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6.jpg 경주 시가지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구릉에 있으며, 북쪽에 인접하여 민애왕릉(閔哀王陵)이 위치하여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서 지름 14m, 높이 3.4m이다. 봉분만 있을 뿐 다른 시설물은 보이지 않는다.

신라 제43대 희강왕(僖康王)(재위(在位) 836-838)은 본명이 김제융(金悌隆)이고, 이찬 헌정(憲貞)(초노(草奴))의 아들이자 원성왕(元聖王)의 손자이며, 왕비는 문목부인(文穆夫人)이다. 재위기간이 3년밖에 되지 않아 별다른 치적은 보이지 않는다. 희강왕(僖康王)은 그의 당숙과의 왕위쟁탈전 끝에 김명(金明)의 추대로 즉위하였으나 그를 추대했던 김명(金明)이 난(亂)을 일으키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838년 1월에 왕(王)이 죽자 시호(諡號)를 희강(僖康)이라 하고, 소산(蘇山)에 장사지냈다고 하는데 소산(蘇山)의 위치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