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이와 송이, 자웅을 겨루다
땅에서 나는 오만가지 음식감 중 단연 으뜸이 산삼인데 불로초라 한들 손에 쥔 사람 흔치 않으니 산과 들에 지천인 나물을 찾는 이유가 아닌가. 나물을 알고 나면 훈련된 심마니는 최고봉에 서려고 버섯을 찾아 나선다. 버섯을 이해하면 홍어와 사귀는 것과 진배없다.
푸대댁 길바닥에 깔겨놓은 소똥이 말라 비틀어진 모양이거나 삶에 찌든 할머니 얼굴에서 발견하는 검버섯이 능이다. 능이는 어찌나 독한지 생으로 먹으면 쓰러질 듯하다. 퇴비를 뒤집다가 한 점 튄 걸 뱉고 난 맛이랄까. 아니다. 밀걸레 잔존물이 혀에 닿은 느낌이다. 갓 아래쪽은 사슴 짧은 목털이라 하는 게 좋겠다. 소 천엽처럼 오돌토돌 돋았다. 잘 구워진 보리빵 빛깔이다. 이걸 쪽쪽 찢어 입에 대면 알싸하고 쌉싸름하여 차마 넘기고 싶지 않다. 늦가을 기운을 잔뜩 머금은 작은 가지 하나를 베물었을 때 오그라드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내 몸이 그토록 오염되었다는 반증일까. 혀가 쪼그라들고 마비증세가 시작된다.
능이는 가을을 타는 외로운 남자를 정신 바짝 들게 하는 묘미가 있으니 비만 그치면 참나무 밭을 오르게 한다. 서럽게 헤어져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잊지 못하는 첫사랑처럼 지긋지긋하도록 마음을 흔들어 놓는 마력은 무엇에 있는가. 웬만한 건 한번 먹으면 그것으로 끝이거늘 그 집 앞, 그 사람, 그 산을 만나면 어김없이 능이버섯으로 연결되니 참으로 이 거무튀튀한 못생긴 연인을 어찌 고이 보낼까. 아! 끝내 버섯 하나 몇 사람이서 나눠먹었더니 혓바닥이 붉다 못해 곧 피가 터져 나올 듯 선명하게 빨갛다. 껍질이 벗겨지지만 않았을 뿐 혀에 낀 백태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 기절초풍 신묘함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이 정도면 사람들이 '일 능이'라며 송이를 애써 깎아내리려는 이유를 조금은 알 듯싶다. 최근 그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일본에 수출하는 송이버섯에 육박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국산 송이 값이 이렇게 비싸진 데는 일본 사람들도 한몫 했다. 엄밀히 말하면 일제 침략 때문이다. 도둑질로 밤새는 줄 모르다가 패망에 이르자 그 맛을 잊지 못하여 전전긍긍하고 있는 건 송이 맛을 알고부터라 한다. 일본은 온난한 해양성기후라 조선 송이처럼 질 좋은 것이 나지도 않지만 향기가 풀풀 나는 버섯을 먹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생산량도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 일등이면 밖으로 나가도 마찬가지다. 그들 입이라고 맛없는 음식을 최고라고 먹을 일은 없잖은가. 솔솔 은근히 솔 향이 미각을 자극하고 씹는 맛까지 끝내주니 탐내지 않고 배길쏘냐. 러시아가 부동항을 얻고자 남하했듯 조선 소나무처럼 우직하게 크면서 검은 산을 불그스름 환하게 하는 소나무를 무던히도 베어갔던 일제는 송이마저 싹쓸이 하니, 작금 밑천이 바닥나고 입이 궁한 사람들 어디 송이나 한번 먹어나 보겠나. 애써 캐서도 떨이나 맛볼 뿐이니 외화벌이도 나름 아닌가.
생으로 먹자니 이것도 한계가 있다. 구워 먹자니 향이 다 날아갈 성 싶다. 고깃국에 넣자니 냄새 맡기 어려워질 것 같아 고민이다. 자잘하게 쪼개 죽을 쑬까, 듬성듬성 찢어 닭백숙에 넣을까. 고심 끝에 한두 송이는 쇠고기와 삼겹살을 구워 익은듯 만듯 먹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문 그대로다. 안주가 어찌나 좋던지 프라이팬에 고기 핏기만 빠지자 잠깐 올렸다가 꺼내서 입으로 직행을 하니 술이 취하지를 않는다. 삼겹살을 돌판에 정식으로 굽자 구수하고 잡 냄새가 나지 않는다. 미처 꺼내지 못한 건 바삭바삭 바스라진다. 밀버섯처럼 호박잎에 싸서 먹으니 꿀떡이 따로 있을까 싶다. 깨소금에 찍으면 머리까지 맑아진다. 흑백영화 두 주인공이 감미롭게 밀어(蜜語)를 나누는 장면이 연상된다. "아이구나 고기 타겠다. 후딱후딱 집어 먹읍시다. 어서 당신도 먹고 해강이 솔강이, 고모와 맛객도 드시구려. 발우 님 뭐하세요." "촌장님도 드세요. 자 술도 한잔 받으시고." "그래요. 이제 송이밥 냄새가 집안에 가득한 걸 보니 다 됐는가 봅니다."
