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91호
명 칭 제와장(製瓦匠)
분 류 공예기술
지정일 1988.08.01
소재지 전남전역
※ 본문설명
제와장이란 기와를 전문으로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기와는 건축물의 지붕에 빗물이나 습기가 새어들지 못하게 덮어 씌워 침수를 막고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밑에 있는 목재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한때 장식적인 효과와 더불어 권위와 부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기와의 역사는 기원전 2∼1세기경 중국 한(漢)대에 대동강 유역으로 먼저 들어와 차츰 전 지역에 퍼져 지금에 이르렀다. 기와는 암키와와 수키와가 있으며, 부속장식 기와로는 암막새와 수막새, 귀면기와, 치미(치尾), 용두(龍頭), 망와(望瓦) 등이 다채롭게 개발되었다.
기와를 만드는 공정은 찰진 진흙으로 된 점토를 물과 반죽하여 나무로 만든 모골(模骨)이란 틀에 넣는다. 모골의 외부에 마포나 무명천을 깔고 반죽한 진흙을 다져 점토판 위에다 씌워 방망이 같은 판으로 두들겨 약간의 기간동안 건조한다. 그런 다음 와도(瓦刀)로 2등분하거나 또는 3, 4등분하여 자른 다음 기와가마에다 차곡차곡 쌓아 1000℃ 이상의 높은 온도로 구워낸다. 검은색이나 은회색이 되면 제대로 구워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와제작은 각 지방마다 특색있는 기와를 만들었으나 콘크리트, 슬라브집이 생기면서 차츰 그 수요가 줄어 현재에는 경상도 울산과 전라도 장흥지방에서만 제작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기계과학의 발달로 인해 질적, 양적으로 기계제품에 밀려나는 실정이어서 제와장의 보전를 위해 전라남도 장흥군 안양면 모령리의 한형준 씨를 전승보유자로 인정하였다.
※ 보충설명
제와장이란 기와를 전문으로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기와란 건축물의 지붕에 빗물이나 습기가 새어들지 못하게 덮어 씌워 침수를 막고 흘러 내리게 하여 지붕 밑에 있는 목재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기와에는 크게 암키와와 수키와가 있고 지붕 끝의 가장자리에는 암막새와 수막새가 있다. 암막새란 암키와 끝에 장방형의 드림새(垂板: 명와전이라고도 함)가 있는 것을 말하고 수막새는 수키와 끝에 둥근 드림새(일명 와당 瓦當이라고도 함)가 붙어 있는 것을 말한다. 이외에도 지붕 용마루 양끝에 높이 장식하는 치미(치尾)라는 것이 있는데 이런 것을 전부 기와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기와의 역사는 BC 2∼1세기경에 중국 한나라 때 대동강유역에 먼저 들어와 차츰 한반도 전지역에 퍼져 지금에 이르렀다.
기와를 만드는 공정은 찰진 진흙으로 된 점토를 물과 반죽하여 나무로 만든 모골(模骨)이란 틀에 넣어 모골의 외부에 마포나 무명천을 깔고 반죽한 진흙을 다져 점토판 위에다 씌워 방망이 같은 판으로 두들겨 약간의 기간 동안 건조한 다음 와도(瓦刀)로 2등분 하거나 또는3, 4등분하여 자른 다음 기와가마에다 차곡차곡 쌓아 높은 온도로 구워낸다.
