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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호]누비장(縷緋匠) | 중요 무형 문화제

문성식 2012. 3. 30. 05:25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107호
명 칭 누비장(縷緋匠)
분 류 공예기술
지정일 1996.12.10
소재지 경북전역



※ 본문설명

누비는 옷감의 보강과 보온을 위해 옷감의 겉감과 안감사이에 솜, 털, 닥종이 등을 넣거나 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안팎을 줄지어 규칙적으로 반복해서 홈질하여 맞붙인 바느질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누비는 면화재배 이후 적극적으로 활성화되었으며 조선시대의 다양한 실물자료가 전해지고 있다. 승려들이 일상복으로 입는 납의(衲衣)는 해진 옷을 수십년동안 기워 입은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점차 누비기법으로 발전하여 일반인 사이에서도 방한과 내구성, 실용성 등의 이점을 따라 전래되었다고 한다.

누비는 누비 간격이나 바느질 땀수에 따라 세누비·잔누비·중누비 등으로 나뉘며, 형태에 따라 오목누비·볼록누비·납작누비로 크게 구분된다. 누비 간격은 잔누비 0.3㎝, 세누비 0.5㎝, 중누비 1.0㎝ 이상으로 구분된다. 세누비·잔누비 중에서도 옷감 2겹만을 누벼주어 겉모양이 오목오목하면 오목누비라 하고, 솜을 여유있게 두고 누벼주어 겉모양이 볼록한 입체적인 효과를 나타내면 볼록누비라 한다. 또 얇은 솜을 두거나 닥종이를 이용하기도 하고 옷감만으로 누벼주어 평면적이면 납작누비라 구분하였다. 누비용구로는 옷감재질과 동일한 실, 누비 두께에 따른 다양한 바늘 종류, 가위, 인두, 밀대, 자, 골무 등이 있다. 누비 바느질 기법은 홈질이 대부분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박음질도 사용된다. 의복이나 침구류에는 규칙적인 직선누비가 주로 사용되었으나 주머니나 보자기류에는 누비 자체를 문양으로 살려 곡선과 직선으로 조화를 이룬 것도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손누비는 세계 유일한 재봉법으로 그 정교함과 작품성이 자수를 능가하는 예술품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나, 지금에 와서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라져가고 있다. 이에 누비장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김해자 씨를 기능보유자로 인정하여 전승하고 있다.

※ 보충설명

일반적으로 누비란 옷감의 보강과 보온을 위해 사용된 재봉기법으로 거죽과 안을 맞춘 옷감사이에 솜을 넣고 규칙적으로 반복해서 홈질로 바느질해 주는 것을 말한다. 누비 바느질된 옷감은 의복을 비롯해서 침구류, 각종 보자기와 주머니류 등 생활용품에도 다양하게 이용되었다.

우리나라의 누비는 면화재배 이후 적극적으로 활성화 되었으며 조선시대의 다양한 실물자료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 상고시대부터 명주솜이나 동물의 털, 식물성 인피섬유, 갈대 등을 이용한 누비기법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고분벽화인 5세기경의 감신총 서벽 무인상의 상의는 사선으로 누벼진 갑주로 발표된 바 있다. 한편 승려들이 세속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산중에서 수도하는 과정에서 일상복으로 착용하는 납의는 해진 옷을 수십년동안 기워 입은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점차 누비기법으로 발전하였는데 일반인 등 사이에서도 방한과 내구성, 실용성 등의 이점을 따라 전래되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누비는 상대부터 방한용·호신용·종교용으로 다양하게 응용되었다.

누비는 직선을 따라 규칙적으로 반복해서 누벼주는데 누비간격이나 바느질 땀수에 따라 세누비·잔누비·중누비 등으로 나뉘며, 형태에 따라 오목누비·볼록누비·납작누비로 대별된다. 잔누비의 누비간격은 0.3㎝, 세누비 0.5㎝, 중누비 1.0㎝ 이상으로 구분된다. 솜을 여유있게 두고 정교하게 누벼주어 볼록한 모양의 입체적인 효과를 나타내면 볼록누비라 하였고, 얇게 솜을 두거나 닥종이를 이용하기도 하고 옷감만으로 누벼주어 평면적이면 납작누비라 구분하였다. 누비간격이 0.5㎝ 이내의 세누비나 잔누비 중에서도 옷감 2겹만을 정교하게 누벼주고 누빈 바느질선에 풀을 칠해 인두질하여 줌으로써 겉모양이 오목오목하면 오목누비라 하였는데 이는 특히 공이 많이 들어 궁중이나 일부 상류층에서 이용되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누비방법은 물론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손누비이며, 누비용구로는 옷감 재질과 동일한 실, 누비두께에 따른 다양한 바늘종류 가위, 인두, 밀대, 자, 골무 등이 있다.

