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0020.JPG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묘(文廟).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건물.

 

1407년(태종 7) 지금의 장수읍 선창리에 건축되었으나, 그 뒤 1686년(숙종 12)에 현재 자리로 옮겨졌으며, 임진왜란의 병화를 모면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건축되어,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낮은 석축(石築) 기단 위에 세운 맞배집 건축인데, 규모는 별로 크지 않다. 좌우 측면과 뒷면의 벽을 가슴 높이까지를 돌담으로 쌓아 기둥의 아랫몸을 감추어 놓고 있다.

IMG_0023.JPG퇴간이 있는 앞면은 중앙에 띠살문의 분합문(分閤門)을 달았고, 좌우 간에는 같은 형식의 문짝 1개씩을, 그리고 그 옆에 정자창(井字窓)을 만들어 놓았으며, 나머지 부분에는 판벽(板壁)을 붙였다. 그러나 인방(引枋) 위로는 좁은 간격으로 벽훤(壁훤)을 세워 회벽(灰壁)을 쳤다.

기둥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는데, 곧고 비교적 가늘다. 공포(공包)는 기둥 위에만 배치되어 있는데, 그 짜임은 다포(多包)집 계통의 포작(包作)이며 이출목(二出目) 구성이다. 쇠서(牛舌)에는 복잡하게 연꽃이 새겨졌고, 윗부분에는 봉머리를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장식적인 요소는 조선조(朝鮮朝) 후기의 건축일수록 더욱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기둥 위로 공포와 공포 사이의 공간에는 화반(花盤)이 2개씩 배치되어 있다.

처마는 앞면이 겹처마이고 뒷면은 홑처마이며, 좌우의 박공(박공)머리에는 방풍판(防風板)이 달려 있다.

 

대성전은 정면 1칸은 툇간으로 개방하였고, 정면 3칸의 어간(御間 : 큰 방 한복판에 있는 간)에는 두짝 밖여닫이 띠살창호를, 양측 측간(側間)에는 외짝 띠살창호와 井자 살창호를 달았으며, 양측면과 뒷면은 벽체로 마감하고 내부는 통간(通間)으로 하였다.

특히, 헛첨차나 초제공에 놓이는 살미첨차의 끝은 섬약한 앙서〔仰舌〕로 되어 있고, 연꽃을 새김하였으며, 안쪽으로는 한판으로 붙어 연꽃을 조각한 것이 후기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출목은 외2출목(外二出目)으로 주간(柱間)에는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밑 장혀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을 두개씩 놓아 주심도리의 장혀[長舌]를 받치고 있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중도리까지는 연등천장[椽背天障]이나 두중도리 사이에는 우물천장을 가설하여, 종도리를 가리고 있다. 처마는 전면이 겹처마이고, 후면은 홑처마이며, 양측 박공에는 풍판(風板 :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널조각을 연이어 대는 물건)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