밑에 이르게 하고 나무기둥을 그 위에 세웠다.

 

바닥은 원래 귀틀을 짜고 점판을 깐 우물마루였을 것으로 추측되나 지금은 장마루로 되어 있다. 누 바닥 주위에는 계자난간을 둘렀고 기둥 사이에는 모두 분합문의 들창을 달아 사방이 모두 개방되게 하여 누로서의 기능에 맞게 하였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를 얹고, 기둥머리부터 쇠서〔牛舌〕하나를 내고, 위에 행공첨차를 놓아 외일출목을 이루고, 다시 위에 쇠서를 내어 전체적으로 이익공(二翼工)과 흡사한 주심포집으로 만들었으며, 창방과 주심도리 사이에는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밑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을 끼웠다.

 

가구(架構)는 7량(七樑)으로 대들보를 전면의 평주와 내진(內陣)의 평주 위에 걸고, 보 위에 동자루를 세워 종보를 받치며, 다시 그 위에 초각된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처마는 겹처마이고, 네 귀의 추녀에는 활주로 받쳤다.

이 누의 북쪽으로는 익랑식(翼廊式)으로 누에 오르는 층계를 달아내었는데 그 구조는 익공식으로 코끼리 등의 동물모양의 화반을 창방 위에 놓았다. 누의 동쪽으로 연달아 낸 익루(翼樓)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삼면에는 퇴를 둘러 개방하였고, 그 안쪽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따라서, 마루 밑에는 온돌방용 아궁이와 굴뚝이 사방으로 쌓은 벽체에 나 있다. 누 앞에는 연못·정자·다리 등으로 구성된 넓은 정원이 있으며, 이 정원 역시 조선시대 정원의 한 유구로 지목된다.

 

20090820_0118.jpg

 

20090820_0119.jpg

 

20090820_012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