누비방법은 누비재료를 준비해서 왼쪽은 밀대에 말아 왼손에 잡고 오른쪽은 오른발로 고정시킨 후 선을 따라 누벼준다. 누비선을 곧고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경사 한올씩을 누비간격마다 당겨 주어 누비선을 표시하기도 하고 천을 꺾어주어 자국을 내거나 쵸크로 표시하기도 한다. 누비 바느질 기법은 홈질이 대부분이나 경우에 따라 박음질도 사용된다. 또한 의복이나 침구류에는 규칙적인 직선누비가 주로 사용되었으나 주머니나 보자기류에도 누비자체를 문양으로 살려 곡선과 직선으로 조화를 이룬 것도 있다. 누비용 실은 먼저 길이를 일정하게 잘라 초를 먹인 다음 다려놓고 써야 솜이 묻어나오지 않는다.

누비는 단순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정신을 집중시키고 정성으로 바느질해야만이 누비선이 곧게 누벼지고 표면이 울지않고 매끈하게 처리되므로 수행하는 자세로 작업에 임해야 한다. 그러므로 조선조의 여인들은 긴장된 마음으로 작업함으로써 고된 시집살이의 고통을 잊고 잠시나마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푸는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의복은 예술적 작품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하였다.

누비의 효과는 거죽과 안감이 동일해야 하고 무늬가 없는 옷감이 더욱 효과적이다. 명주는 부드럽고 가볍고 따뜻하며 작업도 무명보다 용이하다. 누비옷은 세탁후에도 복잡한 처리없이 착용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누비장 김해자는 어려서부터 바느질에 취미가 있어 모친과 조모로부터 기초를 배웠으며 어머님의 삯바느질을 도왔다. 계속해서 왕실의 침방나인이었던 성할머님께 전수받기도 하고, 사찰에 기거하면서 여러 스님께 사사받아 기술을 터득하였다 한다. 체계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누비분야를 김해자는 박물관의 유물을 조사·연구하고 지도를 받는 학문적 자세를 갖추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스스로 터득한 기술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식물성 염료를 이용한 염색도 스스로 하고 있다. 명주저고리 1점을 1.0㎝ 누비로 하루 10시간 작업하면 완성까지 일주일이 소요되며 잔누비일 경우는 20일 정도의 시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 손누비는 세계 유일한 재봉법으로 그 정교함과 작품성이 자수를 능가하는 예술품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다양한 디자인과 다양한 누비방법으로 개발하여도 손색이 없는 우리의 전통문화 상품이 될 것이다.

누비장 김해자

1953. 1. 16. ~ | 보유자 인정: 1996년 12월 10일

비오는 들길 지나 먼 장터로
한복 하나 장만하려 길을 나섰다.

가끔은 바람의 속삭임 듣고파 양팔을 펼치며 가는데
내게 오지 않을 것 같던 나무의 언어
포롱포롱 겨드랑이로 들더라

쥔장 닮아 색을 입은 자연이
벽화로 서서 오는 이를 반기고
마음 담은 골마다 사랑 이고 오는 누비
헐렁하던 마음 채우며 드는데

글 몇 줄 새겨진 내 언어 흥정의 미끼로 쓰고
지폐 몇 장 돌돌 세어 낙찰보고 돌아서는 길
가슴 가득 안긴 달이 슬며시 웃고 있더라.

