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국보 제12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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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
분 류 | 유물 / 불교조각/ 금속조/ 보살상 |
수량/면적 | 1구(軀) |
지정(등록)일 | 1968.12.19 |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한남동 747-18 삼성미술관 리움 |
시 대 | 통일신라 |
소유자(소유단체) | 이건희 |
관리자(관리단체) | 삼성미술관 리움 |
경기도 용인시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높이 54.5㎝의 금동보살입상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하던 보살상의 양식과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는 보살이 서 있던 대좌(臺座)와 머리에 쓰고 있던 관(冠)이 없으며, 왼손은 팔뚝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몸에 비하여 머리가 약간 큰 편이고,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얼굴은 눈 위쪽보다 눈 아래쪽이 유난히 길어 보여 어딘지 모르게 경직된 인상을 풍긴다. 넓은 가슴에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입은 천의(天衣)는 등으로 돌아 양 팔 위로 흘러 내렸는데, 오른손으로 그 가운데 한 가닥을 잡고 있다. 허리 부분에서 한번 접힌 치마는 무릎 위에 드리워지고 나머지는 길게 발목 위에까지 내려오고 있다. 치마의 주름은 U자형의 도드라진 선으로 표현되었는데, 그 기법이 매우 세련되고 아름답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들 가운데서 흔히 이런 양식의 보살상을 찾아볼 수 있는데, 비록 재료는 다르지만 성덕왕 18년(719)에 만들어진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제81호)이나 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굴불사지석불입상(보물 제121호)과 비슷한 유형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맞고 몸의 형태도 유연한 편이지만 얼굴이나 신체의 표현에서 다소 경직된 느낌을 주는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대좌가 없어졌으며, 보관(寶冠)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 왼쪽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 원형을 찾을 수 없게 된 것도 애석한 일이다. 이 보살입상(菩薩立像)은 현재 도금(鍍金)한 흔적이 약간 남아 있을 뿐 구리 바탕을 드러내서 적갈색을 띠고 있다. 보관(寶冠)이 없기 때문에 보발(寶髮)만 우뚝 드러나 있으며, 넓은 얼굴의 가늘게 뜬 두 눈과 코, 작은 입에 비하여 두 귀는 길고 귓부리가 가늘다. 목에는 3줄의 각선(刻線)이 보이며, 넓은 가슴에는 오른쪽에서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가는 조백(條帛) 1줄이 주름을 잡고 있는 것 이외에는 나체를 드러내고 있다. 천의(天衣)는 몸 양쪽을 따라 흘러내렸는데, 한 가닥은 아래위에 팔찌를 장식한 오른손으로 잡았으며, 다른 한가닥은 직각으로 꺾인 왼손에 걸쳐 있으나 끝에서 부러져 버렸다. 치마의 끈 매듭은 안 보이지만, 배와 두 다리에서 동고(同孤)의 선각(線刻)으로 습벽(褶벽)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 기법이 매우 세련되고 아름답다. 각부(各部)에는 사실적인 표현이 두드러졌는데, 풍만하고 우람한 얼굴에다가 몸집도 당당하다. 뒷면에는 아무런 조문(彫文)도 안 보이고, 오직 머리부분에 둥근 구멍 하나와 등뒤 아래위에 타원형의 길쭉한 구멍 하나씩이 뚫려 있다. 또 아래위에 못이 하나씩 있어 원래 광배(光背)를 달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보살입상은 그 크기에 있어서 신라(新羅) 금동소상(金銅小像) 중에서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상은 원래 독존(獨尊)으로 주성(鑄成)된 것이 아니고 삼존(三尊)을 이루었던 두 협시(脇侍) 중의 하나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대는 통일신라기(統一新羅期)로 추정되는데, 절터에서 나왔다고 전해질 뿐, 그 유래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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