며칠 전 민방위 훈련이었다. 늘 그렇듯 훈련에는 신문이라도 하나 사가지 않으면 불안하다. 평양에서 1985년 발행한 <사회주의생활문화백과> 제1권 '조선음식'을 한마당에서 펴낸 <자랑스런 민족음식-북한의 요리>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반쯤 졸다가 보니 여러 밥이 나오고 송이밥이 소개되어 있다. '그래! 이걸로 낙찰 봤어.' 닭살을 발라 다지고 송이를 반달모양으로 큼지막하게 썰어 참기름으로 볶았다. 쌀을 조금 불렸다가 약간 되직하게 안쳤다. 물은 밭 주인댁에서 받아온 지하수다. 철원 오대쌀에 햇밤 몇 개와 은행도 넣었다. 그예 삼겹살을 굽고 있는 사이 푹푹 소리를 내며 풀풀 향기를 퍼트려 삽시간에 집안 공기를 바꿔놓았다. 먹다말고 밥통으로 달려가 뚜껑을 열었다. 김이 확 퍼지며 얼굴을 덮쳤다. 진하다 못해 쓰다싶은 내음이 나를 감쌌다.
그냥 먹어도 간이 맞지만 콩나물과 무생채를 양념간장을 끼얹고 둘둘 얼버무려 비볐다. 입에 닿자 혀끝이 자지러진다. 더 이상 글로 자랑을 늘어놓은 건 예의가 아니지만 이왕여기까지 온 것 다 하기로 작정했다. 밤이 곁들여져 포근하고 달짝지근하며, 은행은 쌉쌀하다. 닭살까지 솔향기가 듬뿍 파고 들었다. 쫄깃한 살과 즙, 향내가 흘러나온다. 수분을 덜어낸 꼬들꼬들 마른 송이 낱알은 보드랍다. 침을 한도 끝도 없이 만들어내는 재주까지 가졌다.
그러고 보니 이제 판정을 내려야할 때다. 능이냐? 송이냐? 둘 다 빼어난 재주 맘껏 부리니 섣불리 판단하지 못하겠다. 능이는 능히 송이를 압도하고도 남으나 잔향이 덜하고 송이는, 한 송이는 그 명성 그대로 씹히는 맛이 탁월하고 잔잔히 혀끝에 맴도는 기예가 출중하다. 취향에 따라 아무 손이나 들어도 무방하리라. 뭐든 맛있는 가을이다. 실바람 타고 밥 짓는 소리가 맑고 구수하다. 버섯없는 이 계절을 두고 "찬란하였네"라고 말하지 말자. 비싼 돈을 들여서 밖으로 나가느니 제 입맛대로 집에서 먹는 버섯이 옹골지다. 고요하고 깊은 방이 한결 잔칫집 분위기가 나니 맛있다 맛없단 소릴랑 말고 버섯 향만 가득 머금으면 어떤가. 뇌리에 박혀 며칠 째 떠나지 못하는 자연이 내린 알짜배기 버섯이 오늘도 가을비를 솔솔 맞으며 잘도 퍼지겠네. 아니, 출연료 싼 싸리버섯, 느타리버섯, 양송이버섯, 새송이버섯, 미역귀버섯, 팽이버섯 가운데 한 가지만 먹은들 무에 그리 아쉬울까. 운지버섯과 상황버섯, 영지버섯도 차로 달여 마셔보자. 어서 서두르자꾸나. 이러다 풍요한 가을이 소리 소문 없이 지나갈까 걱정이다. 관전만 하기엔 이 주말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문득 싸리버섯 따오시던 어머니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건 왜일까?
체크 포인트 1. 능이가 송이보다 일찍 나서 진다. 능이는 9월 중순까지가 절정이고 송이는 9월 말에서 10월 초가 제철이다. 2. 능이는 가격이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1관(4kg)에 18만원까지 달라 하지만 곳에 따라 4, 5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송이는 굳이 비싸고 모양 좋은 걸 살 필요가 없다. 갓이 활짝 핀 것이라면 1kg에 4~5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 3. 위에 소개된 요리에 적용하기 위해 한두 개면 충분하니 나눠서 두고두고 먹을 일이다. 4. 버섯은 가능하면 물에 씻지 않고 손으로 잡티를 제거하고 칼로 슬슬 다듬는 게 좋다. 5. 되도록 열을 오래 가하지 말고 날로 먹든가 불에 올렸다가 바로 꺼내 먹는 게 효과를 볼 수 있다. 6. 송이와 싸리버섯은 소나무 밑에 가야하고 다른 버섯은 참나무(굴참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가 꽉 들어찬 깊은 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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