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역자의 영성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4.

문성식 2013. 1. 19. 17:27

 

교역자의 영성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4.

실천신학 전공 김 성 식

 

I. 영성에 대한 고찰

 

C. 영성의 역사적 이해

영성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영적 생활을 두 형태로 구분한다. 이 두가지 형태를 가리키는 용어들은 희랍어에서 유래되었다. 부정적 (apophatic) 방법은 자기를 완전히 비워 하나님의 충만함이 자기에게 흘러들어 오게 하는 방법이다. 긍정적 (kataphatic) 방법은 모든 생각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기 위하여 정신적 영상들과 용어들을 사용하는 사상의 방법이다. Urban T. Holmes, A History of Christian Spirituality : An Analytic Introcuction (New Youk : Seabury, 1981), p. 4. 본서는 동방 및 서방 모두에 있어서 사람들과 그들의 관념들을 상세하고도 매우 간략하게 설명해 준다.
 이에 덧붙여 어떤 방법들은 정신의 조명 (사변적) 을 강조하는가 하면, 다른 방법들은 마음의 온화함 (정서적) 을 강조한다. 각 방법들은 독특한 문화나 또는 그 문화 안에서 개발한 영적 그룹의 관습들을 나타낸다. 이러한 것은 기독교 영성이 성서시대 이후로 추적될 때 명백해 진다. 일반적으로 영성이란 인간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거나, 최고의 실재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어떤 자세나 믿음, 행위등을 의미할 수 있다. G. S. Wolkfield, A Dictionary of Christian Spirituality (London : SCM Press, 1983), p. 362.

본장에서는 영성이해의 발전과정을 초대교회, 중세교회 그리고 현대교회를 중심으로 전개해 보려고 한다.

1. 초대교회의 영성

고대 기독교시대는 30년경부터 콘스탄틴 대제 (306-337)하에서 기독교가 로마의 종교로 공인받을 때까지로 이시기에 예루살렘에는 원시적 공동체인 최초의 구체적인 교회가 나타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성령을 기다렸으며, 날마다 모여 영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영헌, 「교회의 발자취」 (서울 : 총회교육부, 1978), p. 32.
 그들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면서, 모여서 말씀을 연구하고 전혀 기도에 힘쓰며 서로 사랑을 나누고 구제에 힘썼으며 서로 애찬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초대교회는 영성의 훈련과 생활이 조화되었다. 기도와 성서연구 그리고 사랑의 모임이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말씀공부 (행 2:42, 3:12, 고전 11:23, 고전 15:11)
2) 합심기도 (행 1:14, 2:4, 3:1-4)
3) 교 제 (행 2:42, 46, 3:11, 4:32)
4) 청빈, 구제, 봉사 (행 2;44-45, 4:32-37, 6:1-6)
5) 금 식 (행 13:2-3, 14:23)
6) 복음전도 (행 1:8, 2:4, 3:11, 4:31)
7) 섬 김 (고후 4:5)
8) 병자들을 위한 봉사 (행 3:1-9, 5:12-16, 19:11-12)
이어서 사도들은 이러한 영성생활을 잘 계승하였고 신학적으로 정립하였다. 초대교회는 그 배경이 희랍사람들로 희랍사람들이 가진 토착화라 할 수 있다. 민경배, 「영성의 역사적 뿌리」 (서울 : 연세대 출판사, 1985), p. 343.

초대교회의 영성은 플라톤주의적 영향과 영지주의와의 투쟁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주의의 흐름은 영혼이 영원한 세계로부터 내려와서 일시적으로, 임시적으로 우리의 육체와 관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몸이 죽으면 영혼은 영원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인간이 지상생활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에서 중요한 점은 우선 인간이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서, 즉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생활로부터 거리를 두고 정신적으로 떨어져 살면 우리가 영원의 세계와 통한다는 것이다. 박대인, “초대와 중세의 영성생활” (서울 : 연세대학교 출판부, 제 4회, 1985), pp. 346-347.

이것은 기독교 이전부터 있었고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었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비기독교적 입장이었다. 즉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와같은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기가 매우 쉬웠다. Ibid., p. 3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문제에 지혜롭게 주의하면서 기독교의 영성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Ibid.

2. 중세교회의 영성

초대교회의 수도원 운동은 기독교가 세속적, 이교적 사고방식에 적응하려는 것 때문에 일어난 저항운동이며, 주후 312년 이후 즉, 기독교가 공인받고 박해없는 시대가 시작되면서 순교정신이 사라진데 대한 제 2의 피흘리지 않는 하얀 순교정신의 발현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소수 특정인의 올바른 생활은 전 기독교인에게 구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원인들로 인하여 수도원주의가 생겨나게 되었다. 박대인, op. cit., pp. 349-350.

