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9.jpg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청평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건물.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 승현선사가 세워 백암선원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뒤 몇 번에 걸쳐 고치고 절을 넓혔는데 청평사로 이름을 바꾼 것은 조선 명종 5년(1550) 보우선사가 이곳에 와 다시 고쳐 세운 뒤부터이다.

회전문은 조선(朝鮮) 명종(明宗)(1545∼1567, 재위) 때 보우선사(普雨禪師)에 의하여 중건(重建)되었으며 청평사(淸平寺)의 중문(中門)에 해당된다.

이 문은 중앙의 한칸을 넓게 잡아 통로(通路)로 하고 좌우 협칸(夾間)에는 천왕(天王) 등의 존상(尊像)을 안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공포(공包)의 형식은 주심포계(柱心包系)에서 익공계(翼工系)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내부가구(內部架構)는 중앙(中央) 좌우(左右)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 대들보를 받치게 하였고, 그 상부에는 홍살(紅箭)을 가로로 배열하여 문으로서의 표시를 하고 있다. 건물의 성격에 알맞게 간소하게 꾸며진 맞배집이다. 이 문 좌우에는 행각(行閣)이 연결되었으나 극락전(極樂殿) 등과 함께 6·25동란(動亂) 때 소실(燒失)되었다.


16세기 중엽 건축 양식 변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건축물이다. 이 절의 서쪽 언덕에는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극락전이 있었는데 고려시대 건축의 수법을 보여주던 중요한 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