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역자의 영성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5.

문성식 2013. 1. 19. 17:28

 

교역자의 영성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5.

실천신학 전공 김 성 식  

 

I. 영성에 대한 고찰

 

C. 영성의 역사적 이해

 

3. 종교개혁의 영성

종교개혁 당시는 마틴 루터가 수도원을 탈퇴하므로 영성운동에 큰 변화를 가져온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종교개혁 운동은 중세 교회의 칙령과 교회의 회칙, 그리고 수도원의 규칙에 매인 심령을 풀어주고 성경말씀으로 돌아가 순수한 기독교를 재발견하려는 이 운동이었다.
종교개혁의 영성의 중심은 성서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영은 말씀을 통하여, 말씀안에서 역사한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져 있는 구원과 계시의 ‘실재’를 지금 여기 신앙자의 것이 되도록 현재화시키는 ‘보증자’라는 주장이었다. 이것이 칼빈이 주장하는 내적증거이다. 지원용, 「루터와 종교개혁」 (서울 : 컨콜디아사, 1965), pp. 38-39.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을 피조물과 죄인으로 그리고 Imago Dei 로서 이해하였다. 이들은 또한 인간은 오직 은총에 의해서만 의롭다는 칭함을 받는다고 믿으며, 이것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a.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
중세기의 기독교 신학의 특징은 스콜라주의적 합리주의 신비주의적 황홀경험과 일반적인 도덕주의이다. 합리주의는 이성을 근거로 하여 신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말해서 종교개혁이나 교회사의 전환점은 어거스틴과의 한 수도사인 마틴 루터가 수도원의 어떤 방에서 체험했던 경험에서 이루어졌다. 즉, 루터는 로마교 체제를 뚫고 나가는데 성공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돌파를 강행했던 것은 오직 한 사람 마틴 루터였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다” (Justification by faith)는 그의 체험적 확신에서였다. P. Tillich, 「그리스도교 사상사」 송기득 역 (서울 : 한국 신학연구소, 1983), p. 285.

루터는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의 삶의 긍정적인 목표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도덕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신비주의의 세가지 사닥다리를 다 올라가 보았으나 모두 한계에 이르러 결국
성령의 능력으로써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강근환, “종교개혁시대의 영성과 기독교 영성” (서울 : 연세대 출판부, 1985), p. 356.

토마스 (1225-1274)의 합리주의는 옥캄 (1300-1350)의 유명론에 의하여 무너지게 되었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Meister Eckhark, 1250-1327)의 신비주의는 개인을 서로 떼어 놓은 유명론적인 고립화에 대해서 균형을 잡아주는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성서에 근거한 직관적인 계시성을 빠뜨렸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P. Tillich는 “유명론과 신비주의는 둘다 어느 정도까지는 종교개혁을 위한 준비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하였다. P. Tillich, op. cit., p. 280.

전자에게 있어서 신앙은 성서적인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고 후자에게는 신앙이란 신과의 일치의 경험을 의미한다. 전자가 신앙의 객관적인 측면이라면 후자는 신앙의 주관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가지 관계가 루터에게 있어서는 조화되어 있음을 Paul Althaus는 두가지로 설명한다. P. Tillich, op. cit., p. 20.

첫째, 성령은 말씀 없이는 말하지 않는다. 말씀이 먼저 나타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은 성령을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말씀이라고 하는 수단을 통하여 성령을 주시는데 이점이 성령주의자들과 열광주의자들에 대하여 루터가 역설해던 점이다.
둘째,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말씀안에서 말하신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성서는 단지 문자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이와같이 루터의 신학은 성서와 성령, 신앙의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이 역동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런가하면 루터는 또 한편으로 도덕주의의 한계도 느꼈던 것이다. 루터는 수도사로 카톨릭 교회에 있어서 수도원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경험하였다. 인간은 올바른 일을 행할 은총을 자기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수도사의 특별한 노력도 그것을 위해서는 충분치 못했다. 그리하여 루터는 마침내 종교와 윤리의 관계를 역전시켰다. 우리는 신과 결합되지 않고는 신의 의지를 실행할 수 없다. 따라서 루터에게 있어서는 도덕은 신앙의 결과이지 그 원인은 아니다. Ibid., p. 296.
즉 루터의 궁극적 목표인 의롭다함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그 믿음은 성서의 메시지의 전적 수용이고,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루터의 신관계는 객관적 관계가 아니고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매개도 필요로 하지 않는 나 - 너 (I - You)의 인격적 신뢰의 관계가 된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가르침이 변론적 인격적이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설명함에는 신비적으로 표현했으므로 신비주의라고 하기도 한다. 강근환, op. cit., p. 357.