중세의 수도원 운동을 도피적인 은둔적 정신운동이며, 개인주의 운동일 뿐 아니라 성서의 말씀과는 거리가 먼 금욕주의적인 고행주의를 중심으로 한 비복음적 운동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수도원 운동을 통한 영성훈련은 형식적 형태만 남은 교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은 활력소가 되었다. 케니스 레토레스, 「기독교사」 윤두혁 역 (서울 : 교문사, 1980), p. 457.

수도원 운동을 크게 4단계로 나누어 보면, 제 1단계는 동방 수도원의 정착기로 3-4세기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시기엔 로마제국의 말기적 현상과 종교의 세력다툼 그리고 교리논쟁 및 분쟁싸움으로 자연히 은둔적인 수도회가 발전되었다. 이집트는 이러한 수도생활에 좋은 환경을 제공하였고 수도사들은 육체적 고행과 노동을 통해 영성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은둔 독거를 하던 성 안토니오 (St. Antonil)와는 달리 바질 (Basil)은 공동체 수도생활을 시도하였다. Ibid.

수도사들이 발전시킨 영성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명상 (Contemplatio)이다. 이것은 명상의 자세와 방법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하나님을 보는 그 상태까지를 말한다. 명상 (Contemplatio)은 복합적인 것으로 세 단계가 있다. 첫단계는 정화로 청결과 청결한 생활양식이다. 두번째 단계는 계몽, 조명의 단계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하나님을 깊이 인격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세째 단계는 중세 신비주의의 요소로서 결합이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나와 하나님의 인격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말하는 것이다. 수도사들은 이러한 형태의 영성생활을 가르치면서 지도했다. 박대인, op. cit., pp. 351-352.

제 2단계는 6-11세기의 서방 수도원 확립기로 성베네딕트 (Benedict)가 몬터카시노 (Montecasion)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원 회칙의 대헌장인 베네딕트 계율을 세웠다. 실제 8-11세기는 베네딕트 수도원의 전성기라 할만큼 베네딕트 수도원제도의 영향은 컸다.
베네딕트를 중심으로한 수도원은 개인 중심적 금욕주의와 고행주의를 보다 높은 영성신학으로서 진리의 빛을 찾는 ‘하나님을 찾는 학교’로 수도원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공동생활을 통한 공동체의 몸의 신학과 경건훈련을 확립하였다. 김경재, 「영성신학」 (서울 :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5), p. 136.
 

이 베네딕트 수도원은 엄격한 금욕적 절제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청빈, 순결, 겸손, 봉사, 고행을 통해 영성을 쌓았다.
제 3단계는 12세기의 제도적 부흥기로서 이 수도원의 부흥운동은 베네딕트 수도원 운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특히 이 개혁운동은 프랑스의 클루니 수도원과 클레르보 수도원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는데 세속적 권력개입을 벗어나 독립성을 유지하고 영성훈련이 잘된 인물을 교회 감독으로 세우며 성직자 독신주의를 권장하였다.
12세기의 이러한 운동들은 13세기에 이르러서는 4단계인 걸식 수도회를 창립하게끔 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 수도회로는 프란시스코회 (Fransisco), 도미니코회 (Dominice), 깔멜수도회 (Calmel)를 들 수 있는데 이 수도회들은 처음부터 어떤 구체적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특히, 이때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가 과거 수도사들과는 전혀 무관한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였다. 프란치스꼬의 성인의 운동은 평신도 운동이란 점이 특징이다. 성 프란치스꼬를 중심으로 한 이 수도회원들은 수도원 안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서 일했기 때문데 탁발수사라고 불렀다. I. V. Cally, op. cit., p. 102.


수도원 운동은 은둔, 독거, 묵상, 노동, 검소, 청빈, 극빈, 성경연구, 기도, 명상, 침묵, 예배등을 통해 영성훈련을 쌓아 인간 영혼의 신적 상태로의 상승을 목표로 일어나 운동으로 비록 문제점도 많았지만, 이들의 활동은 당시 교회의 이단들을 회개시켰으며, 성직자들을 각성시켰으며, 선교에 열심을 가져왔고, 교육과 성서번역 사업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연기, 「교회사에 나타난 영성운동이 교회와 사회에 끼친 영향」 (성숙한 교회와 영적성장), p. 36.
이는 영성생활의 승리였다. 엄세천, 「영성생활」 (서울 : 기독교 한국 연수원 출판부, 1986), p.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