옛날 우리나라의 기와 제작은 각 지방마다 특색있는 기와를 다 만들었지만 지금은 콘크리트, 슬라브집이 생기면서 차츰 그 수요가 줄어 현재에는 경상도 울산과 전라도 장음지방에서만 제작되고 있을 뿐,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더구나 현재 기계과학의 발달로 인해 질적, 양적으로 기계제품을 당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국가에서는 제와장(製瓦匠)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라남도 장흥군 안양면 모령리의 한형준을 중요무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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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 1. 5. ~ | 보유자 인정: 1988년 8월 1일
옛 신라 사람들은
- 이봉직 시인의 ‘웃는 기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 쪽이
금 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번 웃어주면
천 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
기와를 전문으로 만드는 장인, 제와장
제와장이란 기와를 전문으로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기와는 건축물의 지붕에 빗물이나 습기가 새어 들지 못하게 씌워 지붕 밑에 있는 목재의 부식을 방지함과 동시에 건물의 경관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기와는 암키와와 수키와가 있으며, 부속장식 기와로는 암막새와 수막새, 귀면기와, 치미(鴟尾), 용두(龍頭), 망와(望瓦) 등이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목조 건물에 기와를 사용하여 지붕을 이는 풍습은 고대 동양 건축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이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 기와가 처음 쓰여진 시기는 중국 한무제가 한사군을 설치한 기원전 1세기경으로 추측된다. 당시 낙랑군의 치소(治所)였던 평양의 대동강 부근의 토성리에서 중국 한식계 와당이 다수 출토되는데 주로 무늬 막새와 문자 막새이다. 이 때를 전후하여 한반도의 북부 지방에 기와를 덮은 목조 기와집이 처음 등장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와는 1,000도 이상의 적당한 온도로 구워 내어 강도와 흡수율이 우리의 풍토에 적합하다. 그래서 겨울에 얼어서 터지는 일이 적어 눈과 빗물이 새지 않아 건물에 쓰인 나무가 썩는 것을 막아준다. 옛 기와는 비나 눈이 오면 전면적으로 골고루 물을 흠뻑 머금었다가 날씨가 개면 똑같이 증발시켰다. 날씨변화에 따라 기와 전체가 동시에 젖었다가 말랐다가 얼었다가 한다. 팽창계수가 동일하여 추위와 더위에 깨어지지 않고 오래 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기와의 단열 효과로 여름의 더운 공기나 겨울의 찬 공기를 막아 주어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가옥의 지붕을 덮는 건축재로 널리 이용되었다. 건물의 경관과 치장에도 사용되었는데 단순한 건축 부재가 아닌 우리 겨레의 과학성과 실용성이 담긴 과학기술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와 제작은 각 지방마다 기후에 맞게 특색 있는 기와를 만들었으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그 대부분이 시멘트와 기와, 그리고 슬레이트 지붕에서 슬래브 지붕으로 바뀌는 등 주거생활 양식의 변화로 그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다.
<기와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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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수키와: 가장 기본적이고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것이 기본기와이며, 암·수키와로 목조 건물의 지붕에 이어져 기왓골과 기왓등을 형성한다. 수키와는 반원통형 기와로 지붕 바닥에 이어진 두 암키와 사이에 이어져 기왓등을 형성한다.
2)암키와: 네모난 판형 기와로 지붕 바닥에 속면을 밖으로 향하도록 이어져 기왓골을 형성한다.
3)수막새: 막새는 암·수키와의 한쪽 끝에 문양을 새긴 드림새를 덧붙여 제작한 것을 말하는데, 수막새는 수키와의 한쪽 끝에 원형의 드림새를 덧붙여 제작한 것으로 기왓등 끝에 사용한다. 막새의 표면에 연꽃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4)암막새: 암키와의 한쪽 끝에 약간 위로 휜 장방형의 드림새를 덧붙여 제작하며 막새 표면에 당초 무늬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문양이 시문되었다.
5)이형막새: 암·수막새와는 달리 그 형태가 특이하고 사용처가 특수한 부위에 한정된 막새이다.
6) 연목기와: 서까래 기와는 서까래의 부식을 방지하고 이의 치장을 위하여 사용되는 기와로 중심부에 못구멍이 뚫려 있다. 연목기와는 둥글고 긴 연목 끝에 사용되는 원형의 기와이다.
7) 부연기와: 연옥 끝에 덧얹은 기와로, 네모난 형태로 서까래이인 부연 끝에 짧게 들어간 방형의 기와이다.
8) 사래기와: 추녀 끝에 잇대어 댄, 네모난 사래 끝에 사용하는 기와이다.
9) 토수: 처마 모서리에 돌출된 서까래인 추녀 끝이나 사래 끝에 끼워져 사용되는 잉어와 같은 형재의 기와이다.
10) 적새: 마루 축조용 기와는 각 마루를 쌓아 올리는데 사용되는 기와로 적새, 착고, 부고가 있다. 적새는 대개 암키와를 세로로 반절하여 사용하거나 원형 그대로를 이용한다. 암마룻장, 암마룻장기와라 부르기도 한다.
11) 착고: 적새나 부고 밑의 기왓골을 막음하는 기와로 수키와 양쪽을 알맞게 절단하여 사용한다.
12) 부고: 착고 위에 잇대어 옆으로 얹혀지는 기와로 완형의 수키와를 그대로 사용한다.
13) 치미: 마루장식용기와는 마루 끝에 삽입되거나 그 위에 얹혀져 장식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기와로 치미와 취두, 용두, 귀면와, 망새, 마루수·암막새, 잡상 등이 이에 해당된다. 치미는 용마루 양쪽 끝에 사용되는 큰 조형물로, 길상봐 벽사의 상징이다. 조선의 기와집은 치미 대신에 취두나 망새가 장식되었다.