- 임미영 시인의 <누비한복 사던 날>

선조들의 겨울나기 지혜 누비

누비장은 누비옷을 만드는 장인이다. 누비는 옷감의 보온과 보강을 위해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 털, 종이 등을 넣거나 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홈질해 만든 옷을 말한다. 누비는 승려들이 해진 옷을 기워서 입던 납의(衲衣)에서 유래하였으며 방한과 내구성, 실용성이 뛰어나 크게 발달한 바느질법이다. 누비는 누비 간격이나 바느질 땀수에 따라 세누비, 잔누비, 중누비 등으로 나뉘며, 형태에 따라 오목누비, 볼록누비, 납작누비로 구분된다. 전통 손누비는 정교함과 예술성이 뛰어나며 완성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손누비의 대표적인 특징은 거죽과 안 두 겹의 옷감 사이에 솜을 넣고 줄이 지도록 곧고 촘촘하게 홈질로 바느질하는 것이다. 조선 초, 중기의 출토복식 자료에 의하면 솜을 쓰지 않고 두 겹의 옷감만으로 정교하게 누빈 겹누비옷과 솜누비옷들이 다양한 형태로 발굴되고 있어 누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누비기법은 여인들의 정성과 정교한 솜씨로 만들어지는 중요한 재봉법의 하나로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구체적인 상고시대의 기록이나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방한과 피륙의 보강이 누비의 기본적인 기능이었던 만큼 우리나라의 기후 풍토 등 자연환경으로 보아 상고시대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단편적인 기록 외에 남아있는 실물자료들은 조선시대부터 확인된다.

[삼국지위지동이전], ‘예조’에 동예의 여인들이 첨유(襜褕)와 비슷한 준의(樽衣)에 솜을 넣어 누벼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고구려 고분벽화 감신총의 전실 서벽에 그려진 무사의 갑옷을 ‘누비갑주’라고 발표한 연구가 있다. 조선 헌종때의 기록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짐승의 가죽, 새털은 옷을 만들고 덮개나 깔개로 가능하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이 목화솜이 생산되기 이전에도 여러 겹의 옷감이나 명주솜, 동물의 털, 식물의 종자나 인피(靭皮)층을 이용한 기초적인 누비기법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누비옷은 방한용, 호신용, 보호용, 종교용, 장식용, 실용성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활용되었는데 가장 널리 사용된 것은 방한용이다. 누비옷 이외에도 두툼한 침구류도 방한을 위해 이용되었다. 또한 옷의 수명을 연장하는 보강성은 물론 원형대로 세척할 수 있는 실용적인 측면도 누비옷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누비의 종류와 특징

누비의 종류와 특징은 문헌 기록과 누비의 유물자료를 통하여 비교해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문헌기록으로는 [역어유해(譯語類解)]와 [궁중발기]가 있다. 누비의 종류는 누비의 간격, 형태, 재봉법 등에 따라 나누어진다.

  간격  형태  재봉법  누비기법
 수단  선  기법
 잔누비  납작누비  솜누비  손누비  직선누비  홈질누비
 중누비  오목누비  겹누비  기계누비  곡선누비  박음질누비
 드믄누비    홑누비      

누비의 종류

 

잔누비 : 「궁중발기」에서 ‘세누비(細樓緋)’라고도 하는데 누비 간격이 0.5cm 내외의 좁은 형태를 말한다. 누비옷에 관한 기록 가운데 절반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다.
중누비 : 「궁중발기」의 누비 기록에서 확인되며 누비옷 가운데 가장 적다. 일반적인 중누비는 『역어유해』에 보이는 드믄누비보다는 간격이 좁은 형태로 추정된다.
드믄누비 : 『역어유해』의 내용과 누비옷 실물자료를 참조할 때 포백척으로 한 치[一寸]내외의 넓은 간격으로 누벼진 누비를 의미하며 대체적으로 누비 간격이 5.0cm전후의 넓은 누비가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우 추운 날씨에 착용하기 위한 것으로 솜을 넉넉하게 두고 두툼하게 누벼서 만든 바지나 장옷, 중치막과 같은 누비포에서 확인된다.
오목누비 : 누벼진 바느질선이 골을 이루어 마치 골기와처럼 오목하고 볼록하게 교차하면서 입체적으로 나타난 모양으로 이해할 수 있다.누비 중에 으뜸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 누비의 특징이다.
납작누비 : 솜의 사용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나 납작한 조형적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솜을 얇게 사용하거나 전혀 사용하지 않은 누비로 보여진다.

