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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특집 산정 야영 산행 르포 | 대구 달성·청도 비슬산] 흰수염고래에 올라탄 산꾼들을 흥분케 한 낙동강 낙조

문성식 2014. 11. 23. 17:44
[시즌 특집 산정 야영 산행 르포 | 대구 달성·청도 비슬산] 흰수염고래에 올라탄 산꾼들을 흥분케 한 낙동강 낙조
유가사~대견봉~관기봉~비슬산자연휴양림 1박 2일 야영산행

	산 아래서는 해가 지고, 산정에서는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 비슬산 대견봉 정상 야영.
▲ 산 아래서는 해가 지고, 산정에서는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 비슬산 대견봉 정상 야영.

늦가을 산은 해가 기우는 속도보다 기온이 더 빨리 떨어졌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하늘에선 따스한 햇살이 쏟아졌다. 이마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등은 땀에 촉촉이 젖어들었다. 오후 4시를 넘어서자 상황이 바뀌었다. 찬바람 몰아치는 늦가을로 변했고, 5시를 넘어서자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다. 우모 패딩에 재킷을 덧입거나 아예 두툼한 우모복을 입은 사람도 있는데 갑자기 찾아온 한기는 온몸을 떨리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저녁놀은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눈부시도록 빛나던 한낮의 해는 지평선으로 내려앉으면서 천하를 붉게 물들었다. 달성벌 너머 멀리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릉은 옅은 분홍빛 영혼이 깃든 듯하고, 낙동강은 은빛으로 반짝이며 살아 꿈틀거렸다.

“와, 여긴 아직 한창이네. 너무 곱지 않아?”

11월 중순 가을 막바지, 산은 누런빛으로 칙칙하려니 했다. 아니었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비슬산(琵瑟山·1,082.8m)은 찬란했다. 찬란하게 버티려고 몸부림쳤다. 능선은 가을 햇살을 걷어차며 빛났고, 골짜기는 갈 햇살을 집어삼켜 더욱 뚜렷했다. 이래서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형상이란 의미의 이름을 얻었는가 싶었다.

곱디고운 가을 풍경화 속의
선경 같은 산세



	동화사 말사인 유가사 일주문.
▲ 동화사 말사인 유가사 일주문.
오후 3시경 비슬산은 고운 가을 풍경화였다. 산의 중심에 자리한 유가사(瑜伽寺) 일원은 알록달록한 가을빛에 파란 봄기운이 덧칠해져 싱그럽고도 더욱 고왔다. 일주문을 지나 유가사 절집으로 이어지는 길은 화사한 가을빛에 황홀했다. 그 가을빛은 60을 넘어선 일행 네 사람에게도 맑은 영혼을 불어넣어, 나이답지 않게 “너무 곱지 않아”, “너무 아름답지 않아” 사뭇 여성스런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도성암 가는 잿빛 콘크리트길도 가을 수채화 속 길처럼 꿈결처럼 느껴지고, 단풍잎 한 잎, 은행 잎 한 잎 발에 스칠 때마다 예서 멈춰서라며 발목을 붙잡는다. 울창한 가을 단풍 빛에 문학 소년이라도 된 양 가을 시를 읊조리며 한 발 한 발 오르노라니 된비알 길은 허릿길로 변하고 도성암 경내로 들어선다. 대웅전 앞 삼층석탑은 외롭되 금빛 가을 깊이 들어앉아 아름답다. 산 아래가 한눈에 들어온다. 달성에서 남쪽 창녕으로 이어지는 벌판은 넓디넓고, 낙동강은 넓은 벌을 가르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비슬산 정상 대견봉(大見峰)에서 월광봉(月光峰·1,003m)과 조화봉(照華峰·1,058m)을 거쳐 관기봉(觀機峰·992.1m)으로 이어지는 비슬지맥은 기운차게 뻗으며 눈길을 휘어잡았다.

