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0.jpg 관룡사는 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절의 역사에 관한 뚜렷한 기록은 없다. 임진왜란 때 약사전만 남기고 다른 건물들은 모두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약사전은 조선 전기의 건물로 추정하며, 건물 안에는 중생의 병을 고쳐 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1칸·옆면 1칸으로 매우 작은 불당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간결한 형태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이와 비슷한 구성을 가진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송광사 국사전(국보 제56호)과 좋은 비교가 된다. 옆면 지붕이 크기에 비해 길게 뻗어 나왔는데도 무게와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건물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동쪽측면 몇 안되는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로, 작은 규모에도 짜임새가 훌륭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기둥머리를 괴어나온 창방(昌枋) 끝을 그대로 첨차로 만들어 공포를 짜올라간 솜씨는 주심포계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독특한 수법의 하나이다.

 

좌우측면의 박공머리에 나와 있는 첨차들은 모두가 전형적인 주심포집의 첨차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 첨차들은 그 반대쪽인 안쪽에서는 다포계 건물에서와 같은 원호곡선(圓弧曲線)의 첨차로 변하여 있으며,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친 행공첨차도 또한 그와 같은 첨차임을 알 수 있다.

 

내부가구 옥개가구에 있어서는 측면의 들보 위에 우미량을 이중으로 배치하여 중도리와 마루도리를 받치게 하였는데, 이 우미량은 주심포계 건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부재이다.

다른 도리들은 모두 굴도리를 사용하였으나, 중도리만은 납도리로 되어 있다. 지붕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고 오직 기와 끝에 암수막새만이 설치되어 있다.

 

이 건물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집체와 지붕의 구성비례를 들 수 있는데, 기둥 사이 간격에 비하여 지붕의 폭이 2배 가까이 될 정도로 커서 소규모의 건물인데도 불구하고 그 모습은 매우 균형잡힌 안정감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