한 땀 한 땀 전통 누비옷 복원 40년 외길 인생 김해자 선생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기능보유자인 김해자 선생은 경북 김천 계령면에서 태어났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러하듯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바느질의 기초를 배웠다. 집안이 비교적 부유했으나 선생이 중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기울자 가족들은 서울 도봉구로 이사를 하고 생계의 버팀목이 된 어머니의 삯바느질을 도와야 했다. 어머니의 일을 도우면서 19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옷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서울 동대문 근처에 있었던 선미한복학원을 다녔다. 학원을 졸업한 후 종로의 주단집에서 2년 정도 일을 한 뒤 자립하여 옷집을 운영하였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왕실 침방나인이었던 성옥염 여사와 선복스님에게서 바느질과 누비기법을 배웠다. 선생은 전통 누비옷 기법을 익히기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고유복식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특히 사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 승복에 대한 매력을 더욱 느낄 수 있었으며 똑같은 작업을 반복적으로 공들여 하는 누비의 참모습을 터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초 20년 동안 승복 누비일을 하고 있는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창녕으로 옮겨 터를 잡았다. 시장에서 바느질을 하며 승복 누비일을 배우고 과거 의복을 재현하는 일에 매달렸다. 이후 창녕에서 누비일에 전념하며 30여명의 제자에게 기술을 전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한복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점차 일감이 줄어들고 경제적으로도 곤란을 겪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재봉틀과 양장의 등장으로 거의 사라져가던 누비가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 계기는 1992년 제17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선생이 국무총리상을 받으면서부터이다. 6개월간 준비 끝에 1992년 누비로 만든 치마저고리, 두루마기, 철릭, 승복을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하여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모두 입을 모아 ‘이런 기술은 100년을 전후해도 두 번 없을 것’이라며 극찬을 했다고 한다. 1996년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된다. 당시 40대의 최연소 무형문화재 보유자였고 최초의 누비장이었다. 2003년에는 일본에서 열린 국제퀼트박람회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당시 주최측이 관객들을 대상으로 다시 보고 싶은 전시작품을 조사했는데 선생의 누비 전시가 1위로 뽑혀 이를 계기로 2010년 1월 도쿄돔에서 열린 퀼트초대전에 다시 한번 참가해 우리나라의 독특한 복식을 세계에 알리기도 하였다.

선생은 지금까지 조선시대 누비옷 재현에 힘쓰는 한편 일본에서 두 번의 전시회를 포함하여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우리 누비옷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제자 양성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10년 가까이 서울에서 운영했던 누비문화원을 닫고 경주에 있는 누비공방에서 누비의 맥을 이어가고 발전시키는데 전념하고 있다. 선생은 평소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거듭 강조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대충 만들지 마라. 입는 사람의 입장에서 공을 들여라. 기운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옷 속에 스며든다.”

작품

장의(長衣) _화장 77 길이 120조선 후기 장옷으로 부녀자들이 나들이할 때 머리에 써서 몸을 가리던 옷이다. 쪽, 양파로 염색한 옷감으로 만든 후 0.5cm 간격의 볼록 누비 기법으로 제작했다.

저고리, 치마_75×46cm, 115cm누비는 옷감을 두툼하게 만들어 보온성을 높이기 위해 두겹의 얇은 옷감 사이에 솜을 넣은 후 일정한 간격으로 촘촘하게 꿰매는 기법이다. 겨울이 길고 추운 우리나라의 기후를 슬기롭게 대처하고자 하였던 여인들의 예지를 엿볼 수 있다.

