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역자의 영성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6.- II. 목회현장에 있어서

문성식 2013. 1. 19. 17:30

 

교역자의 영성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6.

실천신학 전공 김 성 식

 

II. 목회현장에 있어서


교역자의 영성


지난 1세기 동안의 한국교회의 목회적 특징은 선교중심과 권위주의적인 부성적 목회자형의 목회였다. 이것의 결과로 한국교회는 양적으로 성장을 하였으나, 내면적으로는 질적인 성숙을 하지 못하였고 또 한국교회는 교회의 직무인 친교 (Koinonia), 교육 (Education), 봉사 (Service)등 다양한 가능성들을 소홀하게 되었고, 교회의 물량화, 대형화 경향이 교회성장론과 함께 증가되면서 교회내에서의 인간관계의 단절과 개인의 개성과 참여가 불가능한 집단주의의 위험을 안게 되었다. 박병식, “목회자의 현장과 영성”, 「풀빛 목회」 1986년 12월호, p. 47.

이러한 당면과제를 타개하고, 한국교회 2세기를 위한 새로운 목회를 위해서는 개인의 내적인 자아를 성숙시키고 영혼을 돌아보는 영성차원의 교역형태의 개발이 시급하다.

A. 교역자와 영성.

1. 교역자의 자격
교역자는 단순한 직업적인 직업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전능자의 사신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파자이며, 진리의 해석자로서 고귀하고 거룩한 직분의 소유자 이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분명한 소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역자를 교역자되게 한다.

a) 교역자의 정의
에드워드 투루나이젠 (Eduard Thurneysen)은 교역을 정의할 때 그것은 “영혼을 돌보는 일” Eduard Thurneysen, 「목회학 원론」 박근원 역 (서울 : 성서교재간행사, 1978), p 7.
라고 정의한다. 인간영혼을 보살핌이 바로 교역이고 이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 곧 교역자이다.
우리는 목사를 호칭할 때 목사 (pastor)와 교역자 (minister)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나 그 어원은 서로 다르며, 사용하는 곳도 서로 다르다. 이 주영, 「현대목회학」 (서울 : 삼광문화사, 1987), p. 27.
차이점으로는 목사는 교회의 직원으로 분명히 성경에 언급된 직분이나 (엡 4:11), 교역자는 직원으로 언급된 직분이 아니라, 교회의 직원이나 직분자는 누구나 교역자여야 한다는 의미로서 직능이나 기능으로 언급하고 있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교역자를 살펴보면 3가지로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


① 디아스코노스 (διακονοs)인데 이 단어는 집사, 종, 봉사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단어는 복음서에는 종으로, 바울 서신에는 섬기는 자로 언급되어 있다 (눅 10:4, 딤후 4:11, 엡 4:12, 고후 3:17-19). 이 단어가 목사의 어원이 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왕의 종이라는 의미에서다.


② 레이투루고스 (λειτουργοs)인데 이 단어는 대중의 종 또는 제단에서 수종드는 성직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공적인 임무를 지닌자 (롬 13:6, 13:4)로 또는 제사장 직분 (히 18:2)을 의미하며, 이 단어는 공중예배나 복음의 공적인 선포를 집행하는 이중적 개념을 지니고 있다.


③ 휘페레테스 (υπηετηs)인데 이 단어는 노를 젓는 사람, 또는 보조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신분이 낮은 관리들이나 남의 밑에서 섬기는 종들을 일컫는 데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마 5:25, 26:28).


이러한 용어들은 각각 교역자나 목회자로서의 직능과 그 기능의 본질적인 성격을 표현한 것이다. 결국 교역이란 목사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 일이고 교역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의 구속의 역사를 성취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행 20:24). 교역자는 하나님과 교회에 의하여 부름을 받고 안수를 받아 교회를 대표하여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례하며 하나님의 계시에 완전한 응답을 하도록 기독교 공동체를 인도하고 양육하기 위하여 구별된 자이다. 토마스 C. 오덴, 「목회신학」 오성춘 역 (서울: 대하 예수교장로회총회 출판국, 1987), p. 116.

 

b) 교역자의 소명의식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 2000년전 자원하심으로 십자가 위에 달려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돌아가신 것이다. 주님께서 아직 이 세상에 계셨을 때 사람들을 부르셨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막 3:14)
요한복음에 나오는 기도에서 40번 이상이나 열두 제자에 대하여 언급하시며 기도하신 것을 생각할 때 주님께서는 짧은 기간동안 사역하시면서 세상 구원을 그의 마음에 두셨으며 제자들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보셨다. 승천하시기전 주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상의 명령을 제자들에게 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28:19에 있는 말씀이며 이 명령이 곧 제자를 삼아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전하시고저 하는 주님의 구원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매 페이지마다 고동치는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인 것이다.
그것은 바울이 디모데후서 2:2에서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필생의 사명”을 제시할 때 마음에 가졌던 꿈이었는데 “또한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주께로 부터 위임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선택된 자신과 자신의 직무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 1:11) “우리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딤전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딛 1:1)
이상의 증거된 바울의 신앙적 소명의식은 오늘날과 같이 혼미해져만 가는 목회자들의 소명의식에 대하여 사명감을 새롭게 하여 주님의 크신 뜻을 이루어 드리고 그의 양인 성도들과 그의 몸인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하여 그 분이 남기고 가신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워 죽기까지 복종하겠다는 확고 부동한 소명의식을 가지게 한다.

c) 교역자의 영적체험
교회란 무엇인가 ? 에베소서 1:20 이하와 골로새서 1:15 이하를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조직과 기구는 지체가 연결된 몸이기 때문에 유기체이다. 이런 신령한 그리스도의 몸을 다스리고 영적 양식을 먹이는 목회자의 영적 체험은 바로 그 교회를 생명력 있는 교회로 만드느냐 무력한 교회로 만드느냐 하는 이정표와 같다고 하겠다. 피터 와그너, 「성령의 은사와 교회성장」 권달천 역 (서울 : 생명의말씀사, 1983), p. 153.

영적체험 또는 영적은사 (spiritual gift)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활동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 성령의 선물이다. 교역자가 영적체험이나 은사를 알게될 때 주의 사역자로서의 보람을 느끼며 풍성한 생명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영적체험을 위해 훈련을 하여야 한다. 만일 교역자가 영적체험을 소홀히 할 때에는 교역자의 직무를 망각해 버리게 된다.
교역자가 영적체험을 풍부히 가지고 있는 교회는 모든 신자가 영적 사명을 자각하게 되며 자기 자신의 기쁨을 체험하게 되고,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해지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사도 바울은 자기자신의 영적체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여기서 바울은 적어도 자기는 과거에 육신에 거하여 살면서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힘써 살아왔다고 하며,율법의 행위로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였다(갈 2:16).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가 깨달은 것은 “그러므로 내가 한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 잡아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1-24) 여기서 결국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 7:25) 고 믿고 그는 그후 끊임없는 영성훈련에 전념하였다. 우리는 바울의 영성훈련에서 교역자의 영성훈련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와 함께 육신의 모든 욕망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둘째 자기를 위하여 살던 삶이 그리스도를 위하며 살며, 세째 그리스도가 존귀히 여기심을 위하여 담대히 죽을 수 있으며, 네째 예수를 아는 지식을 위하여 자신에게 유익한 모든 것을 버리며, 다섯째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여섯째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닌 믿음으로 얻어짐이 온전한 의임을 고백하며, 일곱째 어떠하든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고로 영성훈런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데로 내자신을 맡기는 생활을 의미하며 바울은 교역자에게 어떻게 영적생활을 할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