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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호]구례향제줄풍류(求禮鄕制줄風流) | 중요 무형 문화제

문성식 2012. 3. 30.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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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83-1호
명 칭 구례향제줄풍류(求禮鄕制줄風流)
분 류 음악
지정일 1985.09.01
소재지 전남전역
관리자 구례향제줄풍류보존회
지정문화재 향제줄풍류 (중요무형문화재 83)



※ 본문설명

전남 구례(求禮)지방에서 전승되는 현악영산회상(絃樂靈山會相) 이란 기악곡을 「구례향제줄풍류」라 한다. 영산회상은 여러 음악이 조곡과 같이 구성된 합주곡을 가리키는데 일명 「풍류(風流)」라고도 한다. 관악기가 중심이 되는 영산회상을 관악영산회상 또는 대풍류라 하고 현악기가 중심이 되는 영산회상을 현악영산회상 또는 줄풍류라고 한다. 줄풍류에는 서울에서 전승되는 것과 지방에서 전승되는 것이 얼마쯤 다르게 연주되었는데 지방에서 전승되는 줄풍류를 서울에서 전승되는 줄풍류와 구별하기 위해서 「향제(鄕制)줄풍류」라 이른다.

풍류 즉 영산회상은 조선 초기에「나례(儺禮)」라는 궁중 축제에서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菩薩)」이라는 불교 교리를 담은 노랫말을 얹어 부르던 성악곡이었으나 뒤에 이것이 기악곡으로 변하였고 여기에 다른 기악곡을 덧붙여 방대한 조곡으로 발전하였는데 조선 후기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합주곡이 되었다. 조선 중기에 관악영산회상과 현악영산회상이 분화된 것으로 보이며 현악영산회상 즉 줄풍류는 주로 방안에서 연주하는 조용한 음악으로 발전하였다. 조선 후기에 경제(京制)줄풍류와 향제줄풍류가 분화된 것으로 보인다.

근래 들어 경제줄풍류는 국립국악원에서 전승이 잘 되고 있으나 향제줄풍류는 전승이 어려워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3호 「향제줄풍류」로 지정하고 전남 구례에 사는 김무규(金茂圭)와 전북 이리에 사는 강낙승(姜洛昇)을 그 기예능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1987년에는 구례지방에 전승되는 줄풍류를 중요무형문화재 제83-가호로 지정하였다.

지금 구례향제줄풍류에는 김정애, 이철호, 이순조가 기예능 보유자로, 장명화, 신상철, 김광복이 보조자로 인정되었다.

줄풍류에 편성되는 악기로는 거문고, 가야금, 양금, 세피리, 대금, 해금, 단소, 장고가 있다. 줄풍류는 방안에서 조용히 연주하는 음악이니 거문고와 가야금, 양금과 같은 현악기가 중심이 되고 관악기는 현악기를 보조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관악기는 되도록 음량을 적게 해서 연주하는데 피리는 가늘어 음량이 작은 세피리를 쓴다. 거문고의 "슬기둥"하는 은은하고 꿋꿋한 음이 드믄드믄 대점을 쳐주는 가운데 피리, 대금, 해금이 장식적인 선율을 수놓으며 길게 뻗는데 조용하고 우아하여 신선의 경지를 느낀다.

구례향제줄풍류는 다스름(調音), 상영산(上靈山=본영산), 중영산(中靈山), 세영산(細靈山=잔영산), 가락덜이, 삼현도드리(三絃還入), 도드리(細還入), 하현도드리(下絃還入), 염불도드리(念佛還入), 타령(打令), 군악(軍樂), 계면가락도드리(界面還入), 양청도르리(兩淸還入), 우조가락도드리(羽調還入), 굿거리 이상 15곡으로 구성되는 방대한 조곡(組曲)으로 되어 있다. 국립국악원에서 전승되는 경제줄풍류에는 다스름과 굿거리가 없다. 다스름에서 중영산까지를 「본풍류」라고 하고 세영산에서 군악까지를 「잔풍류」라 이르며 계면가락도드리에서 굿거리까지를 「뒷풍류」라 한다. 본풍류는 한없이 느려 은은하고 유유자적하며 잔풍류는 약간 빨라서 유장하고 꿋꿋하며 뒷풍류는 밝고 화창하다. 이 음악을 모두 연주하는데는 약 70분 정도가 걸린다.

※ 보충설명

전라남도 구례에는 김무규(金茂圭)를 중심으로 원불교회주단(圓佛敎會奏團)을 구성하여 구례줄풍류를 전승 보급하였으나, 1994년 김무규선생이 작고함으로써 그 전수자들에 의하여 맥을 이어오고 있다.

김무규는 1908년생으로서 그의 선친께서 풍류를 즐겨 손수 풍류도 탔으며, 단소의 명인 전용선(全用先)등 율객이 많이 와서 그의 사랑에서 풍류를 즐겼기 때문에 유년시절부터 이러한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김무규선생은 28세 때에 추산 전용선에게 단소풍류와 대금풍류를 배웠고, 가곡 편락도 배웠다. 또한 30세에는 서울정악전습소에서 3년간 김윤덕(金潤德)에게 거문고 전 바탕과 가곡을 익혔다. 그 후 김무규는 고향에 내려와 지방 율객과 교류를 하였고 다른 지방과는 다른 줄풍류를 형성하였다. 현재 보유자인 김정애(金貞愛;1938년생, 거문고), 이철호(李鐵湖;1938년생, 단소)들에 의해 전승하고 있다.