비슬산 중턱에 위치한 도성암은 도성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고찰이다. 법당 맞은편에 자라는 느티나무 옆에 세워진 안내판의 글에 의하면 비슬산에는 도성(道成)과 관기(觀機) 두 스님이 숨어 살았다. 관기의 암자는 남쪽에 있고, 도성의 수도처는 북쪽 도통바위였다. 그 거리는 대략 십리, 관기가 도성의 안부가 궁금할 때에는 나무와 풀들이 북쪽을 향해 눕고 도성이 관기를 보고자 하면 남쪽을 향해 누워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저기 보이는 봉이 관기봉이에요. 두 스님 모두 목소리가 커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관기스님!’, ‘도성스님!’ 하면서 지냈대요. 내일 저 봉까지 능선을 따른 다음 휴양림으로 내려가야 해요.”

대구에서 합류한 차재우 전 대구시산악연맹 회장은 비슬산 기슭 주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얘기와 함께 내일 산행 코스를 설명해 주었다.

추색 완연한 도성암의 보살들은 겨울 준비에 산객들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래도 배추 씻고 무 깎고 파 다듬는 그 모습이 보기 좋았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조금 있으면 저녁 공양할 때이니 밥 먹고 가시라”는 말이 빈말일지라도 고마웠다.


	1 덩그러니 터만 남아 있는 대견사지를 오랜 세월 지켜온 대견사 삼층석탑. 2 추색에 젖어든 도성암. 경상북도 3대 수도도량으로 이름 높다.
▲ 1 덩그러니 터만 남아 있는 대견사지를 오랜 세월 지켜온 대견사 삼층석탑. 2 추색에 젖어든 도성암. 경상북도 3대 수도도량으로 이름 높다.
낙조에 감탄하고 야경에 취한
대견봉 정상 야영

암자를 벗어나자 곧바로 된비알 능선길. 소나무 숲길로 들어서자 금빛에서 잿빛으로 바뀐다. 그래도 좋다. 화사한 가을빛에 눈길을 빼앗겼다면 제 멋대로 자라 자연미 넘치고 한데 어우러져 군무 추는 소나무 숲길은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갈바람에 발걸음 가벼워져 쉬이 산을 오른다. 간간이 눈에 띄는 소나무 갈비 속 단풍잎은 봄날 손가락을 꼭 쥔 채 태어나 서서히 손바닥을 드러냈는데 이제는 가을 보석을 감추기라도 하려는지 꼭 쥔 채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녀 산객의 마음을 애처롭게 한다.

도통바위에서 오후 햇살에 반짝이는 달성벌과 그 벌을 가로지르는 낙동강을 한동안 내려다보다 찬바람에 놀라 급히 대견봉으로 향한다. 급경사 능선길을 따라 초곡산성쉼터(2.9km) 갈림목을 지나자 숲이 벗겨지고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대구시내 앞산으로 비슬지맥은 물론 청도 일원의 산봉과 대견봉 정상이 한일(一)자로 수평선을 이룬 채 바라보인다.

찬바람에 제 빛깔 빼앗긴 억새를 헤치며 비슬산 정상 대견봉 꼭대기에 올라선다. 대견봉은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라는 흰수염고래의 등이었다. 북으로 깔리듯 기듯 하면서 뻗어나가는 비슬지맥을 비롯한 능선과 산봉들은 어미 고래를 따르는 새끼 고래 같은 모습이요 북으로 앞산을 향해 뻗어나가며 대구시가지를 감싸 안는 형상이다.

찬바람이 분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망바위에 자리를 펴고 둘러앉았으나 춥다. 그래도 낙조를 보겠다는 마음에 꾹 참고 자리를 지킨다. 늦가을 해가 땅바닥으로 바짝 내려앉을 즈음 산정의 누런 억새는 노을빛을 빨아들인 뒤 황금빛으로 빛나며 일렁인다. 저녁노을은 산릉을 묵직하고 근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고, S자를 그리며 흘러내리는 낙동강은 해가 땅바닥에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더욱 빛나고 화려해진다.


	1 대견봉 어깻죽지로 오르고 있다.  2 먹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이는 대견봉 억새밭.
▲ 1 대견봉 어깻죽지로 오르고 있다. 2 먹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이는 대견봉 억새밭.
그 사이 해는 평범한 주황색에서 점점 붉어지면서 영혼을 집어넣기라도 하려는 듯 산릉을 붉게 물들이고 땅바닥에 맞닿을 즈음 용광로 속에서 끓는 쇳물처럼 붉디붉은 빛으로 변하고 점점 동그래지더니 서산 너머로 꼴딱 넘어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쪽 달성시내는 물론 북쪽 대구시내 일원은 밤하늘의 별처럼 야경을 멋들어지게 그려낸다.

