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보물 제38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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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쌍계사 |
소재지 | |
지정일 | 1963.01.21 |
수량/면적 | 1기 |
시대 | 통일신라 |
소유자 | 쌍계사 |
관리자 | 쌍계사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부도. 높이 2.05m.
쌍계사는 성덕왕 23년(723)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한 절이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 “육조혜능(六祖慧能)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쌓인 계곡 위의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었다. 귀국 후 눈 위에 꽃이 피는 땅을 두루 찾아다녔으나 찾지 못하고 지리산에 이르렀다. 그 때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안내하여 지금의 쌍계사 금당 자리에 도착하였다. 그 곳이 꿈에서 계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옥천사라는 절을 세웠는데 그후 정강왕 때 쌍계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버린 것을 벽암(碧巖)이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 북쪽 탑봉(塔峰) 산봉우리의 능선을 7m 방형으로 평평하게 닦아 2단의 석단을 만들어 그 중앙에 부도를 건립하였다. 상·중·하대로 형성된 기단 위에 탑신부와 상륜부를 놓은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의 부도이다.
지대(地臺)는 윗면만을 다듬어 옆면은 거칠게 남아 있고, 8각 하대석의 옆면도 다듬기만 하고 안상(眼象) 등 아무런 조각이 없다. 8각의 모서리에 1판씩 모두 8판의 복엽연화문을 복련(覆蓮)으로 조각한 연화대를 이루고 있다. 복련대 윗면에는 높직한 굄대를 마련하여 중대를 받게 하였다.
중대석은 8면에 안상이 1구씩 오목새김되어 있을 뿐 아무런 조식(彫飾)이 없으나, 이 안상의 형태가 고식(古式)으로 괄호의 막음선이 아주 크게 내려져 주목을 끄는데, 안상의 높이는 거의 중대석의 높이를 따르고 있다.
상대석은 아랫면에 2단씩 각형받침을 조각하고 앙련대를 이루었으며, 8각의 모서리에 1판씩 모두 8판의 단엽연화문을 앙련으로 조각하여 하대석의 복련과 마주하게 하였다. 탑신 굄석은 높직한 8각대로 별도의 1석(石)으로 조성하여 끼워 놓았다.
이 8각 굄대석의 윗면에는 장식이 없고 측면에만 8면에 조식이 있는데 권운문(卷雲文)을 여러 줄씩 굵게 조각하여 빈틈없이 가득히 채웠다. 이 굄대 위에 8각의 탑신을 받치고 있는데 탑신에는 우주 등 아무런 조식이 없다.
옥개석은 8각으로 아랫면에 널찍한 받침이 있어 연목(椽木 : 서까래)을 뜻한 듯하고 탑신 바로 위에 놓이는 하저부(下底部)에는 낮은 각형 받침이 조각되어 있다. 추녀는 직선형으로 각 우각의 전각부에는 입상형(立狀形)의 귀꽃무늬가 조각되었다.
옥개석 윗면에는 굵직한 우동형 8줄이 옥개석을 따라 뻗어내렸는데, 낙수면이 평박하여 추녀끝의 귀꽃과 잘 조화되고 있다. 옥개석 정상부에는 굵은 운문(雲文)이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는 옥개석을 축소한 것 같은 동일한 양식의 보개가 있고 그 정상에 높직한 간주(竿柱)가 표시되었다.
맨 위에는 커다란 보주를 장식하였는데, 이러한 상륜부는 모두 한 장의 돌로써 장식하였다. 이 부도를 이곳 진감선사(眞鑑禪師)의 묘탑인 ‘대공탑(大空塔)’으로 보고 건조연대를 신라 헌강왕 6∼11년(880∼885)으로 추정하나 하한인 885년대로 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부도는 전체적으로 그다지 장식적인 기교는 없고 각 부재의 비례도 균형을 잃고 있으며 조각도 형식화의 과정이 뚜렷하여 시대가 내려오는 것으로,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부도의 하나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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