14) 취두: 용마루 양쪽 끝에 얹혀지는 괴상하게 생긴 새머리 모양의 조형물로 치미와 같은 길상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15) 용두: 내림 마루나 귀마루 위에 얹혀지는 조형물로 용의 머리를 무섭게 형상화한 장식 기와로 길상과 벽사적인 성격을 지닌다.
16) 귀면와: 괴수와 같은 귀신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조각한 원두방형의 기와이다.
17) 망새: 치미나 취두 그리고 귀면기와 등이 장식되지 않은 마루끝 상단에 사용되는 기와이다.
18) 마루수막새: 원형의 드림새에 접합된 수키와가 긴 원통형이거나, 등이 굽은 짧은 원통형인 특이한 모습의 기와이다.
19) 마루암막새: 암막새가 암키와의 선단에 거꾸로 접합되는 있는 기와이다.
20) 잡상: 내림 마루나 귀마루 위에 한 줄로 앉히는 여러 가지 모양의 조형물로 건물을 수호하고 각 마루를 장식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숭례문에 쓰이는 잡상은 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 마화상, 삼살보살, 이구룡, 천산갑, 이귀박 등 9종류다.
21) 특수기와: 기와가 그 본래 목적인 목조 건물의 지붕에 이어지지 않고 특정한 장소에 사용되거나 그 용도가 전용되어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기와류로 담장용·배수로용·전탑용·기단용·장식용·무덤용 등 여러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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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잡상 (화재로 소실되기 전 모습)
숭례문 지붕에 올릴 기와를 감독한 한형준 선생
중요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 기능보유자인 한형준 선생은 1929년 아버지 한귀봉 선생의 4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외가에서 자란 한형준 선생은 1940년경에 11세의 나이로 이모부를 따라 전남 보성군 한문리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처음으로 기와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먹고 자며 차비 정도의 품삯을 받으며 기와의 여러 가지 일을 배우게 된다.
한해는 흙꾼이 모자라서 어린 몸으로 5일간 흙을 이기다가 코피가 쏟아져 며칠 동안 드러누워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주로 하부의 시중드는 일이었지만 잠시라도 쉴세라 흙일을 거들어야만 했다. 어린 나이에 흙일을 하기가 몹시 힘들었다고 한다. 이때 나주에 사는 부모님은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형님이 일본에 징용을 가게 되어 농사지을 사람도 부족하고 3년동안 객지에서 고생하는 아들이 걱정되어 부모님은 집에서 농사를 짓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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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숭례문 복원작업에 참여하는 최고의 장인으로 주목 받았지만, 얼마 전까지 다 쓰려져 가는 오두막에 살았다.
그 해 여름 다시 인근에서 이름된 기와장이였던 이모부인 최길수 선생이 품삯으로 하루에 쌀 5되를 줄테니 같이 가자고 하여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그 해 가을 전남 장흥군 안양면의 고윤석 선생이 운영하는 기와공장으로 옮겨와 다시 기와일을 시작하게 된다. 결국 한형준 선생은 이모부와 고윤석 선생으로부터 한국재래 토기와 제작기법의 전 과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기와일 하는 사람의 품값은 많았다고 한다. 기와장이들은 굉장히 많은 돈을 받았지만 보통 한 해 일을 하고 나면 술값 등으로 오히려 빚을 지는 경우가 많았고 돈을 더 주는 공장만 있으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선생은 안양제와공장에서 40년을 넘게 기와일을 해왔다. 해방이후 모령리에서 착실하게 일을 해온 선생은 제법 돈을 벌게 되어 고향의 부모님께 보내고 형의 노름빚까지 갚아주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어릴 적 자랐던 외가에 집과 송아지를 사드리는 등 가족에게 돈을 모두 써버렸다.
나이가 들어 공장 주인인 고윤석 선생의 누나 딸과 중매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25세였다. 선생은 슬하에 딸만 아홉을 두었다. 대개 흙일하는 사람은 아들이 귀하였다고 한다. 선생의 손에는 항상 물과 흙이 묻어 있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그야말로 한평생을 하다 보니 손발이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갈라졌다. 공장 주인인 고윤석 선생이 돌아가시고 1988년 제와장으로 지정을 받은 뒤에 비로소 이 공장을 인수하였다. 한때는 대통령보다 월급이 더 많았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계기와가 나오면서 일감이 확 줄었다. 숭례문 복원작업에 참여하는 최고의 장인으로 주목 받았지만, 얼마 전까지 다 쓰려져 가는 오두막에 살았다. 지금 사는 집마저도 막내딸이 융자를 받아 지어 준 것이다.