저녁놀에 취해 있다가 붉은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온이 뚝 떨어진다. 그러나 어휴 추워 소리를 내면서도 배병달 선배가 집에서 만들어온 청국장찌개를 한 숟가락씩 떠먹는 사이 몸이 훈훈해지고 지난 한 해 얘기로 꽃피운다. 고교 교사로 평생을 재직하다가 퇴직한 차재우 회장은 엄홍길휴먼재단을 통해 네팔 히말라야의 오지마을에 학교 세우는 일에 대해 자랑스레 얘기하고, 림프암 때문에 5년 가까이 고생하고 있는 배병달 선배는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최고”라며 일행에게 건강을 당부한다. 이에 황원선 선배는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노는 것만큼 건강에 좋은 게 없다”며 일행에게 웃음을 준다.

발아래 달성벌과 북쪽 멀리 반짝이는 대구시내 야경에 흠뻑 빠져, 밤하늘에 어여삐 뜬 눈썹 같은 초승달에 반해, 한 순배 한 순배 도는 소주에 취해 일행은 마음 깊이 감춰놓았던 얘기를 꺼내놓으며 두런대는 사이 밤은 점점 깊어갔다. 눈동자가 별빛에 반짝이고 초승달이 젖어들면서 모두 꿈 많고 낭만 넘치는 젊은 날로 돌아가고 ‘가을 시인’으로 변신한다.


	1 가을 수채화처럼 화사하게 빛나는 비슬산 전경. 신선의 거문고 소리가 흐를 듯한 분위기다.  2 비슬산 정상 대견봉.
▲ 1 가을 수채화처럼 화사하게 빛나는 비슬산 전경. 신선의 거문고 소리가 흐를 듯한 분위기다. 2 비슬산 정상 대견봉.
참꽃 군락지 일원에
멋진 망대 여러 곳 조성

바람이 몰아친다. 텐트가 들썩이고 심할 때는 무너질 듯 위태롭다. 산 위의 별도 숨죽이고 도시의 불빛은 차갑게 식어 버렸다. 밤사이 그렇게 비슬산에는 겨울이 내려오고 있었다.

새벽 6시20분, 엊저녁 서쪽 산릉이 그랬듯이 동쪽 산릉이 붉은 띠를 두르고 있다. 아침해는 당장이라도 솟구쳐 오를 분위기로 땅과 먹장구름 사이를 밝혔다. 정작 해가 떠오르기까지는 긴 침묵의 시간과 대기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 모두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분위기에 숨죽인 채 서쪽 붉은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해가 떠올랐다. 산릉에 부어놓은 쇳물을 끌어올리면서 동그랗게 떠오르더니 어느 순간 대지는 환하게 밝아왔다. 바람은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요동치듯 불어댔다. 억새는 모질게 불어대는 바람을 밤새 맞았으나 물러서지 않고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일 또 강풍이 불어대도 흔들리지 않겠다며. 그러나 아침해를 맞이한 산객은 제 자리에 그냥 있을 수 없다. 새로운 산봉, 새 산릉을 찾아 떠나야 하는 게 산객의 운명이자 욕심인 것이다.

이른 아침, 청도와 창녕의 수많은 산릉은 산그리메를 수묵화처럼 그려놓았고  우리는 수묵화 속의 산객이 되어 관기봉으로 향한다. 널찍한 헬기장을 지나고 헐티재 갈림목(헐티재 3.8km, 대견사지 3.6km)을 지나자 소나무 숲이 우거지면서 내리막길로 이어지다가 용천사·유가사 갈림목(용천사 2.5km, 유가사 2.6km)을 지나자 다시 가팔라져 월광봉 위에 올라선다.

“역시 우리나라 산이 좋아요. 이런 호사가 어디 있어요. 화려한 가을빛에 취하고 웅장하면서도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면까지 갖추고 있으니 말이에요. 능선의 선도 좀 예뻐요! 산정에서 여유롭게 즐기면서 낙조와 아침해를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우리 산에서나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에요. 히말라야 설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얼마 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다녀온 김석우(봔트클럽)씨는 예상했던 것보다 아름다운 비슬산 풍광에 감탄해 수시로 “멋있어, 정말 멋있어” 하며 감탄사를 터뜨린다.