여아 치마 저고리_47x47, 44x24cm

배자깃형 포_84x115cm

중치막_100x140cm

배넷저고리_팔길이93cm

도구 및 제작과정

도구
손바느질에 있어 기본적인 재봉도구는 바늘, 실, 자, 가위, 인두, 인두판, 다리미, 골무 등이며 그 밖에 풀, 화로, 재봉상자가 있다. 이밖에 누비에 전문적으로 사용된 밀대가 있다. 밀대는 거죽감, 솜, 안감으로 된 누비감을 동시에 바느질하게 되므로 이들이 밀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주변을 시침하고 밀대에 감아 홈질을 함으로써 안과 거죽이 울지 않고 평편한 상태에서 바느질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도구이다. 주로 10~20cm 길이의 가벼운 나무를 이용하였으며 여기에 나전, 화각, 조각 등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제작과정
1) 마름질 : 입을 사람의 몸치수에 맞춰 천을 자른다. 누비는 골넓이에 따라 시접치수를 달리해야 하므로 천을 자를 때 이를 감안해야 한다. 선을 그을 수 있도록 일부분을 재단하고 깃, 동, 고름 등을 별도로 잘라 재단한다.
2) 올 튀기기 : 올 한 가닥을 튀겨 올린다. 튀겨 올린 올을 잡고 조심스럽게 당겨 주어 곧은 선이 나타나도록 한다. 누비옷은 줄을 긋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올을 튀겨서 하는 방법이 가장 정확하지만 원단이 평직일 경우 가능하고 이중직일 경우나 또는 원단의 조직상태가 거친 경우는 올이 튀겨지지 않는 천이 많다. 이런 경우 줄을 그어 다리미나 인두를 사용하여 선을 긋기도 한다.
3) 바느질하기 : 재단하여 안 천과 겉 천을 똑같이 어깨, 등솔, 진동 순서대로 홈질한 다음 안과 겉을 맞붙여 배래를 곱게 감침질 해준다.
4) 솜놓기 : 만들 옷의 두께를 고려해 솜부피를 조절한다. 옷 전체에 솜을 고르게 놔야 다 누볐을 때 골이나 땀길이가 일정해 지는데, 이것을 위해 솜부피가 같아지도록 뜯어낸다. 골 넓이의 두께에 따라 솜을 갈라내고 솜과 겉 천을 마주보고 놓는다. 이후 솜과 천을 맞붙인다. 솜과 천을 맞붙인 다음 솜 시접을 말끔히 정리하고 솜을 다 붙인 다음 뒤집는다.
5) 시침 : 누빌 부분의 올을 따라 시침질을 하는 과정이다. 뒤집어서 전체 가장자리를 시침한다. 이후 누빌 때 울지 않게 하기 위해 전체를 시침한다.
6) 보조천 달기 : 보조천을 단다.
7) 누비기 : 저고리의 몸통과 소매를 누빈 후 겉섶과 안섶을 달고 다시 겉섶을 달고 다시 겉섶과 안섶을 누빈다. 상위에 놓고 누빈 다음 밀대를 사용하여 누빈다.
8) 마무리 : 안과 겉 배래를 감치고 앞단을 대어서 감친다. 이후 도련을 단을 대서 감친 후 끝으로 깃을 달아 마무리 한다.

1)바느질 도구

2)솜놓기

3)시침하기

4)누비기

5)밀대로 누비기

6)마무리 안과 겉 배래를 감치는 과정

약력
  • 1953년                         경북 김천 출생
  • 1992년                         제17회 전승공예대전 국무총리상
  • 1994년                         경복궁 전통공예관 특별초대전 출품
  • 1996년                         전통고유기술개발사업 평가위원
  •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97년                         창원대 평생교육원 패션디자인과 강사
  • 1998년                         부산대학교 사회교육원 강사
  • 1999년                         성균관대학교 궁중복식연구원 지도교수
  • 2000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강사
  • 2000년                         대구대학교 산업정보대학원 한복디자인 연구과정 강사
  • 2000년                         공평아트센터 개인전 , 서라벌문화회관 개인전
  • 2000년                         경주 공방 개원
  • 2001년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 2002년                         일본 NHK 초대전
  • 2002년                         서울 누비문화원 개원
  • 2003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기획전시, 일본 요코하마 퀼트박람회 참가
  • 2004년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누비초대전
  • 2005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한복 패션쇼 및 전시회
  • 2007년                         중국 ITFM초청 한국섬유패션 박람회 참가
  • 2007년                         중국 북경 한국문화원 초대전 및 초청 강의
  • 2009년                         천년보옥 한국의 누비, 첫 번째 특별전 김해자+회원전
  • 2010년                         일본 동경 퀼트페스티벌 초대전
이치헌/한국문화재보호재단 (http://www.chf.or.kr/)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문화재보호법 제9조에 근거하여 우리 전통문화를 널리 보전, 선양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입니다.
공식블로그 http://blog.naver.com/fpcp2010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발행2012.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