b. 칼빈 ( John Calvin, 1509-1564)
칼빈의 책 기독교 강요의 「성령론」 안에서 신생 (Regeneration)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다루고 있음을 볼 때, 그는 루터의 이신득의에서 멈추지 앟고 성화에로 지향하고 있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생은 양면성을 동시에 다 가지게 되는데 한면은 회개로 인한 옛사람의 수정이고 또 한면은 새로운 삶으로의 참여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생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회복이다. 그런데 이 회복은 단시일내에 순간적으로 이루어짐이 아니라 조금씩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속적인 뉘우침과 참된 경건의 훈련을 멈추어서는 안될 것을 말한다. 빌헬름 니이젤, 「칼빈의 신학」, 이종성 역 (서울 : 대한 기독교서회, 1973), p. 14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걸음씩 전진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향한 영적인 성장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내면적인 경건과 외형적인 경건을 기도를 통하여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겸손한 자의 제 1의 기본적 실천은 바로 기도” G. Baum , E. Gunitz and E. Reus ed., Richard, 「칼빈의 영성」, p. 170의 재인용.
라고 강조하고 기도의 삶을 더욱 뜨겁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에 대해서 명상하라고 권유하였다.
칼빈은 신생에 있어 의인과 함께 곧이어 성화에로의 경건의 재갈을 물린다고 할 것이다. 그점은 성령 안에서의 자기부정의 경건이요 그 자기 부정은 신비주의자들의 자기 탈피와는 다른 것으로서 선과 그리스도와 이웃에게 정화된 자기 부정인 것이다. 빌헬름 니이젤, loc. cit.
이처럼 칼빈의 영성의 목표는 신령한 지식을 얻고 신생과 성화를 통한 구원이다. 결론적으로 개혁자들의 영성은 성령운동과 성서주의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4. 현대교회의 영성

영성에 대한 깊은 관심은 현대교회 특히 개신교에 있어서 최근의 동향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는 12세기를 전후해서 꽃을 피운 신비주의 신학을 계속 개혁하고 수정, 보완하여 오늘날의 영성신학 (Spiritual Thelolgy)으로 발전되었고, 새로운 분야로 정립이 되었고, 현재에도 많은 수도자들과 신도들도 영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천적인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개신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의 영성적인 면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였다. 김외식, “기독교 영성의 바른 이해” 「신앙계」, 1986. 4., p. 46.
이같은 영성에 관한 신학적 이해의 결핍으로 인하여, 오히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두가지의 양상을 보이면서 나타게 되었다. 첫째 양상으로는 내향적 운동 (inward movement)으로서 경건주의 (pietism), 정적주의 (quietism), 성령운동 (Charismatic movement)등이 있고, 두번째 양상으론는 외향적 운동 (outward movement)이 있는데 사회참여 운동, 인권운동 등을 들수 있다.
내향적 운동의 특징은 개인의 성결과 개인 영혼 구원에 중점을 두었고, 외향적 운동의 특징은 사회의 성결과 구조악을 개선하는 면에 강조점을 두었다. Ibid.

종교개혁 이후 나타난 개신교 영성신학의 특징은 말씀 중심이 되었다. 따라서 개신교 영성운동에는 성서연구와 말씀묵상이 강조되었다. 즉, 개신교의 영성운동은 말씀과 성령충만의 운동이요, 말씀과 성령의지의 삶이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중생케 하며, 성화케 한다. 성령은 또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증해 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일원의로 살도록 역사한다. 그리고 이 성령은 우리를 복음에 합당하게 말씀에 순종하며 살도록 이끄시며 교회를 교회되게 한다. 이러한 개신교의 영성을 역사의 흐름속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세의 영성과 구별되는 종교개혁 당시, 루터가 재 발견한 복음은 성경과 믿음이 강조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강조되었다. 그후 30년 전쟁 (1618-1648) 때에는 교파주의와 교리주의가 지배적 이었는데 30년 전쟁 후, 성경의 문자적 영감이 지나치게 경직화 되었으며, 신학이론이 정립되고 칼빈의 5대 교리(1618)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이 작성 되었다(1646). 그러나 17세기 정통주의 시대에는 교파주의 교리에 빠져 성령의 역사에 관한 인식이 저하되었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계몽시대에는 이성을 중시하여 모든 것을 이성으로 판단하려 했다. 그러므로 복음과 성령, 신학과 교리, 선교를 상실한 시기었다. 그러나 영국의 웨슬레의 대각성 운동으로 경건주의는 성령의 내재와 선교와 부흥운동에 힘썼다. 자유주의 시대인 19세기에는 성서의 권위에서 해방된 사람 중심의 신학으로 기독교의 초월적 교리를 무시하고 도덕적 갱신을 강조하였다. 그후 20세기에 와서는 개신교의 영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도 개신교의 영성은 성경중심, 복음중심의 영성이며,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하는 삶의 원천이며, 성령이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도록하는 영성생활이 추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