	대견사지 북쪽 능선 너머의 참꽃 군락지. 탐승객들을 위해 데크를 설치해놓았다.
▲ 대견사지 북쪽 능선 너머의 참꽃 군락지. 탐승객들을 위해 데크를 설치해놓았다.
월광봉을 내려서자 산길은 또다시 두 가닥으로 나뉜다. 조화봉으로 가려면 계속 능선 길을 따라야 하지만 10여 년 전 취재할 때 보이지 않았던 참꽃 탐승로를 확인하고자 오른쪽으로 빠지는 데크 길로 들어선다.

참꽃나무 군락은 빠알간 절정기를 연상키 어려울 만큼 을씨년스런 분위기지만 제2전망대에 이어 팔각정 전망대를 거쳐 기암 능선으로 이어지는 참꽃 순례길은 감탄스러울 만큼 멋진 조망을 보여 준다. 널찍한 원형 데크 위에 평상과 통나무의자가 여럿 놓인 제2 조망대에서는 비슬산의 웅장한 풍광이 일행을 압도했고, 팔각정 전망대에 올라서자 비슬산 뒤로 멀리 대구시가지를 감싸며 팔공산에서 환성산을 거쳐 초계산으로 이어지는 산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길을 오른쪽으로 더 돌리면 영남알프스 최고봉 가지산(1,241m)에서 운문산(1,195m)을 거쳐 억산(944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또한 웅장하게 바라보인다.

조망뿐인가, 팔각정에서 조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기암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연인이 입을 맞추는 듯하다 하여 ‘뽀뽀바위’, 의가 두터운 형제를 보는 듯하다는 형제바위 등, 기암들이 능선에 줄지어 지나가는 산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아니! 절이 들어서잖아?”

예전 삼층석탑 한 기만이 천년고찰 터를 외로이 지키고 있던 대견사(大見寺) 터는 한창 중창 중이었다. 대견사는 9세기 통일신라 흥덕왕 때 일연 스님이 주지로 부임해 22년간 머물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구상한 유서 깊은 고찰로, 중창을 거듭하다가 20세기 초 폐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내년 3월 1일 달성군 개청 100주년에 맞춰 완공을 목표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과 선당(禪堂), 산신당, 요사채 모두 4동이 지어지고 있다.


	1 관기봉 정상. 멀리 대견봉 일원이 바라보인다. 2 비슬산강우레이더관측소 가는 길. 3 한창 중창 공사 중인 대견사터. 내년 3월 1일 완공될 예정이다.
▲ 1 관기봉 정상. 멀리 대견봉 일원이 바라보인다. 2 비슬산강우레이더관측소 가는 길. 3 한창 중창 공사 중인 대견사터. 내년 3월 1일 완공될 예정이다.
지난 9월 14일 상량식을 가진 대견사는 당나라 문종(文宗)의 얘기가 전해지는 고찰이다. 문종이 절을 지을 곳을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낯을 씻으려고 떠놓은 대야의 물에 아주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다. 이곳이 절을 지을 곳이라 생각한 문종은 신하를 파견해 찾게 하였다. 결국, 중국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자 신라로 사신을 보내어 찾아낸 곳이 이 절터라는 것이다.

겨울 오는 산정 내려서자
화사한 가을날이 반겨줘

대견사를 지나 다시 능선길로 올라서자 산허리를 가로지른 콘크리트길이 나타난다. 비슬산강우레이더관측소로 이어지는 콘크리트길이다.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에서 2009년 9월 준공한 이후 반경 100km 이내의 강우량을 실시간 관측하고 있는 곳이다.

“이거 길이 전혀 없잖아? 그냥 임도 따라 걷는 게 어때?”

조화봉 정상에 올라서자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아침나절 손을 시리게 하던 날씨는 다시 봄날처럼 따스해진다. 그러나 예까지 이어지는 반듯한 산길이 사라지고 말았다. 해맞이제단이 위치한 조화봉 정상을 지나자 능선은 발자국이 희미해지고, 능선 오른쪽 바로 아래로 이어지는 콘크리트길이 수시로 유혹한다. 그래도 산꾼답게 등날을 좇아 나아가지만 나뭇가지가 옷을 잡아당기고 거친 바위가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임도는 유혹해 댄다.