올해 봄 숭례문 복구현장에서 상량식이 열렸다. 목조건축에서 상량식을 거행하면 공사는 마무리단계로 접어든다. 이제 중심은 기와를 얹히는 일로 넘어가는데 숭례문 지붕에 올릴 기와는 한형준 선생의 지휘 아래 충남 부여에 위치한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만들어졌다. 한평생 기와쟁이로 살아온 한형준 선생은 숭례문 복원을 통해 전통기와를 지키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한다. 특히 20~30대 젊은 전수가가 늘어나 활발한 연구개발을 통해 전통방식은 낡고 느리다는 고정관념을 없애주길 기대하고 있다. 기와는 사가는 사람의 운수가 좋아야 잘나온다고 한다. 또한, 제아무리 실력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기와가 제대로 구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기와를 가져갈 사람이 지닌 운과 만드는 사람, 거기에 기와 공장 주인까지 세 사람의 운이 잘 맞아 떨어져야 가장 좋은 기와가 나온다는 것이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흙을 만지고 불을 보아온 장인이 지금도 가마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 이유이다.
선생의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운이 좋은 편인 듯하다. 숭례문 지붕에 쓸 기와가 잘 나왔기 때문이다. 선생이 만드는 전통 기와의 특징은 조선시대 기와를 그대로 재현해 은회색을 띠며 가볍고 통기성(通氣性)이 뛰어나다. 특히 나무를 태운 연기를 기와에 침투시켜 물이 스며들지 않는 일종의 코팅 공법으로 유명하다.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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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용문암막새37x47x25cm
조선후기 암막새로 숭례문 복원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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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문 막새 세트28×32×14, 15×15×38cm
한국의 전통문양인 연화문을 조선시대 대량생산 형식으로 개량하여 만든 조선기와이다.
제작과정
기와에 사용되는 흙은 풀이 없는 이른 봄이나 가을철에 채취하고 표층으로부터 50~100cm 밑의 흙을 사용한다. 채취한 흙은 불순물을 걸러내는 가공 과정인 구와질과 발을 이용한 반죽, 흙담만들기 작업인 담무락 작업을 거치게 된다. 기와는 나무로 만든 와통에 흙 판을 붙이고 바대질(문양 넣기나 흙 다짐) 후 기와 끝 면을 두드려 곡선 모양을 만드는 건장치기 과정 등을 거쳐 2~3일간 건조한 뒤 가마에 넣는다.
가마를 지어 말림불을 넣고 2~3일 지나 가마와 기왓장이 마르면, 피움불을 넣어 본격적으로 기와를 굽는다. 약한 불로 시작해서 점차 불땀을 높여 가마 내부가 1,100도까지 오르면 연기가 빠져 나올 구멍을 죄다 막고 센불로 막음불을 땐다. 기와가 다 구워지려면 70~80시간 정도 걸린다. 사흘 밤낮 동안 잠을 물리친 채 불이 적당한지 살펴야 한다. 모든 과정이 중요하지만 불을 지피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화력이 좋은 소나무만을 이용해 가마를 땐다. 불을 땔 때는 가마 흙에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도 없어야 한다. 연기가 잘 먹어야 기와가 잘 나오는데, 실금 하나라도 있으면 연기가 새어나오기 때문에 수시로 가마 표면에 흙물을 바르고 솔질을 해서 단속을 한다. 그렇게 구워낸 전통기와의 빛깔은 은은한 광택이 도는 부드러운 은회색이다. 장작가마에서 나무를 태워 나오는 탄소가 기와 속으로 스며들어 빚어낸 이 색을 한형준 선생은 ‘꿩알색’이라고 부른다. 그 빛은 아침, 점심, 저녁때가 다르고, 비 오는날, 맑은 날이 다르고, 계절마다 다르다. 가스가마에서 구워낸 기계기와의 검은색과 비교할 수 없는 근사한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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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기와의 빛깔은 은은한 광택이 도는 부드러운 은회색이다. 장작가마에서 나무를 태워 나오는 탄소가 기와 속으로 스며들어 빚어낸 이 색을 한형준 선생은 ‘꿩알색’이라고 부른다. 그 빛은 아침, 점심, 저녁때가 다르고, 비 오는날, 맑은 날이 다르고, 계절마다 다르다. 가스가마에서 구워낸 기계기와의 검은색과 비교할 수 없는 근사한 색이다.
-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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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 출생
- 1940년 전남 보성에서 기와일 시작
- 1943년 전남 보성군 보성읍 용문리 소재 제와장 근무
- 1945년 故 최길수 선생께 제와일 전수 받음
- 1946년 전남 장흥 안양토제와 공장장
-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88년~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작품전 출품 및 작품활동, 전수교육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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