그래도 간혹 청도 쪽 조망이 터지고 따스한 햇살에 절정의 가을빛을 지닌 산릉이 산객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 안고, 산 아래 저수지는 가을빛을 듬뿍 담은 채 가을을 구가하고 있다.


	조화봉과 988.5m봉 사이의 능선.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길이 거의 없는 상태다.
▲ 조화봉과 988.5m봉 사이의 능선.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길이 거의 없는 상태다.
가을 산은 방향 따라 계절이 다르다. 무명봉을 기준 삼아 북쪽 능선을 따를 때는 을씨년스런 초겨울. 그러다가 무명봉이나 턱을 넘어 남사면으로 접어들면 구절초 하얀꽃, 쑥부쟁이 연둣빛 꽃이 ‘여긴 아직 한창 가을’이라며 방긋 웃는다.

대구와 경남 청도·창녕 3개 시군의 경계지점에 이어 금수암(0.5km, 휴양림 연목 2.5km) 갈림목을 지나 험상궂은 바위절벽을 올라서자 관기봉 정상. 이제 비슬산 대견봉에서 조화봉 거쳐 988.7m봉으로 이어지는 산릉은 꼭대기부터 발치까지 온몸을 다 드러내놓고 가을에서 벗어나 겨울을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으로는 청도와 밀양 너머 부산 일원의 산릉도 바라보였다.

“여기가 관기도사가 머물렀다는 관기봉이야? 그럼 불러봐야지. 도성스님~, 저희 그만 내려갑니다.”

엊저녁 식사를 마친 뒤 텐트 주변을 거닐다가 돌부리에 채여 엄지발톱이 시커멓게 죽은 배병달 선배는 잡목숲길에 곤욕을 치른 탓인지 어서 하산했으면 하는 눈치다. 도성암 안내판에 적힌 도성대사와 관기대사의 얘기가 기억나자 도성대사를 힘차게 부른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선다.

휴양림 가는 길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능선 길. 된비알 길에 깔린 낙엽에 미끄러지는데도 좋단다. 한 사람 넘어져 쿵 소리 내면 나머지 사람들 껄껄 웃다가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이 또 한 사람 쿵 엉덩방아 찧는다.

소나무 숲 능선을 벗어나 비슬산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서자 찬란한 가을빛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1 가을빛이 고운 비슬산자연휴양림 산책로. 2 관기봉에서 휴양림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3 988.5m봉과 933m봉 사이의 3개 시군 경계지점.
▲ 1 가을빛이 고운 비슬산자연휴양림 산책로. 2 관기봉에서 휴양림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3 988.5m봉과 933m봉 사이의 3개 시군 경계지점.
산행 길잡이

대견봉 산정 캠핑 시 텐트 지지할 끈 넉넉히 준비해야
참꽃 전망대 야영 시 대견사지까지 차량으로 접근 가능

비슬산 정상은 대구 경북을 대표한다고 할 만큼 조망이 좋은 곳이다. 거리도 짧은 편이다. 차량 접근이 가능한 도성암에서 출발할 경우 한 시간이면 산정에 올라설 수 있다. 야영 가능한 곳은 정상 부근에 여러 곳 있다. 소형 텐트일수록 선택의 폭이 넓다. 많은 인원이 야영할 경우 정상 부근의 널찍한 헬기장을 이용하도록 한다. 정상 서쪽 바위지대에서는 비박도 가능하다.

단, 사방이 바람에 노출된 지역인 만큼 강풍에 대비해 튼튼한 텐트와 텐트를 지지할 끈을 넉넉히 준비해야 하며, 식수는 생수나 도성암 샘물을 짊어지고 올라야 한다.

유가사 입구에서 도성암을 거쳐 대견봉 정상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리며, 유가사 주차장에서 도성암까지 2km 구간은 콘크리트길이 잘 닦여 있어 승용차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식수는 도성암에서 구할 수 있다. 차량을 유가사 주차장에 세워놓고 정상 야영을 계획할 경우 참꽃군락지에서 수성골을 거쳐 유가사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게 바람직하다.

참꽃군락지 일원의 조망데크도 이용할 만하다. 제1, 제2 조망대와 팔각정이 적당하며, 비슬산자연휴양림이나 유가사에서 수성골을 경유해 접근할 수 있다. 비슬산자연휴양림에서 대견사지 직전 공터까지는 차량통행이 가능하며, 공터에서 대견사지를 거쳐 조망데크나 전망데크까지는 20분 안팎 거리다.

취재팀이 답사한 유가사~도성암~대견봉~관기봉~휴양림 코스는 약 15km 거리로 당일 산행도 충분하다. 단, 조화봉~3개 시도분기점까지는 산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아 능선 서쪽 임도를 따르다가 임도가 급격히 고도를 낮추는 지점에서 능선으로 올라붙은 다음 금수암 갈림목을 거쳐 관기봉에 올라서는 게 바람직하다. 관기봉 정상은 암봉으로 휴양림으로 내려서려면 암봉을 왼쪽에 끼고 돌다가 갈림목에서 오른쪽 능선길을 따라야 한다. 줄곧 내리막길로 이어지던 능선이 야트막한 무명봉으로 올라붙기 전 오른쪽 희미한 산길(갈림목에 벽소령산악회의 노란 리본이 매달려 있음)로 접어들면 휴양림으로 곧장 내려선다.

개념도는 특별부록지도 참조.

교통
유가사까지는 대구시내에서 일반버스 600번과 달성 5번 버스가 운행한다.

토·일요일과 공휴일에만 운행하는 휴양림행 버스는 대구지하철 대곡역 부근 유천교 버스정류장에서 06:45(600번), 08:30(달성5번), 10:15(600번), 11:05(600번), 12:50(달성5번), 13:45(600번), 14:35(600번), 16:20(달성5번), 17:15(600번), 18:05(600번), 19:50(달성5번), 20:45(600번) 출발. 약 1시간 30분, 1,200원. 평일에는 서부정류장에서 직행버스를 이용해 현풍까지 온 다음 택시 이용. 휴양림이든 유가사든 약 8,000원. 문의 현풍호출택시 053-611-2525, 617-2525.

유가사행은 평일 유천교 버스정류장에서 달성5번이 06:00, 09:20, 12:30, 15:50, 19:20 출발하고, 주말·공휴일에는 달성5번과 600번 시내버스가 06:00~20:45 약 50분 간격으로 18회 운행한다. 자세한 버스시각은 창성여객에 문의 956-5753.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양평에서 마산을 잇는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 상리 테크노단지 도로를 따른다. 단지를 빠져나가면 왼쪽 테크노순환로 12길을 따르면 길이 좁아지다가 유가사로 올라서고 곧장 뻗은 테크노순환로 10길을 따르면 역시 길이 좁아지다가 휴양림 주차장으로 올라선다.

숙식(지역번호 053) 유가사 들머리에는 비슬산장(010-2823-6215), 쉴만한물가펜션(010-4901-0691) 같은 숙박업소가 있다.

비슬산자연휴양림에는 숲속의 집(통나무집) 23㎡형(4~6인용, 평일 4만 원, 금토일 공휴일 6만 원) 10채, 콘도형 29㎡형(6~8인용, 5만 원, 7만 원) 11실, 콘도형 59㎡형(12~16인용, 10만 원, 14만 원) 3실 등의 숙박시설이 조성돼 있다. 야영장(1동당 3,000원)과 야영데크(데크당 1만 원)도 조성돼 있으나 7~8월 여름철에만 사용이 가능하다. 입장료와 주차료는 받지 않는다. 문의 614-5481. sports.dalseong.daegu.kr/bisulsan.

유가사 주차장 부근의 만불식당(614-2456), 마산정자(614-6612)는 한방백숙, 오리, 촌두부 등을 내놓는 음식점이지만 한겨울이나 평일에는 장사를 안 할 경우가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

현풍읍내(현풍면 하리)는 현풍할매집곰탕으로 이름난 곳이다. 원조현풍박소선할매집곰탕(614-2143)이 주민들이 추천하는 식당이다. 곰탕 1만 원, 양곰탕 1만3,000원, 족탕·꼬리곰탕 1만6,000원, 수육 3만~5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